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시인의 『악의 평범성』(창비시선 453)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시인 이산하는 나의 대학 동기다.

경희대 국문과 79학번. 본명은 이상백이다. 마른 몸매에 조금 작은 키. 그는 넉살이 좋았다.

뭔 이야기를 그리도 좋아하는지 클래식이 나오는 경희다방에서 여러 명이 만나면, 늘 이산하가 이야기를 했다. 바슐라르, 니체, 말라르메, 랭보 등등. 그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지만 좀 재미있기도 했고, 또 ‘뻥’이 심했지만 악의는 없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뻥’을 쳐가며 이야기했던 거 같다. 지금은 작고한 박남철 시인, 박덕규, 이문재, 안재찬(류시화) 시인 등과 자주 어울렸던 것 같다.

대학신문사 사람들과도 자주 놀았다. 이륭이란 필명으로 ‘시운동’ 동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사라졌다. 1982년이었다.

내 기억이 아물거리지만 <민주전선> 인가, 하는 지하신문을 만들고, 당시 안기부와 경찰의 추적을 피해 잠수를 탔던 것으로 기억된다.

잠수를 타면서 나온 게 그를 유명하게 한 시 「한라산」이다. 1987년 <녹두서평>이란 잡지에 게재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 잡혀들어가 옥살이를 좀 했다. 그때 검사가 황교안이라 들었다.

1990년대 중반 내가 경희대에서 잠시 교수로 있을 때 국문과 선배였던 교직원과 힘을 합쳐 한 학기 장학금을 받게 하여 이산하를 복학시켰다. 게으른 이산하는 한 번도 학교에 나타나질 않았다.

내가 18학점, 이산하 학생의 수강 신청을 하고, 내 과목을 두 개 듣게 하고, 다른 교수에게 부탁해서 나머지 학점을 채웠다. 다른 교수에게 사정을 말하고 모두 학점을 받게 했다. 그렇게 18학점을 채워 이산하를 1996년인가 졸업시켰다.

게으른 이산하는 졸업장도 받으러 오지 않아서 내가 받아서 나중에 전해 주었다.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고 이산하는 동기 덕분에 대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을 편법 학사처리였던 셈이지만, 나는 이산하를 그렇게라도 졸업시키고 싶었다. 내가 술 마시고 놀고, 책 보고 연애하는 동안 그는 도망다녔고 잡혔고 고문당했고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빚을 그렇게 조금은 갚은 셈이다.

그리고 그가 시집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1999)을 내었을 때도 어딘가에서 인터뷰를 했다.천성이 게으르니 시집도 적게도 낸다. 그리고 22년 만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시집을 2021년에 냈다.

보도자료를 보니 이번 시집은 해설자(김수이 교수)가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

<이산하의 이번 시집은 “최근 시단에서 찾기 힘든, 거시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시집이다. 해서 김수이는 이 시집이 세 가지 유형의 바퀴를 그린다고 해석한다. 첫째,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으로서의 수레바퀴로 ‘자본론과 진화론’(「엥겔스의 여우사냥」)으로 대표되는 바퀴이다.

둘째는 역사를 피로 물들여온 악의 평범성, 즉 인간을 살상하는 끊임없는 폭력의 바퀴로 “한국전쟁 때 미군지프에 깔려 죽은/북한 인민군들 머리와 몸의 바퀴자국이 마치 지퍼무늬 같다고 해서”(「지퍼헤드2) 생긴 ‘지퍼헤드’라는 표현으로 상징된다. 셋째, 꿈과 신념이 잿더미가 된 세상에서도 인간이 두 손으로 굴리는 삶의 바퀴이다. “두 바퀴를 두 손으로 직접 굴리는 이 휠체어는/천천히 손에 힘을 주는 만큼만 바퀴자국을 남긴다”(「산수유 씨앗)에서 휠체어 바퀴자국은 앞세대와 뒷세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야 하며, 인간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준다고 해석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발걸음이다.>

출판사(창비)에서는 이산하 시인과 짧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22년 만의 신작 시집을 펴내셨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시를 안 쓰신 것은 아닐 텐데, 시집이 이렇게 늦어진 이유가 있으신지요?

시보다는 산문과 번역에 치중했던 편이다. 그동안 짧은 아포리즘 같은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 산사기행집 '적멸보궁 가는 길' '피었으므로 진다', 장편성장소설 '양철북', 번역시집 '살아남은 자의 아픔'(프리모 레비 지음) '체 게바라 시집'(체 게바라 지음), 복원판 시집 '한라산' 등 7권을 내며 여러 악기들을 연주해보았다. ‘시’라는 악기도 혼자 틈틈이 튜닝하며 연주했는데 공연만 오랜만에 했을 뿐이다.

-‘'한라산'의 시인’이라는 표현은 훈장일 수도 있으나 족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유배지」에서도 본인이 '한라산'으로 인해 유배를 갔고, 이제 새로운 유배지가 어른거린다고 쓰셨습니다. 이산하 시인에게 '한라산'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라산」 서사시는 내 27살의 비명이자 통곡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될 줄은 몰랐다. 네게 너무 많은 진실을 강요했고, 너무 많은 물고문의 악몽을 상기시켰다. 나도 가끔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럴수록 더욱 강박감의 늪에 빠진다.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각별히 집중했던 주제나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고문당할 때 가장 힘든 것은 고문자가 웃으며 자기 자식들 자랑할 때이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들이 나와 똑같이 평범한 얼굴들이라는 점이다. 살아간다는 것의 다른 표현은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하는가이다. 우리는 가끔씩만 인간이 된다.

-시와 문학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다수 실렸다. 여전한 사회적 모순에 마음과 눈길을 보내는 시인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시는지요?

세상은 강자가 약해져야 바뀌는 게 아니라 약자가 강해져야 바뀐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다.

-다음 시집은 언제쯤 기대해도 좋을지요?

8명의 젊은이들이 동시에 처형된 ‘인혁당 사건’ 서사시를 내년쯤 낼 예정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인의 말은 이렇다.

자기를 처형하라는 글이 쓰인 것도 모른 채

봉인된 밀서를 전하러 가는 ‘다윗의 편지’처럼

시를 쓴다는 것도 시의 빈소에

꽃 하나 바치며 조문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22여 년 만에 그 조화들을 모아 불태운다.

내 영혼의 잿더미 위에 단테의 「신곡」 중

이런 구절이 새겨진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한 20년 전에 이산하와 나는 이 문제로 다툰 일이 있다. 그래도 희망이 있지 않은가? 했더니 그는 희망은 없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인간에 대한 기대를 해야 하지 않는가? 라고 했지만 그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20년이 지났는데 그는 이번 시집에서도 그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내가 졌다. 희망이 없다고 해도 좋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좋다. 다른 시인이 희망을 노래하면 된다. 이산하에게 ‘희망’은 항복이고 변절이고 위선이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를 안다.

이산하의 이번 시집 시들은 어렵지 않고 쉽게 잘 읽힌다. 이제 그가 겉멋을 완전히 버렸기 때문이다.

이산하 시인이여, 강건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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