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와인 컨트리(Wine Country)’ 포스터.
영화 ‘와인 컨트리(Wine Country)’ 포스터.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넷플리스에서 와인 관련 영화 검색을 하니 2019년에 출시된 ‘와인 컨트리(Wine Country)’가 검색이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와인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영화가 드물기에 와인에 관한 영화인 줄 알고 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술로는 거의 와인밖에 등장하지 않고 배경으로 와이너리나 와인 셀러(정확히는 와인 터널이라고 영화에는 나온다.)는 풍성하게 등장하지만 줄거리 자체는 와인과는 크게 상관없는 미국의 갓 50대에 접어든 중년 중산층 여성들의 우정과 각자의 일상의 이야기와 여행중의 해프닝을 통한 화해와 이해가 주를 이루는 일종의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양념처럼 등장하는 와인에 대한 상식 몇 가지를 좀 더 알고 보면 이 영화의 묘미가 더해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와인에 관한 상식 몇 가지와 감상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Netflix)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Netflix)

우선 와인이 색깔별로 등장한다. 용어는 화이트, 레드 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배경으로 로제 와인도 등장한다.

로제 와인은 레드 와인 품종으로 레드 와인 양조 방식으로 만들지만 포도 껍질과 포도즙과의 만남의 시간(포도즙에 포도껍질을 담가 두는 것을 침용(Maceration)이라고 한다.)을 8시간에서 24시간 정도로 짧게 해서 색을 비롯한 포도 껍질의 성분을 약간만 우려내서 만든다.

말이 로제 즉 장미빛이지 양조가에 따라 이 침용 시간을 다르게 하기에 약간 붉은기가 감도는 황금색부터 엷은 루비색, 분홍빛, 밝고 영롱한 장미빛까지 그 색깔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당연히 오래 담가 둘수록 색깔은 붉은색을 더 띄게 되고 포도껍질의 탄닌이 많이 우러나기에 타닌감도 더 느껴지게 된다.

레드 와인은 통상 보름 안팎 정도 침용하는데 이는 발효기간 내내 담가 두는 셈이다.

침용(위로 뜨는 포도껍질을 휘저어서 포도즙속으로 담구고 있다.)
침용(위로 뜨는 포도껍질을 휘저어서 포도즙속으로 담구고 있다.)

다음은 다양한 와인 잔들이 소품으로 등장한다.

소위 잔의 스템이 있는 잔, 스템이 없이 물잔 같은 잔, 쇼핑에서 산 아주 큰 와인 잔과 검은색 잔까지.. 야외용 잔으로는 스템이 없는 잔이 당연히 좋다.

당연히 이 잔은 와인 잔을 잡을 때 스템이 없으니 볼 부분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잔을 잡을 때 꼭 스템 부분을 잡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와인 매너를 배울 때 등장하는 격식의 파괴이자 와인에 대한 부담감을 없애준다.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Netflix)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Netflix)

세번째는 포도 품종이다.

화이트 와인 품종으로 샤르도네(Chardonnay)와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가 등장하고 레드 와인 품종으로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 등장한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와인 컨트리의 왕’, 샤르도네는 ‘와인 컨트리의 여왕’에 비유하는 기초적인 멘트도 나온다.

이 두 품종이 나파 밸리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나파 밸리를 떠나 전세계적으로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많이 알려진 와인 품종이자 와인 중에 가장 많은 명품 와인들을 만드는 품종이 이 두 가지 품종이기도 하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프랑스 보르도가 원산지인 레드 와인 품종이고 샤르도네는 부르고뉴가 원산지인 화이트 품종이라는 것도 은연 중에 와인의 양대 산맥이라는 고향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신대륙인 미국 나파 밸리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한 곳에서 생산된다는 것도 의미를 부여한다면 부여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부르고뉴의 레드 와인 품종은 피노누아이고 보르도의 화이트 품종은 소비뇽 블랑 혹은 세미용이다.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피노 그리지오(Pinot Grigio)

여기서 피노 그리지오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 누아(Pinot Noir)의 변종으로 사실 미국에서 현재 가장 유행하는 화이트 와인 품종이기도 하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에서 이 화이트로 트렌드가 넘어온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피노 그리(Pinot Gris)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 피노 그리지오라고 하는데 주로 이탈리아 북서부와 프랑스에서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 품종으로 프랑스가 원산지이다.

이걸 이 영화에서는 여행지인 나파 밸리의 한 바에서 와이파이 비밀 번호로 ‘페니스그리지오(PenisGrigio)72’라고 표현한 것에서 이 동네가 와인 컨트리란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면서도 코미디답게 살짝 미소짓게 해준다.

사실 이 바에서는 맥주와 위스키를 주로 마실 것 같은 분위기이고 등장 인물들이 맥주를 마시는데도 굳이 피노 그리지오라는 포도품종을 살짝 코믹하게 풀어서 와인파이 비밀번호로 한 장치를 두어 이 곳이 와인산지라는 것을 한 번 더 밝히고 지나간다.

어느 나라나 술이나 특정 사물을 성적 용어나 신체 부위의 용어로 연결하여 농담거리로 삼거나 유머화하여 낯선 용어를 쉽게 기억하려는 현상이 있기 마련인 것 같다.

피노(pinot)는 이 품종의 포도 송이가 작은 솔방울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그리(Gris)나 그리지오(Grigio)는 포도 송이의 색깔을 의미하는데 영어로는 회색(Gray)이라는 의미이다.

다음은 현재 미국의 와인 문화 보급 정도에 관해서도 이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20대 시절 시카고의 한 이탈리안 피자가게에서 함께 근무하던 6명의 여인들이 50세 생일을 맞는 친구를 위해 모여서 나파 밸리로 주말 여행을 가면서 벌어지는 일인데 여기서 현재 미국 중산층 중년 여성들의 와인에 관한 문화 수준 정도를 엿볼 수 있다.

결론은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1980년대 이후 와인 문화가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는데 우리는 사람마다 다르게 볼 수 있지만 2005년 이후(좀 더 빨리 봐도 2000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들의 현재 와인 문화 보급 수준이 20여년 뒤늦게 출발한 우리 나라의 현재 와인 문화 보급 수준과 유사한 정도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대목에서는 문화라는 것이 어찌 보면 빨리 들어온다고 빨리 보급되는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와인 지식 쌓는 것에는 별관심이 없고 열심히 마시고 부담없이 즐기고 자신들의 대화에 집중하려는 모습들을 주인공들은 보여준다.

와이너리 서너 곳을 들르게 되는데 야외 와인 시음장에서 와이너리 직원이 와인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하면 다른 소리로 말을 돌려버리거나 막아버린다.

와인은 음료이므로 교육이 중요하지 않고 그저 맛과 향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강요받는 듯한 느낌이 싫고 귀찮다는 인상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와이너리를 방문해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용어를 잘 모르더라도 열심히 설명하는 직원의 말을 듣고 묻고 하는 편인데..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 (와인너리 야외 시음장)(Netflix)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 (와인너리 야외 시음장)(Netflix)

이 영화헤서는 와인 향을 이야기하라고 하여 이야기하면 직원이 그런 향은 없다는 소리도 한다.

사실 향은 사람마다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향의 느낌이나 종류가 다르기에 정답이 없는데 정작 정답이 없으니 마음 놓고 이야기하라고 해놓고는 그런 향이 없다고 하는 헤프닝 아닌 헤프닝도 생기니 짜증날 만도 하다.

향에 대해 두 번 정도 아니라는 얘기를 듣자 급기야는 포도향이 난다고 해버리는 장면에서는 이런 장면은 어느 나라에나 있구나 라는 생각과 대장금의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했습니다’라는 장면이 떠올라 살짝 미소를 짓게 한다.

실제로 와인 교육시에 화이트 와인에서는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향이 나고 레드 와인에서는 붉은 혹은 검붉은 베리류의 향이 난다고 누가 물으면 이야기하면 와인 초보자는 아닌 것으로 보여지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한다고 농담반 진담반 와인 초보자들에게 이야기를 해준 것도 떠올랐다.

화이트 와인은 신맛을 즐기는데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들은 레몬이나 라임, 자몽, 오렌지 등이므로 신맛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레드 와인에서 베리류의 향이라면 사실 와인 자체의 포도알도 영어로는 베리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표현인데도 사람들은 감탄을 한다.

전문가라도 되는 것처럼. 베리류는 딸기부터 블루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등이 있으니 듣는 사람마다 연상하는 바는 다르나 괜히 무언가 있어 보이지 않는가?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해주는데 굳이 초보자라고 밝힐 이유는 없지 않은가?

다양한 시트러스계열 과일의 조각들
다양한 시트러스계열 과일의 조각들

이 주인공들에게는 와이너리에서의 와인은 그냥 음료이지 관심이나 공부의 대상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데 집중하느라 목마름을 달래주는 약방의 감초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유기농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에서는 포도원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도 무시하고 포도원에 들어갔다가 주인장에게 쫓겨나기도 한다.

와이너리에서는 직원의 안내 없이 포도원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예의이다.

더구나 제초제나 살충제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포도밭이니 외부 관광객들이 옮길 지도 모를 병충해 등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와이너리에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면서 배우는 또 하나의 와인 세계의 전문 용어가 있다.

‘와인 다이아몬드(wine diamonds)’라는 용어가 그것이다.

와인 잔 밑에 깔린 투명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탈같은 것을 가리켜 와인 다이아몬드라고 한다고 알려준다. 이것의 정체는 와인 속에 있는 타르타르산(주석산(Tartaric acid))과 포타슘(칼륨(Potassium))이 결합되어 생긴 것이다.

우리말로는 흔히들 주석산염이라고 부르고 와인업계에서는 와인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인체에는 해가 되지 않아 마셔도 상관이 없다.

순수한 포도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오히려 원재료가 포도즙 100%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통상은 화이트 와인의 경우 안정화 단계와 필터링을 통해 처리하기에 주석산이 보이지 않지만 아주 찬 곳에 와인을 보관할 경우 가끔 병 속에 유리조각 같이 빛나는 결정체가 바닥에 깔려 있는 경우가 있고 이를 따르면 잔 속에 따라 나오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와인 성분에 있던 주석산과 칼륨이 결합하여 결정체가 된 것이다.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Netflix)

이들은 포도원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한 시골 농가(펜션)에서 머무르면서 나파 밸리 와이너리 이곳저곳과 나파 밸리의 도심에서 쇼핑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마지막날 밤에는 야외에서 포도원들을 바라보면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데 여기서 와인을 마시면서 사이 사이에 물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를 피할 수 있다는 펜션 여주인의 숙취 예방법도 등장한다.

이 역시 스쳐지나가는 장면이지만 기억해두면 영화에서 습득한 슬기롭고 건강한 와인 생활의 지식이 된다.

한밤중에 산등성이들에 위치한 포도원에서 초봄의 냉해 방지를 위해 켜는 화톳불 같은 불들로 인한 불빛의 물결은 장관을 이루며 하늘의 별들이 가까운 땅에서 빛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데 이 장면은 ‘구름위의 산책(A Walk in the Clouds)’이라는 영화에서의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구름위의 산책의 경우에는 이 화톳불을 줌인하여 바로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이 천사 같은 날개를 어깨에 메고 이를 퍼덕여서 열기를 사방에 퍼트리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구름위의 산책 (A Walk in the Clouds)의 한 장면
구름위의 산책 (A Walk in the Clouds)의 한 장면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와이너리 투어의 기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즐기고자 한다거나 한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초록빛 물결을 보며 봄의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갱년기를 맞이하는 연령대 의 사람들이 오랜 우정을 쌓은 친구사이지만 무언가 작은 장벽이 서로 간에 놓여 있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충분히 잔잔한 미소와 함께 유쾌한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기 전에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 각각 한 잔씩 두 잔을 필히 옆에 놓고 즐기면 금상첨화이고.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 (Netflix)
영화 와인 컨트리의 한 장면 (Netflix)

에필로그

이 영화는 2018년 3월에 크랭크인해서 6월초순까지 촬영했다고 하니 영화배경으로 나오는 와이너리 풍경들은 4,5월 경의 와이너리의 모습인 셈이다.

포도 열매가 맺히지는 않았고 꽃은 피어 자칫하면 냉해를 입을 수도 있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고 포도원이 초록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오랜 친구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오해, 6명 친구의 다양한 삶의 상황들, 세대간 격차,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들, 갱년기 여성들의 어쩔 수 없는 건강에 대한 걱정, 여행지에서의 일탈 등등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고 겪을 만한 다양한 일들을 코믹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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