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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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캐나다의 초·중·고교에 다닐 적에 우리 아이들은 학기말이면 성적표를 들고 왔다.

고등학교 때는 영어 90점, 수학 80점 하는 식으로 과목별 점수가 성적표에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과목 담당 선생님들의 평가가 있었는데, 점수가 높든 낮든 간에 ‘무엇을 잘한다’고 칭찬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과별 교사들이 아이에 대한 의견을 일일이 적는 것 못지않게 낯설었던 문화는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평균 점수가 90점이 넘든 70점 아래든 몇 등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과목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 보여서 아이에게 무심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너보다 더 잘한 아이 있어?”

질문을 받자마자 아이는 기겁을 했다.

엄마 아빠가 보기에 잘했으면 그냥 잘했다고 칭찬만 하면 그만이지, 왜 남들과 비교를 하며, 더 잘한 아이가 있든 없든 그게 내가 받은 성적과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 정색을 하며 따지고 드는 바람에 성적표를 받아올 때면 ‘몇 등이나 했을까?’ 하고 거의 저절로 생겨나는 궁금증을 꾹꾹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등수를 궁금해하는 일부 부모의 성향을 두고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점수의 높고 낮음에 대한 관심을 넘어 등수에 집착하는 문화가 아이들 사이에서는 퍽 흥미롭게 비친 것이 틀림없다.

어느 날 우리 아이는 ‘몇 등을 했느냐'를 궁금해하는 부모들의 공통점이 있다고 전해주었다.

‘아시아 부모’. 그러니까, 아시아(주로 한국과 중국이다) 부모들만이 등수에 관심을 보인다는 얘기다.

이후 등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기미만 보여도 아이는 ‘아시아 부모’라며 우리를 놀려댔다.

나 같은 아시아 부모한테 익숙하지 않은 것은 또 있었다. 성적표가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학과목 선생님들과 시간을 정해 면담을 하는 날이 있다.

고교에 담임교사가 없으니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나 궁금해서 몇몇 과목 선생님들께 면담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이 성적도 좋고(별 문제없이 공부 잘하고) 내 의견 또한 성적표에 적었는데 무슨 할 말이 있어서 굳이 찾아왔느냐”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면담 자리는 좋지 않은 성적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를 선생님과 의논하는 곳이었다.

이민자인 우리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등수를 중요시하지 않는 캐나다 학교 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들의 중고교 졸업식에서도 접할 수 있었다.

아시아 부모인 우리의 경험으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졸업생 대표는 늘 성적 수석자였다.

성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겼으니 그리했을 것이다. 졸업식 때마다 접했던 일이라 전교 1등이 졸업생 대표가 되는 것을 그저 당연하게 여겼더랬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중고교 졸업식에서 보니 졸업생 대표는 성적 수석 졸업생이 아니었다.

물론 과목별 수석, 평균 수석을 한 졸업생들에게 상을 주지만 가장 마지막에 ‘조용필'처럼 등장해 가장 큰 박수를 받는 졸업생 대표는 ‘벨레딕터리언’이었다.

전교 1등은 벨레딕터리언이 호명되기 직전에 상을 받는다. 바로 그 벨레딕터리언이 졸업식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졸업생 연설’을 하게 된다.

아시아 부모의 눈에는, 전교 1등보다 빛나는 벨레딕터리언의 선발 과정 또한 흥미로웠다. 졸업식을 앞두고 중고교에서는 ‘벨레딕터리언 선정위원회’를 구성한다.

교사들이 선정 위원들이다. 위원회가 후보자들을 선정해 공개하면 몇 년을 함께 생활하면서 후보자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해당연도 졸업생들이 투표를 한다.

물론 후보자들의 학과 성적은 최상위권이지만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 있어 성적은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

리더십, 동아리 및 봉사 활동, 교우관계 등 고교시절 학교생활 내용이 성적과 비슷한 비중으로 반영된다.

동기생들의 투표 결과를 가지고 선정위원회는 최종 심사를 해서 벨레딕터리언을 결정한다. 종합적인 평가와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런지는 몰라도, 벨레딕터리언 선정에 누가 이의제기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벨레딕터리언은 졸업식에서 ‘전교 1등’을 제친 가장 주목받는 졸업생 대표여서 그 부모들까지 그날 특별대접을 받는다.

다른 부모들은 졸업식에 참여하면서 티켓을 구입하기도 하고 지정석이 따로 없지만 벨레딕토리언 부모는 ‘R석’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를 무료로 제공받게 된다.

시쳇말로 ‘성적과 등수가 깡패’인 문화에서라면 상상하기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벨레딕터리언이 졸업생 대표가 되는 것은 이곳 대학입시 문화와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캐나다에도 대학 서열은 있다.

공대는 어디가 좋고, 경영대는 어디가 최고라는 식이다. 그런데 같은 공대인데도 고교 학과성적 평균 95점이 떨어지고 93점이 붙는 경우가 있다(이곳은 대학입시 전형이 내신성적으로만 이루어진다).

공교롭게도 우리 아이의 친구들이 그렇게 붙고 떨어져서 ‘아시아 부모’로서 또 궁금했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성적이 더 좋은 아이가 왜 떨어졌는데?”

‘엑스트라 커리큘럼’, 곧 정규과목이 아닌 과외활동 성적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를테면 동아리나 학교 바깥의 봉사 같은 과외활동 내용이 대학입시의 당락에 적지 않게 작용한다.

그것은 대학이 “성적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우리 대학에는 이런 활동을 많이 한 학생이 잘 맞는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대학이 독자적인 기준을 가지고 자기 학교에서 공부를 더 잘할 만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데, 부모고 학생이고 더이상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다.

지망하는 대학에 못 갔다고 해서, 수험생이 크게 좌절하지도 않는다. 어느 대학이든 입학한 이후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학교나 학과를 바꾸거나 중도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취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캐나다 기업들은 공채시험을 보는 대신 취업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한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대학에서 받은 성적이 아니다.

일단 대학을 졸업했으면 취업 희망자의 생각과 대학 시절에 쌓은 여러 경험 같은 것들을 검토하면서 자기네 회사에 적합한 인물인가를 따진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아시아 부모들은 이렇게 불평을 하게 마련.

“학과 성적이 가장 좋은 우리 아이가 떨어졌는데, 기준이 뭔가? 이거 혹시 인종차별 아닌가?”

대학 시절 내내 학과 공부에만 몰두하면서 아무리 좋은 학점을 얻어봤자,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한 사람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시아 부모들은 대체로 잘 모르는 편이다.

최고의 등수, 성적만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다가는 이렇게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캐나다에도 사교육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액 과외비를 내가며 중고생 자녀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한국이나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더 잘하게 하려고 시키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아이를 좀더 잘 하게 하려고 시키는 사교육이다.

2등을 1등 만들려고 시키는 사교육이 아니다.

‘전교 1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기에, 한국에서 나온 역대 최악의 광고 카피 가운데 하나는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전교 1등이 꼴찌가 될 수도 있고, 성적 꼴찌가 1등을 하는 분야도 많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세상은 학교 성적 1등이 모든 면에서 다 잘하는 것으로 굴러가지도 않고, 그렇게 굴러가서도 안 된다.

고교시절 ‘전교 1등’을 서슴없이 입에 올리는 문화는 저 광고 카피만큼이나 저급하고 천박하다.

한때의 전교 1등을 울궈 먹으려 하면 할수록 공정한 사회가 멀어진다는 사실을 전교 1등 신봉자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전교 1등을 내세우는 일부 젊은 사람들에게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다.

어른들부터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스스로 ‘아시아 부모’가 아닌가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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