"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언론에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밝히고 있는 량원건 싼이그룹 회장. [사진=싼이그룹]
언론에 자신의 창업 스토리를 밝히고 있는 량원건 싼이그룹 회장. [사진=싼이그룹]

【뉴스퀘스트=전순기 통신원】 내수 시장이 크다는 것은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거의 복음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중국인들은 복을 타고 나면서부터 받았다고 해도 좋다.

기가 막힌 창업의 성공 사례도 많다.

속된 말로 해바라기씨를 팔아도 재벌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실패를 되풀이하는 케이스도 없지는 않다.

심지어는 대기대락(大起大落. 크게 흥하고 크게 망함)이라는 말이 있듯 재벌이 됐다 쪽박을 차는 기가 막힌 경우도 무지하게 많다.

최근 무에서 유를 창조한 숱한 중국의 대기업들이 속속 부도나 파산에 직면하는 현실을 보면 정말 그렇다고 단언해도 괜찮을 듯하다.

이때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한 채 갑자기 성공한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극도로 좌절한다.

설령 실패의 아픔을 훌훌 털고 재기를 모색하더라도 다시 어려움을 겪으면 일어설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최근 열린 한 강연회에서 열강하는 량 회장. [사진=싼이그룹]
최근 열린 한 강연회에서 열강하는 량 회장. [사진=싼이그룹]

말이 좋아 그렇지 칠전팔기는커녕 이전삼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숱한 실패를 극복하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창업에 나서 성공한 후 수성(守成)에도 실패하지 않은 모범 사례도 드물기는 해도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공업 기기 생산업체인 싼이(三一)그룹 량원건(梁穩根. 63)의 성공 사례가 아닌가 싶다.

후난(湖南)성 롄위안(漣源) 출신인 그는 중난(中南)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후 취업한 국영기업인 훙위안(洪源)기계공장에서 고급 엔지니어로 일할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엘리트 청년에 불과했다.

그냥 현실에 만족할 경우 정년 때까지 편안한 삶이 보장됐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기에는 너무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다.

급기야 취업한 지 3년 만인 1986년 춘제(春節. 구정) 직전에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당시 양(羊)을 사고파는 춘제 대목 장사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실제로도 큰 양 한 마리를 200 위안(元. 현재 시세 3만4000 원. 1 위안은 170 원) 정도에 사서 팔면 10%는 남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그렇기는 했다.

그는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양이 많이 나는 지역을 샅샅이 훑었다.

튼실한 수백 마리의 양도 사들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가 사들인 양을 매입하겠다는 도매상은 약속을 어겼다.

그는 할 수 없이 소매로 양을 팔아야 했다.

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춘제가 지나자 양 값이 폭락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같은 직장에서 사표를 쓰고 나온 동업자 3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주류 제조 사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경험이 없는 사업에 도전한 만큼 실패는 필연이었다.

그는 다시 유리와 섬유 사업 등에도 도전장을 던졌다.

또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쯤 되자 그는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은 자신의 전공과 관계되는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헤아릴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하고 1986년 말 세운 회사가 싼이그룹이었다.

나머지 3명의 동업자들도 전문가였던 만큼 사업은 바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불어닥친 건설 붐으로 그의 회사가 만드는 중장비는 입도선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고생 끝에 낙이 왔다고 할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경영 전략을 토의하는 량 회장. [사진=싼이그룹]
직원들과 함께 경영 전략을 토의하는 량 회장. [사진=싼이그룹]

현재 그의 회사는 중국 빅3 중공업 회사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와 3명의 동업자 역시 중국 굴지의 재벌로 올라섰다. 이 정도 되면 중간에 위기가 한 번 정도는 올 수 있었다.

이 사업, 저 사업에 눈길을 돌리면서 방만 경영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몇 차례 슬기롭게 넘긴 위기를 넘긴 적은 있었으나 경영을 방만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건 바로 그의 경영 철학이기도 했다.

이는 그가 원래 이름인 량융건(梁永根)의 융(永)자를 원(穩. 튼튼하다는 의미)자로 고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부동산 관련 기업들의 부채 비율이 1000%가 넘는데도 싼이그룹은 100% 이하인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 보인다.

그의 성공 비결이 끝없는 도전 정신과 한 우물을 파는 튼튼한 경영에 있다는 사실은 이로 보면 별로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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