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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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성우제 在캐나다 작가】 캐나다에 살러 와서 처음 몇 년 동안은 한국에 관한 것을 일부러 멀리했었다.

낯선 환경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였다.

4~5년쯤 지나 새로운 땅에 잔뿌리는 내렸다 싶을 즈음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한국 뉴스도 인터넷을 통해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전을 찾고 영어자막을 읽어가며 보고 듣던 캐나다 뉴스에 비하자면 우리 말 뉴스 역시 달콤했으나 그 사이 보도방식이 많이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언론사별로 꼼꼼하게 따져가며 보도하기보다는 한국 언론은 전반적으로 우루루 몰려다닌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2007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신정아씨 학력위조 사건을 접하면서였다.

인터뷰를 하려고 신정아씨를 뉴욕에서 만났다.

그이는 나를 보자마자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사람들이 나한테 왜 저런대요?”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예일대 가짜 박사학위를 내세워 대학교수에 임용되고 광주비엔날레 공동 총감독에 오른 것은 범죄행위가 맞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이 학력위조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 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보도는 신씨가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하고 과열되어 있었다.

학력위조 뉴스는 다른 모든 사안을 쓸어버리는 쓰나미 같았다.

언론들은 쓰다가 쓰다가 신씨의 관상이 어떻다는 것까지 기사라고 썼다.

어느 일간지는 신씨가 이른바 ‘몸로비’를 했다며 누드사진을 1면에 싣기도 했다. 물론 억측이었다.

신씨가 한국에 들어가 조사를 받는 중에는 새우깡을 먹었다는 것도 뉴스가 되었다.

한국 언론의 보도를 몇 년 만에 제대로 접한 나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개 대학교수의 학력위조 사건이 몇 달 동안 한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 만한 뉴스 가치가 있나 싶었다.

그해 9월 큰 태풍이 제주도를 덮쳐 십수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신문의 머리기사는 신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국민이 죽거나 다치는 것보다, 신씨에 관한 하나마나한 소리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었다.

신씨는 이후 1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으나 모든 언론이 그 요란을 떨어가며 보도한 학력위조는 일부만 죄로 인정되었을 뿐이다. 신씨에게 적용된 주요 죄목은 공금횡령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언론들은 신씨가 지은 죄 자체에 대한 보도보다 신씨가 연루된 정치 스캔들을 만들어 당시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표적을 향해 몇몇 보수신문이 드라이브를 걸고 앞서 나가자 보수든 진보든 모든 언론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일부에서 브레이크를 걸었으나 그 브레이크마저 쓸려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당사자인 신씨 입에서 “사람들이 나한테 왜 저런대요?”라는 말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한국 언론의 쓰나미식 보도행태는 이후 거의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어떤 표적을 정하고, 한 매체가 분위기를 띄우며 달려 나가면 거의 모든 언론이 가세해 경쟁적으로 따라붙는 식이었다. 이런 보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먼저, 신정아씨 사건처럼 뉴스가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지닌다는 것.

둘째는, 쓰나미를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면 후속보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를 몇 개월 동안이나 뒤흔들 만한 큰 사건이라면 보도경쟁에서 불거진 오보는 바로 잡아야 정상이다. 재판을 하는 중에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독자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쓰나미 보도에 익숙한 한국 언론은 이런 보도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과 관련한 재판에서 결정적인 오보가 확인되어도 오보를 한 언론사는 물론 그 사건에 달라붙어 연일 단독을 쏟아내던 기자들은 한 마디 말이 없다.

쓰나미가 지나갔으니 더이상 자기들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식이다. 방청석에 앉아 검사와 변호사의 증인신문을 기록해서 나온 일반 방청객들이 개인 SNS를 통해 오보 사실을 전달하고 있을 따름이다.

문제는 쓰나미 보도로 이익을 챙기고 특정 정파의 대변지를 자처한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이 급기야 사건을 키우고 호도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기획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최근 채널A 이동재 기자가 한동훈 검사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언급하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전 대표에게 접근해 회유와 협박을 한 사실이 폭로되었다.

기자가 “유시민(노무현재단이사장)을 솔직히 개인적으로 한번 쳤으면 좋겠어요. 유시민 치면 검찰에서도 좋아할 거예요"라고 말했던 사실이 MBC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만약 이철씨가 채널A 기자가 제안한 ‘딜'에 응했다면 쓰나미 보도는 또 한번 한국에 휘몰아쳤을 것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개입한 정황이 나오는 검언 합동기획인 만큼 역대 어느 쓰나미 보도보다 강력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쓰나미의 패턴으로 보면, 유시민 이사장 소환은 물론이고 여권 핵심인사들의 연루설까지 삽시간에 터져나왔을 것이며 총선은 쓰나미로 인해 쑥대밭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우제 在캐나다 작가
성우제 在캐나다 작가

물론 몇몇 언론인이나 소수 정론지가 목소리를 높여도, SNS에서 시민들이 아무리 저항을 해도 검언합동 쓰나미는 그 모든 것을 휩쓸고 갔을 공산이 크다.

최근 강준만 교수의 신간 서평을 이용해 현정부를 공격하는 보도에서 보듯, 한 보수신문이 팩트를 비틀어 사건을 만들고 기사화하면 다른 매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가는 소소한 쓰나미는 연일 만들어지고 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언론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멀쩡한 신문들이 대거 황색지로 변했을까. 양치기도 이런 양치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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