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과 함께한 3일, 인제 자작나무 숲을 지키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 불이 붙으면 활엽수보다 강한 불꽃이 일어나고 잘 꺼지지 않아 진화에도 어려움이 있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 불이 붙으면 활엽수보다 강한 불꽃이 일어나고 잘 꺼지지 않아 진화에도 어려움이 있다.

‘숲 속으로 햇살이 밀려올 때 자연의 평화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숲의 바람은 당신에게 신선함과 생동감을 주며 그 때 당신이 가진 걱정은 마치 가을 낙엽이 떨어지듯 사라질 것이다“(존 뮤어=미국을 대표하는 자연주의자이며 20세기 환경 보전 운동의 선구자)

숲은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공군 조종사 출신의 필자 이경수(52)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조종사는 백두대간을 비롯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숲의 소중함을 산불 진화 현장에서 날 것으로 전하고자 한다.

필자는 또 산불 현장 뿐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소나무재선충병’ 등의 산림병도 사무실이나 연구실이 아니라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바라보며 그 심각성을 고발한다.

산을 접해가며, 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동시에 거기 살고 있는 나무와 풀들, 그리고 여러 가지 생물들이 좋아지기 시작했다는 필자는 이런 감정의 변화를 국민들과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필자는 1990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 소위로 임관한 뒤 2013년 6월 공군대령으로 전역하기까지 20여년 이상을 비행기와 함께 하늘을 누볐다

필자는 군에서의 비행경력을 바탕으로 현재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에서 헬기를 조종하며 산불진화를 포함한 항공방제, 화물운반, 산악구조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편집자 주

◇인제 '자작나무 숲을 지키다'=강풍과 함께한 3일 

전에는 알고도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는 산이 정말 많다.

산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너무 흔해서 있는지도 모르고 살아갈 때가 많다. 하늘에서 보면 더하다.

작은 도시나 마을, 논과 밭 등의 대부분은 산과 산 사이의 좁은 틈에 비집고 들어서 있다.

산림청 산림항공본부는 각종 재난 및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제주도를 포함 전국 12개 권역에서 산불진화, 항공방제, 화물운반, 산악구조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산불조심 기간에는 골든타임 내 산불진화를 위해 전국에서 15분 이내 출동을 위한 비상대기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서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 부모님과 같은 세대의 수 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간 애써 가꿔왔을 그 산들을 화재와 같은 자연재해로부터 지키는 거다.

산림항공본부는 산림청의 다른 조직들과는 성격이 완전히 구별되는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따라서 구성원들도 산림청의 그곳들과 확연히 다른 매우 특별한 조직이다. 임무수행의 핵심요원인 조종사와 정비사, 그리고 재해대응 요원들을 대부분 육·해·공군의 관련 업무에서 수십 년 동안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로 구성한 이유가 바로 이러한 특별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지난 2019년 4월 4일부터 3일간 강원도 지역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산불은 기후변화 추이에 따른 산불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당일 오후 전국 9곳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산불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에 산림항공본부에서는 가용한 모든 헬기를 동원하여 순차적으로 산불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바람이 계속 강해져 강풍특보(25M/S)가 발령되는가 하면 고성과 속초지역에 야간산불이 추가로 발생하여 모든 지역에 동시대처가 어려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는 총력대응을 지시했으며 산림항공본부도 전국의 가용한 모든 헬기를 강원도 지역 산불진화에 집중하였다.

점심식사 후 출동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Ka-32 헬기를 이륙시켜 최초 산불지역인 아산과 봉화지역으로 출동지시를 받아 이륙하였으나, 산불지역이 많아 출동 변경지시가 계속 내려지고 있었다.

경북 봉화로 비행 도중 변경된 지시에 따라 본부 인근 횡성지역의 산불을 진화하고 복귀, 연로보급 후 다시 철원 산불지역으로 출동지시를 받고 출동 중 강원도 인제지역 산불발생으로 인제 산불현장에 최초로 투입되었다.

한석산(1119m) 기슭에서 발생한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동쪽의 정상방향으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한석산(1119m) 기슭에서 발생한 불길은 강한 바람을 타고 동쪽의 정상방향으로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다.

인제지역 산불현장에 진입 시 멀리서부터 보이는 맹렬한 화세와 연기, 바람은 비행을 꽤 오래 한 내게도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막막함과 두려움을 부기장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어떻게 진화를 시작할지에 대한 고민은 지울 수 없었다.

연이어 도착한 임차헬기 3대가 특유의 노련함을 발휘하여 각자 산불을 진압하기 시작했고, 나는 이에 합류하여 낮은 지역 민가 주변과 계곡 부분의 축사 등으로 번지는 산불을 먼저 진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는 산불은 정상 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사정없이 확산되고 있었다.

산림항공본부에 추가 헬기를 요청했지만, 타 지역의 산불을 진화하고 이동하려면 많은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산불의 확산을 최대한 막아야 했다.

임차헬기는 소형이고 바람에 약하기 때문에 계곡부분의 민가 피해 최소화에 투입시키고 나는 정상쪽으로 확산되는 불에 집중했다.

강풍으로 인해 불이 산 정상쪽으로 계속 번질 경우 그 동쪽에 있는 설악산까지 불이 옮겨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 시간 정도 정신없이 연기와 바람 속으로 헬기를 조종했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여기저기 불타 없어지는 소나무와 사방으로 번지는 산불을 보면서 마음만 급하고 아쉬울 뿐이었다.

서풍계열의 바람이 강해 산의 정상부분으로 먼저 불이 번지고, 이어서 산의 경사면을 따라 밑으로 번지는 모습.
서풍계열의 바람이 강해 산의 정상부분으로 먼저 불이 번지고, 이어서 산의 경사면을 따라 밑으로 번지는 모습.

연료보급 후 현장에 다시 진입하니 산림항공본부의 추가 헬기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준 동료들이 고마웠다.

추가 헬기들에게는 동쪽 산의 정상쪽으로 확산되는 산불의 진화를 부탁하고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고도를 올려보니, 남동쪽 자작나무 숲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불이 확산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계속해서 서풍계열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어서 불이 자작나무 숲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지상에는 이미 많은 수의 소방차와 인력이 도착해 있었지만, 이런 기상상태에서 그들에게 산불의 확산과 효과적인 진화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사람이 투입되기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근처의 동료 헬기와 편대를 구성하여 몇 차례 화세가 강한 부분의 확산을 저지했다.

그러나 바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강한 바람은 담수를 위한 제자리비행과 계곡 사이의 비행을 더 어렵게 만들었고 배풍으로 진입되는 엄한 지형의 진화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여러 대의 헬기가 효과적으로 물을 투하한 보람으로 자작나무 숲 방향의 화세가 진정되었다.

하지만, 동쪽으로 확산되는 산불의 확산세가 꺾이지 않아 다른 헬기들은 그쪽으로 투입시켜야 했고 나는 계속해서 자작나무 숲 방향의 산불을 진화했다.

비행을 하면 할수록 바람이나 산불보다 시간과 싸운다는 생각이 든다.

불 속으로 물을 투하하고 다시 물을 담수하러 비행을 반복할 때면 주변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맹렬하게 번지는 불꽃과 연기였다.

산에 불이 난건지 불 속에 산이 있는 건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조종석으로 들어오는 송진향이 섞인 소나무 연기의 메케한 냄새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물을 담는 50초 정도의 제자리비행이 너무 길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쉽게도 우리 헬기의 임무를 위한 비행시간은 이륙 후 두 시간 정도다.

이후는 연료보급을 위해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이럴 때는 치열한 산불현장을 두고 이탈한다는 것이 왠지 동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동료 헬기들과 물을 담수하고 있다. 오후가 되고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50초에서 1분 전후의 제자리비행 시간에 집중력이 더 필요하게 되고 그 시간도 아주 길게 느껴진다.
동료 헬기들과 물을 담수하고 있다. 오후가 되고 비행시간이 길어질수록 50초에서 1분 전후의 제자리비행 시간에 집중력이 더 필요하게 되고 그 시간도 아주 길게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진화율을 내기 위해서는 빨리 타 지역에서 비행하는 헬기들을 추가로 투입해야 한다.

전국의 관리소에서 추가 헬기들이 속속 현장에 합류했지만, 결국 일몰시간이 지나도록 눈에 띄는 진화율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일몰 이후까지도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다.

산불을 진화하며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한 바람 속에서 여섯 시간 이상의 긴 비행시간 동안 이렇게 집중해서 비행을 한 기억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짐에 따라 불은 더 선명해진다.

조종사들은 일몰시간을 전후한 때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1분 1초가 아쉽고 물 한 방울이 아까울 때다.

불이 잘 보일수록 불을 끄고 싶은 충동이 더 강해지지만, 그럴수록 비행을 마쳐야 할 시기임을 알아야 한다.

계곡으로 비행하는 헬기 위로 날아다니는 불꽃들을 보며 쉽게 끝나지 않을 하루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날은 하루가 너무 길다.

일몰 후 야간산불로 진입하게 되면 불길은 더 선명해지고 마음은 급해진다.
일몰 후 야간산불로 진입하게 되면 불길은 더 선명해지고 마음은 급해진다.

강한 바람과 산세가 험한 지형에서 산불진화 비행을 수행하는 것은 평소 보다 더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필요로 한다.

경험상 비행공간에서의 집중력은 강한 체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약 5시간 정도 비행했을 때부터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손가락과 팔, 다리가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했다.

부기장과 교대해 가며 비행을 했지만 쌓이는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다시 연료보급을 해야 할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바람은 줄어들 기미가 없었다.

일몰 후 30분 이상 산불진화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더 이상 산불진화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두워져 내일을 기약해야 했다.

착륙해서 연료보급과 점검을 마치고 나면 저녁시간을 지나 이미 밤중으로 접어든다.

다음 날 일출시간에 맞춰 비행을 시작하려면 새벽에 일어나 비행준비를 해야 한다.

비교적 바람이 적은 아침 첫 비행은 산불진화에 최적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산불진화 비행이 며칠씩 이어지면 조종사들은 이 시간을 가장 주의해야 한다.

작일 힘든 비행의 피로를 회복할 충분한 시간이 부족하며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항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곤란하다.

일출과 동시에 피어나는 안개도 복병이다.

비행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가장 많은 시간이다.

불행하게 다음 날 새벽에도 바람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래도 기온이 낮아 산불진화의 속도가 빨라질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일출을 보며 동시에 이륙하여 일사분란한 대형으로 비행하며 절벽 바위틈과 소나무 그루터기 산불에 집중적으로 물을 쏟았다.

평상시 일출을 보며 비행할 때의 상쾌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분명히 뭔가 하고 있다는 뿌듯함은 충분했다.

예상대로 약 두 시간 후 연료보급 시에는 어느 정도 진화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대형산불 진화의 경우 조종사들이 쉴 수 있는 시간은 연료보급을 하는 15분에서 20분의 시간이 유일하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거나 화장실을 가거나 체조 등으로 몸을 풀어줘야 한다. 잠시 커피를 마시는 사치를 부려 보기도 하지만, 열심히 임무비행을 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불행한 일은 겹쳐서 연이어 발생한다는 말이 있듯이 작일 밤 사이 속초에는 큰 불이 지나갔다.

아침까지 이어졌다면 모든 헬기가 그쪽으로 투입될 뻔했지만, 새벽에 모두 진화되었다 한다. 다행이었다. 우리에게 속초산불까지 헬기를 투입할 여력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행시작 후 3일째, 산불진화의 마지막 단계로 잔불을 정리하고 재불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하게 물을 뿌려 준다. 산불진화 비행의 가장 여유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비행시작 후 3일째, 산불진화의 마지막 단계로 잔불을 정리하고 재불을 방지하기 위해 충분하게 물을 뿌려 준다. 산불진화 비행의 가장 여유 있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봄철 산불진화의 최대 어려움은 건조함이나 담수지의 부족이 아니라 강한 바람이다.

산의 건조함이나 기타 부족한 부분은 더 많은 헬기를 투입하거나 지자체, 소방요원들과 같은 다른 부서와 협조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강한 바람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재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비행제한치를 초과하는 강한 바람 속에서 8시간이 넘는 비행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강요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항공본부 조종사들 중 그 누구도 비행을 종료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연료보급 후 다시 묵묵히 조종석으로 향하고 엔진을 시동하여 현장으로 비행한다.

그 상황에서 산불을 끌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기하면 모두가 포기하는 거다.

누군가는 끝까지 노력했고 결국에는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장의 조종사라면 누구나 비행시간이나 경험의 많고 적음에 무관하게 격렬하게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 통제할 수 없는 강한 바람 앞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과 공포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은 그것을 어려운 시기에 보여줄 수 있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김광국(金光國)의 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의 발문에서 유한준은 “알면 진실을 아끼게 되고 아끼면 진실을 보게 되고, 보면 안목이 길러지니 헛되이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문화유산에 대한 안목을 얻는 방법을 말하였다.

이는 문화유산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리라. 또한,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그의 책 『통섭의 식탁』에서 동물이나 곤충들을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산과 들과 식물들도 알면 사랑하게 된다.

지금 내게 보이는 백두대간의 산과 나무 식물들은 이전과 같지 않게 친숙하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산림항공본부에 근무하며 산에 애정을 갖게 된 이유도 있지만, 우연한 기회에 식물과 연애를 한다는 식물 연구학자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생긴 변화다.

나는 지금 산을 사랑한다. 그 속에 있는 많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식물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어느새 그 속에서 생활하는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경수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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