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직전의 제주 바다.
해가 지기 직전의 제주 바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낚시를 왜 하는가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고 낚시하는 낚시꾼은 거의 없다. 무엇을 잡을까 혹은 어떻게 잡을까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더 많이 더 큰 고기를 잡는 방법, 하면 이야기는 더욱 달라진다.

낚시꾼들은 대개 단순 명료하다.

좋은 조황, 큰 고기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다.

낚시는 일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강이나 호수 혹은 바다에서 사색에 잠겨 정신의 도(道)를 닦는 행위가 아니다.

낚시는 인류의 조상이 생존을 위해 수렵할 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몇 안 되는 생존 방식 중의 하나다.

때문에 낚시는 잔인하고 거칠다.

종교 이전에 낚시가 발생했기에 종교 계율을 위반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적으로 말하면 본인이 생산과 소비의 주체이기에 소외되지 않은 노동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낚시에는 어떤 철학도 어울리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하면 낚시는 내가 잡아서 나와 내 가족과 내 친지가 먹는 단순 행위다. 그 순수성 때문에 어떤 철학도 범접할 수 없다.

기록적인 길이의 장마 동안 온 국민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장마 끝 무렵 태풍이 지나갔다. 태풍 이후 제주 근해에서 ‘갈치가 터졌다’는 소식이 제주 최성훈 사장으로부터 전해졌다.

‘터졌다’는 말은 엄청 많이 잡힌다는 뜻이다. 낚시꾼들의 은어다.

그래? 그렇다면 안 갈 수가 없다.

아무리 꼬임이라 하더라도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도 아니기에 핑계 삼아 만사를 제쳐놓고 제주로 간다. 갈 수밖에 없다.

요즘 제주도 갈치낚시는 거의 완전히 패키지 관광 상품화 되어 있다.

제주 낚시 선사(船社) 홈페이지에 신청하거나 전화를 걸면, 싼 비행기표 예약과 낚싯배 예약이 일괄적으로 처리된다. 만약 낚시 장비가 없으면 2만 원에 장비를 대여해 준다.

아이스박스를 가져갈 필요도 없다.

스티로폼 박스가 낚싯배에 준비되어 있어 5000원에 판매한다. 물론 얼음은 선비에 포함되어 있다. 몸만 가면 된다. 이게 바로 제주 갈치낚시의 특징이다.

제주 갈치낚시는 대개 오후 1, 2시 정도 제주행 비행기를 타면서 시작된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면 갈치배 선사 버스가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 버스를 타면 도두, 한림, 모슬포, 성산 등 그때그때 갈치가 잘 나오는 출조항까지 낚시꾼을 데려다준다. 항에 도착하기 전에 마트에 들러 낚시꾼이 필요한 물품, 예컨대 면장갑이나 간식거리 등을 준비할 수 있게 한다.

항에 도착해 바로 낚싯배를 타고 승선명부를 작성하면 배는 바로 출항한다. 배에는 물 등의 음료수와 얼음과 미끼가 준비되어 있다.

낚시꾼은 개인 장비만 준비하면 된다. 바늘이나 채비는 미리 준비해 가도 되고 배에서 구매해도 된다. 배에서 구매하는 편이 현지 바다 상황에 맞춘 것이라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

배에서는 본격적인 밤낚시가 시작되기 전에 저녁을 준다. 배에 따라서는 미끼 꽁치를 밤새도록 썰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렇게 낚시를 밤새도록 하고 귀항을 하면 아이스박스에 잡은 고기를 담아 택배, 냉동, 항공화물로 각각의 목적지로 보낼 수 있다.

잡은 고기를 먹기 좋게 손질해 달라면 손질도 해 준다. 물론 낚시꾼 본인이 수화물로 가져가도 된다.

이런 건 낚시꾼이 선택하면 된다.

잡은 고기를 박스 포장한 다음 아침 식사를 하고, 제주 공항 부근 목욕탕에 들러서 간단하게 샤워를 한다.

그 다음 공항까지 데려다준다. 여기까지 선사가 책임지고 진행한다. 이게 바로 요즘의 제주 패키지 관광낚시다.

제주 은갈치호 선단의 최성훈사장. 꾼들의 채비를 직접 점검해 준다.
제주 은갈치호 선단의 최성훈사장. 꾼들의 채비를 직접 점검해 준다.

이런 관광낚시의 개념을 확립한 선사 중의 하나가 제주 은갈치호 선단이다.

이 선단의 최성훈 사장은 제주 사람은 아니다. 낚시를 좋아하다가 선장 면허도 따고 제주도에서 낚시 사업에 뛰어들어 은갈치호 선단을 이루었다.

이제 성공한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그는 늘 열정적으로 일한다.

낚싯배 일은 고기를 잡는 어업, 즉 고기를 잡는 1차 산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낚시꾼의 시간을 잡는 관광업으로 보아야 한다. 그걸 이해한 선장이나 선주들은 성공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은갈치호 선단의 VIP호.
은갈치호 선단의 VIP호.

8월 23일 김포에서 오후 2시 비행기를 탄다.

제주에 도착하니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지고 난 다음이다. 버스를 타고 한림항으로 향한다. 최근 제주 갈치배들 중 일부는 낚시 인원을 12명으로 제한하는 이른바 우등 낚싯배를 운영한다.

갈치낚시 도중 가장 성가신 일이 옆 사람과 줄이 엉키는 것이어서 이를 피하여 낚시 인원을 아예 한 줄에 6명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간격이 넓어 낚시하기가 쉬워진다. 대신 승객을 적게 태우니 일인당 선비는 더 비싸진다.

통상적으로 제주 갈치배 하루 선비는 18만 원, 우등 낚싯배는 22만 원이다. 우등 낚싯배를 최 사장은 VIP호라 이름지었다.

평생 VIP 되어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오늘 하룻밤은 VIP가 되어, 열심히 낚시해 보자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온다.

VIP호에서 최사장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최사장 배를 탄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VIP호는 직접 운항을 한단다. 배는 한림항을 바로 출발하여 목적지로 간다.

30분 정도 항해하고 풍을 내린다. 배에는 ‘알리’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청년이 조수로 일하고 있다. 이 ‘알리’가 미끼용 꽁치를 밤새도록 썰어준단다.

채비를 내리자마자 함께 동출(동반 출조: 낚시꾼들의 말이다)한 친구의 초릿대에 반응이 온다. 해도 지지 않았는데 벌써 반응이 오면? 친구는 “이러다가 오늘 대박이 나는 거 아니야?”하고 즐거워한다. 올려보니 갈치가 두 마리 달려 있다. 기념사진 찰칵.

권재배 소장, 환갑이 되어도 고기를 잡으면 어린 아이의 미소를 짓는다.
권재배 소장, 환갑이 되어도 고기를 잡으면 어린 아이의 미소를 짓는다.

수심 70m. 최사장은 처음에는 40m 정도만 내리고, 해가 져서 집어가 되면 20m 정도만 내리고 낚시하란다.

바늘 하나 간격이 2m에서 2.5m이니 바늘 10개면 채비 길이가 20~25m다. 40m를 내리면 실제 미끼는 수심 40m에서 60m 사이에 있다.

이런 걸 직감적으로 알아채야 한다. 20m를 내렸는데 윗바늘에만 큰 게 물리면 조금 더 올리면 되고, 아랫 바늘에 큰 게 물리면 수심을 더 주면 된다.

이날은 밤새도록 수심 20m가 적정했다. 수심 20m을 주면 대개 위로부터 2번에서 6번 바늘에서 많이 잡혔다.

해가 지자 한 번 내릴 때마다 2~3마리의 갈치가 올라온다.

그중 반 정도는 3지 이상의 괜찮은 씨알이다(3지란 손가락 세 마디 정도 굵기의 너비). 10시가 지나면서 고등어가 섞이기 시작한다. 고등어가 물리면 좀 성가시다.

갈치나 고등어나 다 맛있는 생선이지만, 아무래도 갈치가 더 희소가치가 있으니 갈치를 선호한다.

갈치낚시를 하다 보면 항상 2지 이하의 작은 갈치(풀치라 한다)도 섞여서 올라오게 마련이다.

야간낚시 삼매경.
야간낚시 삼매경.

경험이 많은 꾼들은 이때 작은 갈치를 썰어 미끼로 사용한다. 갈치로 미끼를 사용하면 이점이 많다.

고등어 등의 잡어가 덜 물리고 갈치로 어종이 선별되는 경향이 다분하다는 것과, 갈치 씨알이 조금 굵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굵어진다고 단정하지 않고 ‘굵어지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한 데 주목하기 바란다. 실제 그렇다.

갈치란 동종 포식어여서 자기네들끼리도 상처가 나거나 재빠르지 못하면 서로 잡아 먹히고 잡아먹는다.

동종포식하는 갈치를 잡기 위해 작은 갈치를 미끼로 사용하는 데 대하여 ‘불쌍한 갈치!’ 한다거나 ‘잔인한 낚시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던 와중에 초릿대가 크게 휘청거린다. 초릿대가 위로 올라와 쭉 펴지기도 한다. 갈치의 경우는 아무리 대어라도 아래도 처박을 뿐 위로 올라오지는 않는다. 초릿대가 펴지거나 옆으로 째지거나 하면 방어나 삼치 종류다.

그럴 땐 빨리 줄을 회수해야 옆 사람의 낚시 채비와 엉키지 않는다.

얼른 채비를 회수했더니 제일 윗 바늘에 잿방어 한 마리가 달려 올라온다. 잿방어는 아열대성 어종으로 가끔 제주도 해역에서 잡힌다.

힘이 매우 좋고, 회맛도 일품이다.

재방어와는 다른 어종이다.

재방어는 삼치를 닮은 물고기다. 누가 물고기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좀 잘못 지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잿방어.
잿방어.

하여간 잿방어같이 맛있는 어종은 회로 빨리 먹어야 한다. 재빨리 회를 떠 친구와 여름밤의 정감을 나눈다.

배를 탄 다른 낚시꾼들도 한 점씩 먹고는 사라진다. 얼른 고기 잡을 욕심으로 느긋하게 회를 즐길 시간이 없다.

최사장이 제주 사람들은 잿방어를 두고 ‘간파치’라고 한다고 일러준다. 나중에 찾아보니 ‘간파치’는 일본 말이다.

다른 말도 그렇지만 제주 방언은 생선 이름을 부를 때도 상당히 특이하다. 이를테면 ‘보리멸’을 ‘모살치’라고 부른다거나 ‘붉은쏨뱅이’를 ‘우럭’이라고 부른다.

회를 끝까지 즐기고 다시 낚시를 한다. 파도도 거의 없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제주 바다에서 여러 번 갈치낚시를 하지만, 바다가 이렇게 순한 경우는 드물다.

바다가 순하면 오히려 갈치 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건만, 폭발적은 아니라 하더라도 따문따문 갈치가 올라와 심심할 틈이 없다.

오히려 바쁘다고 해야 정확한 말이다. 미끼 갈고 채비 내리고 입질이 오면 기다렸다가 채비 회수해 갈치를 아이스박스에 넣고, 고등어는 피를 빼서 바가지에 담았다가 다시 아이스박스에 넣고... 사실 노동도 이런 노동이 없다.

갈치낚시는 손맛도 없다.

초릿대의 움직임을 보고 줄을 잡고 회수하니 손맛이 있을 리가 없다. 오로지 잡아서, 먹고, 나눠주고, 저장하기 위해서 하는 낚시가 갈치낚시다.

그래도 재미있다. 재미있어서 먼동이 트는 줄도 모르고 하는 낚시가 또한 갈치낚시다.

해가 뜨면서 낚시가 끝나고 귀항한다. 30kg 정도 잡았나. 많이 잡은 꾼은 한 50kg은 잡은 것 같다.

박스에 담긴 갈치와 고등어.
박스에 담긴 갈치와 고등어.

서울로 가져가면 먹을 일만 남았다.

회로, 구이로, 조림으로, 국으로. 하룻밤 노동에 대한 대가는 가족과 친지의 즐거운 식탁에서 확인될 것이다.

갈치낚시는 원래 그런 낚시다.

노동이면서 재미있고, 내 입과 함께 주위 사람들의 입을 위하는 그런 낚시다.

(왼쪽부터) 갈치회, 갈치국, 갈치구이.
(왼쪽부터) 갈치회, 갈치국, 갈치구이.

팁: 갈치회 맛있게 먹는 법

갈치는 잡을 때 빙장시켜야 한다.

아이스박스에 40% 정도 얼음을 깔고 갈치를 잡으면 바닷물 두어 바가지 부어놓는다. 갈치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바닷물이 찰랑찰랑하면 딱 좋은 상태다. 이렇게 하는 것을 꾼들은 빙장이라 한다.

낚시가 끝나면 스티로폼박스에 갈치를 옮겨 담고, 얼음은 비닐 봉지에 담아 넓게 펴서 갈치 위에 올린다. 이렇게 해야 갈치가 최상의 신선도를 유지한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 화물칸에 실려 서울로 공수된다. 갈치회를 장만할 때도 일반 생선과는 좀 다른 과정을 거친다.

갈치회는 먼저 거친 수세미를 문질러서 은색 비늘을 살살 닦아낸다.

그 다음 포를 뜨고, 흰색 힘줄을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이렇게 먹어도 되지만 갈치는 상당히 기름져서 몇 점 먹으면 질린다.

때문에 갈치를 썬 다음에 얼음물에 2~3분 정도 담가 기름기를 좀 뺀 다음, 물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고들고들하게 한 다음 먹으면 가장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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