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는 재캐나다 작가 성우제의 문화비평을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으로 연재한다. 성우제는 고려대 불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했고 1989년부터 옛 <시사저널> 기자를 지냈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시사IN 편집위원. 시사주간지 일간지 미술전문지 등에 문화예술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등의 책을 펴냈다. <편집자 주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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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성우제 (在 캐나다 작가)】 '라떼는 말이야' 류의 글이니 주의하고 읽으시라.

고교를 졸업하고 20대에 막 진입할 무렵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술과 담배였다. 30~40년 전만 해도 음주와 흡연은 한국 남자에게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술은 담배와는 많이 달랐다. 

술을 통한 성인식을 혼자 치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 경우, 술은 매개체였다.

술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는 사람을 만나려고 술을 마셨다. 20대 초반 술자리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술의 힘을 빌어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돌이켜보면 대학에 진학한 이후 사람을 만날 때면 늘 술이 있었다. "만나자"는 "술먹자"는 것이었다.

"술먹자"는 "이야기하자"는 뜻이었다. 술자리에서는 흉허물도 부끄럽지 않았다. 그걸 듣는 사람도 자기 것인 양 공감해주었다.

당시, 술담배에 이어 새로 만난 것은 또 있었다. 선배라는 존재였다. 고교시절 교회나 학교서클에서 선배들을 보기는 했지만 선배라고 하면 스무 살 이후에 만난 인물들이 떠오른다.

무슨 사연으로 그리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선배라는 말 속에는 '사 준다' '챙겨준다'는 의미가 들어 있었다.

선배가 사주는 것은 주로 술이었다. 술값을 같이 내도 선배가 조금 더 냈다. 선배라면 그렇게 해야 했다.

선배가 지닌 더 큰 의미는 '챙겨준다'는 것이었다.

선배는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조언을 하며 후배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기껏해야 나이 한 두 살 더 먹은 고만고만한 청년들이 무슨 똑 부러지는 조언을 해주었겠나 싶지만, 스무 살 전후 당시로서는 같은 고민을 1~2년 먼저 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나도 힘들었다", "나는 이렇게 해결했다"는 선배의 말 한 두 마디는 큰 위로이자 힘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두 살 더 먹은 선배라는 존재는 동급생 친구와는 많이 달랐다.

흔히 586이라 불리는 요즘 50대는 말 그대로 복을 많이 타고난 세대이다.

일부 반론도 있겠으나 지금 20대의 부모는 그 어느 세대보다 좋은 조건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은 조건 가운데 하나가 좋은 선후배 관계. 대학에 들어가니 선배들이 차고 넘쳤다. 학과에도 있고, 서클에도 있고, 동문회에도 있었다. 선배들은 권위도 내세웠지만 한결같이 친절했다.

세상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했던 20대 초반, 나는 크고 작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선배들에게 터놓고 조언을 구했던 것 같다.

시국문제나 진로에 관한 것은 물론 심지어 연애에 관한 고민도 선배들에게 털어놓았다.

선배들이 뾰족한 수는 제시 못했을지 몰라도, 최소한 내 문제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상대는 돼주었다. 당시 내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든든한 일이었다.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뉴스를 보던 중에 특이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3월1일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확진자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30%에 달했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면역력이 가장 좋은 세대가 20대이고 중국에서는 50대 감염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의 20대 감염률은 대단히 특이한 현상이다.

주된 이유는 한국에서 코로나19를 폭발시킨 '신천지' 교도 가운데 20대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보도를 보면, 최근 신천지교회는 20대를 전도의 가장 큰 타깃으로 삼았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인 신천지 대구교회에만 청년신도가 5000~6000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전체 교인의 절반 이상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청년들이 하루에만 200~300명씩 오기도 했다는데, 신입 교인 중 19~20세 청년이 가장 많다는 증언도 나왔다.

20대, 그중에서도 막 성인에 진입한 이들은 왜 신천지의 주 타깃이 되었을까? 왜 그들은 신천지의 전도에 그렇게 많이 넘어갔을까?

그것은 20대 초반의 속성과 신천지의 포교 방식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고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신천지는 '상담'을 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했다.

성우제 재캐나다 작가.
성우제 在캐나다 작가.

고민을 잘 들어주고, 정신적으로 의지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신자로 끌어들이는 수법이다. 결국 우리 시대 선배들의 역할을 신천지가 대신 하는 셈이다.

차이점을 꼽자면 목적을 가졌느냐 아니냐 정도이다.

물론 우리 선배들 또한 서클가입 같은 목적을 가지기는 했어도, 신천지 포교와는 비할 바가 못 된다.

20대 초반 청년세대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만큼, 선배라고 술 사 주며 후배 하소연 들어주기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선배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신천지가 교묘하게 파고든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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