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자의 이야기 통해 인생의 아픔을 새겨
소설속 애잔함, 이스탄불 역사 이해하는 키워드
전세계 45개국에 판권 팔려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작가 부르한 쇤메즈를 하응백 문화에디터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부르한 쇤메즈와의 인터뷰는 한국 언론 최초이다.  사진은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터키에 머물고 있는 부르한 쇤메즈의 모습. [사진=황소자리 제공]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세상 누구보다 아프고 외로운 인간들의 목소리를 빌려서 이렇듯 아름답고 다채롭게, 우리 삶의 심연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터키 작가 부르한 쇤메즈의 장편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궁금증은 그거였다.

해협 하나를 두고 동양과 서양으로 나뉘는 도시 이스탄불의 깊디깊은 지하감옥. 시멘트벽으로 구획된 좁은 감방 안에 나이도 직업도 성향도 전혀 다른 네 남자가 함께 갇혔다.

혁명단체에 가담했던 열아홉 살 대학생 데미르타이, 병든 아들의 이름으로 이곳에 잡혀온 중년 의사, 시를 쓰는 이발사 카모, 그리고 멀고 먼 마을에서 평생토록 이스탄불을 그리워만 하다 생의 마지막에 이 도시에 도착한 퀴헤일란.

아마도 혁명운동에 연루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네 남자는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를 고문의 두려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재미난 이야기를 풀어낸다.

흰고래를 찾아 평생 먼바다를 떠돌다 패배한 늙은 어부, 해도(海圖) 위에 가상의 섬을 그린 후 자신이 사랑한 여인의 이름을 지어주는 해도 담당 선원, 기발한 수완으로 강간을 모면하는 수녀, 벽의 거짓말에 속는 외딴마을 사람들, 딸의 딸이자 손녀이자 남편의 여동생인 아이와 둘이 살아가는 노파….

기발한 상상력이 부럽다.

그러고도 재미있으니 더욱 부럽다. 이 작품은 “머잖아 고전의 반열에 우뚝 설 위대한 작품”이라는 상찬 속에 전 세계 45개국으로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그러니 더더욱 부럽다.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로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난 터기 작가 부르한 쇤메즈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연초부터 유럽 여러 도시를 돌며 문학 강연을 하던 그는 코로나 19로 인해 이스탄불에 발이 묶인 상태라고 했다.

참고로 그는 1965년, 터키 깡촌에서 태어난 촌놈 중의 촌놈이다.

다음은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소설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히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얽혀들어 하나의 큰 서사를 이루는 방식이 매우 독창적으로 느껴졌어요. 소설을 이런 방식으로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이스탄불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부터, 하나의 시점으로는 이 도시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외부인의 시선에는 잡히지 않은 이곳의 다양한 색채를 드러내기 위해 좀 더 다층적인 관점이 필요했습니다.

- 네 명의 남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이 소설을 통해 처음 접하는 것이었어요. 이 작품에 소개한 이야기들은 선생님이 듣고 읽은 설화들인가요, 아니면 이 작품을 위해 창작한 이야기인가요?

: 이 작품에서 소개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저의 창작물입니다. 물론 전통설화나 소설 같은 자료에서 영감을 얻어 각색하기도 했지요. 《이스탄불 이스탄불》이 옴니버스식 소설이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서사 안에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도록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였어요.

-선생님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네 주인공의 나레이션을 배치함으로써 땅속 감옥에 갇힌 네 남자의 인생철학과 땅 위에서 살아온 개인적 서사를 적극적으로 드러냈어요.

그들이 그저 이야기 전달자로서 머무는 게 아니라는 의미지요. 얼핏 이 작품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형식이 비슷하지만 저는 이 지점에서 두 작품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어요.

: 네, 맞습니다. 《데카메론>과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차이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대사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납니다.

《데카메론》은 ‘전염병으로부터 벗어난 후’의 이야기들이지요. 그들에게는 삶을 즐겁게 만들 뭔가가 필요했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던 셈이죠. 하지만 《이스탄불 이스탄불》 속 주인공들의 고통은 ‘지금 여기’의 당면 문제입니다.

그들은 아슬아슬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해 있죠.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주인공들도 《데카메론》의 주인공들처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야기를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와 그들이 선택하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이스탄불 이스탄불》의 주인공들은 아름다움, 사랑, 농담을 말하지만 그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는 아픔이 새겨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제 소설과 《데카메론》의 본질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부르한 쇤메즈 지음/ 고현석 옮김/ 황소자리.
부르한 쇤메즈 지음/ 고현석 옮김/ 황소자리.

- 네 명의 등장인물이 다 매력이 있었지만, 저는 이발사 카모의 서사가 가장 애틋했어요. 혹시 네 명 중 선생님을 가장 닮은 인물이 있습니까?

: 작가들이라면 모두 피하고 싶은 어려운 질문을 하셨습니다. 정말이지 대답하기 어렵네요. 모든 주인공이 저와 닮았다고 말하거나 혼자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저만의 특별한 영웅이 있다고 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하며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좀 얄밉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말 좀 하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그는 나보다 4살 어리다.)

- 소설의 결말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나올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슬픔이 느껴졌어요.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은 작품 구상단계부터 결정했던 건가요?

: 소설을 시작할 때,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소설의 큰 줄기와 대사 몇 줄 그리고 주인공 몇 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죠. '

다만 소설의 큰 주제나 녹여내고 싶었던 감정은 끝까지 유지하는 편입니다. 저로서는 그 두 가지가 소설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 때문이죠. 결말은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해지는 듯합니다.

- 소설의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독자들이 그런 말들을 많이 하죠?

: 소설이 애잔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그래서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요. 저는 이 애잔함이 터키 사람들과 이스탄불의 현재 역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감상적이고, 낭만적이며 현실적이지요.

- 한국 독자들에게는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이 널리 알려져 있어요. 많은 작가들이 이스탄불에 관해 썼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이스탄불을 소설로 그려내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 지난 200년 동안 이스탄불은 터키에 살고 있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점에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교차점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공간입니다.

이스탄불 안에는 그들만의 고유 삶, 일반적인 동서양 담론으로는 담을 수 없는 이스탄불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제가 주인공들을 지하 3층 감옥에 넣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하에 있을 때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습니다.

지하에는 동쪽도 서쪽도 없죠. 오직 지상과 지하만이 존재할 뿐. 주인공들이 거주하는 지하감옥의 세 개 층 위에는 혼돈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도시의 삶이 있습니다.

전통 담론들이 이스탄불을 동과 서로 나누었다면, 저는 이스탄불을 위아래 층위로 나누어보고 싶었습니다.

- 선생님은 소설가가 되기 전에 인권변호사이자 저술가로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소설가로 전업하게 된 개인사적인 계기가 있을까요?

: 그건 제가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 듯해요. 운명론을 신봉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운명이 저의 삶을 이끌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스탄불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저는 경찰에게 잡혀 고문을 당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여러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아야 했죠.

그러는 동안 저는 영국으로 망명하게 됐고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저의 삶과 건강, 거주지를 바꾸어 놓았고, 망명지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다시 터키에 돌아갔을 때, 저는 더 이상 변호사가 아닌 소설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 소설 쓰는 시간 외에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나요?

: 주로 읽습니다, 다른 작가의 소설이나 역사책들을. 학회나 작가초청 강연 참석차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요. 그리고 당연히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선생님이 요즘 머무는 곳은 케임브리지인가요, 아님 이스탄불인가요?

: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를 순회하며 문학 투어를 진행하는 동안 팬데믹이 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투어를 중단하고 이스탄불에 돌아와 14일의 격리 기간을 마쳤습니다. 현재 이스탄불에 있고 여행금지조치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금지조치가 끝나면 영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 전 세계가 꽁꽁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이 시기에, 강제 격리된 네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쓰신 선생님과 이렇게 이메일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각별하고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먼 곳에서 요청한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소설에 대해 심도 깊게 이해하고 질문을 해주셨잖아요. 기자님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이 저에게는 너무나 즐거웠어요. 모쪼록 코로나19 시기를 잘 극복하시길 기원하며, 가까운 미래에 서울에서 직접 만나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터기 문학에 정통한 한 교수는 나에게 귀띔을 했다. “소설가 부르한 쇤메즈의 문학적 위상은 유럽과 터키에서 대단하다고.”

그러잖아도 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읽는 내내 이토록 뛰어난 작가가 왜 이제야 우리 독자들에게 소개된 건지 의아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역시 세상은 넓고, 고수는 곳곳에 있다. 더 늦기 전에 이스탄불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이스탄불에 간다면 그건 순전히 그의 소설 때문이다.

부르한 쇤메즈. [사진=황소자리 제공]
부르한 쇤메즈. [사진=황소자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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