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서 배우는 명문가를 만드는 지혜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신축년 설 명절 연휴에도 모든 가족이 모이지 못한 집이 대부분이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비록 모든 가족이 모이기 힘들지만 설날은 온 가족이 모여 가족의 화목을 다지면서 조상을 기리고 자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의미있는 시간이다. 또한 흩어져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가훈과 가풍을 전하는 시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와인 문화가 본격화되어 설날에 감사의 마음을 와인으로 전하기도 하고, 와인으로 온 가족이 함께 마시며 축하도 하고 주방에서 요리로 고생한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와인을 통해 명문가를 이루기 위한 지혜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와인 명가 로마네 콩티 (프랑스 부르고뉴) [사진=위키피디아]

우선 명문가의 조건은 무엇일까?

다수의 조상이 사회적으로 높은 권력의 자리에 오른 가문일까?

아니면 학식이 높거나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하여 명예가 높은 조상들을 둔 가문일까?

그도 아니면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몇 대에 걸쳐 부를 유지하고 있는 집안일까?

한마디로 권력, 명예, 부 중 어느 하나나 둘 이상을 수 대에 걸쳐 가진 가문이 명문가일까?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이룬 집안을 부러워할 수 있지만 존경까지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명문가는 유명세를 넘어 적어도 존경받을 만한 의미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이런 세 가지가 없더라도 정의의 실현을 위해 불의와 싸우거나 자신도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을 진정한 명문가라고 하여 더 높이 칭송한다.

그리고 명문가라는 것은 조상도 조상이지만 당대에서만 잘해서는 안 되고 자식까지도 조상과 당대의 그런 가풍을 물려받아 실천하는 가문을 두고 일컫는 것 같다.

태어난 집안이 비록 명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과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들 대에서는 명문가를 이루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의 꿈이라고 본다.

창하게 명문가를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자녀를 둔 부모가 자식과 자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곧 명문가의 꿈의 출발점인 것이다.

폐트뤼스와 와이너리 입구의 성 베드로 상 (프랑스 보르도 뽀므롤)

자녀가 자유롭고 정의롭고 호기롭고 당당하고 배려심 있고 너그럽고 여유 있고 교양과 품격과 선한 양심을 갖추기를 모든 부모가 바란다. 

이런 명품 인격이 자녀가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고 나아가 사회가 행복해지는 길이기 때문이고 그 결과 이런 좋은 인품의 사람들이 여러 대에 걸쳐 존재한다는 것이 명문가의 기본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런 좋은 인품을 갖추려면 어떤 환경이 조성되어야 할까?

필자가 보기엔 명품 와인의 조건과 좋은 인품 즉 ‘명품 인격’의 배양 조건에 유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명품 와인의 조건을 통해 그 비결의 영감을 얻어보자.

와인에도 명품 와인이 따로 있다.

명품 와인이 되려면 우선 원재료인 포도가 최상급이어야 한다. 최상급 포도가 생산되려면 우선 토양과 지형 조건이 좋아야 한다.

토양은 배수가 잘 되는, 다른 작물에는 척박한 조건인 자갈이나 모래땅이어야 하고, 포도원은 일조량이 풍부하면서도 햇볕을 오래 받는 남쪽 방향(남서, 혹은 남동 포함)이면서도 경사지여야 하되 일교차가 커야 한다. 

샤토 오존 (프랑스 보드로 생떼밀리옹)

포도나무 수령은 기본적으로 최하 20년에서 주로 3~40년은 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명품 와인들이 생산되는 와이너리들의 수령이 그렇다.

그리고 포도나무 한 그루당 서너 송이에서 최대 6송이를 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는 한 그루당 750ml 와인 한 병 혹은 포도나무 두 그루당 한 병이 생산되게 관리한다는 이야기이고 이 포도송이들에 영양분들이 최대한 응축되게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도나무간의 거리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게 심어져야 한다. 포도나무 간에 서로 적당한 경쟁이 있어야 생기 왕성하고 좋은 포도가 열린다는 것이다. 경쟁이 없으면 굳이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생존과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포도나무도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이상의 조건에 기후 조건이 따라붙는다.

포도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에는 지나치게 추워서도 안 되고 적당한 강수량이 있어야 하고 포도가 익어가는 시기에는 맑은 날이 계속되어야 한다.

기후 조건을 제외한 앞의 네 가지는 사람이 어찌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이나 이 기후 조건만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사람이 통제 불가능한 요소로 해마다 다르니 순전히 천운에 따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래서 빈티지 차트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상의 최상급의 포도가 생산되었다고 이것이 명품 와인이 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또 아니다.

지혜롭고 경험 많고 솜씨 좋은 양조가를 만나 제대로 된 양조와 숙성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식자재 원재료가 좋다고 누구나가 좋은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요리가 되는 것도 아닌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안젤로 가야 ( 이탈리리아 피에몬테 소리 산 로렌조)

이런 필요충분 조건하에 만들어진 최상급 와인은 첫째 은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다양한 향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둘째 전체적으로 산도와 탄닌 등의 맛이 균형이 잡혀 있어 어느 한 가지가 튀지 않고 전체적으로 조화로우며, 셋째 목넘김이 비단처럼 부드럽고 그 풍미가 마시고 나서도 오랫동안 입안에서 맴돌게 된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맛과 향의 변화는 있을망정 시종일관 좋아서 마지막 잔이 아쉽고 마지막 잔 이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리고는 또 마시고 싶어지게 만든다. 그 황홀경을 다시 즐기고 싶어서. 마치 마약에 중독된 듯이…

좋은 인품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교양과, 지식을 넘어선 깊은 지혜의 향기와 자애로울 정도의 부드러움에 반하여 오랫동안 그 자리에 그와 계속 있고 싶고 그 이후로도 만남을 지속하고 싶어한다.

이런 좋은 품성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시련 속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자존감과 자부심, 가진 재산이나 부, 권력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받을 만한 품격의 부모, 적당한 선의의 경쟁 상황, 정직과 정의, 상생과 공생의 가치에 대한 개인과 가정의 인식 그리고 사회적 공감대, 성적보다는 무엇을 위해 왜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학교 교육 등의 제반 조건하에서 배양된다고 볼 수 있다.

마르케제 안티노리 솔라이아 포도원(위)와 양조장 (아래) (이탈리아 토스카나)

이들 조건 중에서도 개인에 따라 통제 불가능한 것이 있다.

어릴 때 부모 중 어느 한쪽이나 둘 모두를 잃거나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조건이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할 수 있다. 무시할 수 없는 운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와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와인은 명품 와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지만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자신만의 존재의 의미를 선택할 수 있기에 운 탓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달리 해석하면 명품 와인의 조건을 들여다보면서 여기서 영감을 얻어 스스로 그 조건을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최고의 운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누구나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인향만리(人香萬里)를 만드는 고매한 품격의 명문가의 시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설에는 어떤 명품 와인을 따서 자손들과 명문가의 기초를 다져볼까.

모두가 안 된다고 하는 척박한 땅에서 불굴의 정신으로 일구어낸 명품와인.

와인명가의 지위를 수백년 지켜온 명품 와인.

명품와인이었다가 중도에 그 반열에서 탈락했다가 다시 명품와인으로 복귀한 와인.

무명에서 남다른 도전과 의식으로 명품와인의 반열에 오른 와인.

혼자가 아니라 협동하여 함께 명품와인을 이룬 와인.

전통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혁신과의 조화를 끊임없이 추구하여 명품 와인의 명성을 유지하는 와인.

과거에는 와인 명가였으나 이제는 더이상 그 설립자의 명가가 아니라 다른 곳에 매각되어 소유주의 이름이 바뀐 채 기존 명가의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와인.

와인에는 인간사처럼 다양한 스토리의 와인 명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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