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소매 사업 엿보기(1)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와인소매업은 현장에서 마시느냐 테이크 아웃하느냐에 따라 크게 두 분야로 나뉜다.

레스토랑 등의 업소시장(현장에서 마시기에 On Premise 혹은 On Trade라고 한다.)과 편의점, 백화점, 동네 수퍼 등의 샵시장(테이크 아웃해서 가지고 가기에 Off Premise 혹은 Off Trade라고 한다.)이 그것이다.

현재 시장 구성은 업소시장 : 샵시장이 2:8로 샵 시장이 압도적으로 점유율이 높다.

통상은 4:6 정도나 반반인 경우가 주요 와인 수입국들의 현상인데 우리가 유달리 샵시장의 비중이 높은 것인데 우리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2000년 이전에는 오히려 업소시장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아마 8, 90%에 달했을 것이다.

이유는 당시만해도 와인은 특수층만이 향유하는 주류라서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와인을 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5년 이마트 양재점을 필두로 대형마트들이 와인을 본격 취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와인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더니 2007~8년 즈음에는 이 비율이 4~5 : 5~6 정도로 크게 차이가 없게 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는 201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아예 샵시장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게 되어 현재와 같이 크게 역전된 것이다.

이렇게 샵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와인이라는 상품의 속성과 소비 습관 및 유통 경로의 변화가 있다.

우선 와인은 ‘다품종(브랜드) 소량으로 거래되는 지식상품’인지라 모르면 못 마시고 못판다는 소비자들과 판매자들의 상품 자체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업소 입장에서는 다품종 소량의 상품을 진열할 공간도 충분하지 않고 한정된 고객층만이 와인을 마시는 상황에서 언제 판매될지도 모르는 와인을 무작정 재고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입장도 못 된다.

더구나 사장이나 홀 서빙 직원이 와인을 알아야 권할텐데 사장도 모르고 그런 직원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도 취급하는데 장애 요인이 된다.

물론 와인이라는 신문화가 다른 음식점과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생각하여 취급하는 업장도 새로이 생겨나기는 했으나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샵 시장은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각 수입사에서 파견된 전문 판매 인력들이 와인을 시음하면서 설명할 시간을 충분히 갖을 수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경우 다른 OECD국가에 비해 전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음식점 분야의 비중이 높다 보니 경쟁이 심해서 평균 3~5년 사이에 70~90%의 음식점이 도산을 한다는 점도 이들에게 와인을 공급하는 수입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의 부담이 커서 공격적으로 거래선을 개척하기 보다는 믿을 만한 한정된 업소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이것도 업소 시장의 비중을 낮추는 한 요인이 된다.

물류와 영업기능을 가진 도매상들조차도 부실채권 가능성과 다품종 소량이라는 상품 속성으로 인해 취급하는데 비효율적이라서 멋모르게 덤볐다가 취급 상품 수를 대폭 축소하거나 공격적 영업을 하지 않게 된다.

와인을 위주로 영업하는 도매상 수가 많지 않다는 것도 이유라면 이유가 된다.

2003~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50만원 이상 법인 카드 사용은 접대선의 주민등록번호까지 기재해야 하는 법이 생기고 룸살롱들이 영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때마침 불기 시작한 와인 문화 바람에 편승하여 와인도 같은 술이라고 쉽게 생각하여 그 즈음에 룸살롱 마담들이 와인을 취급하는 쪽으로 대거 선회하기는 했으나 이 역시 2년이 못가서 대부분이 문을 닫고 말았다.

와인이 알코올 음료지만 다른 주종과 달리 지식상품이란 걸 간과하여 공부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비싸게 와인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에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750ml 돔페리뇽 한 병을 70~80만원씩(심한 경우 백만원씩) 받는 곳도 있었으니 위스키 같은 독주의 폭탄주 접대 문화에 익숙했던 술소비 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저도주인 와인을 마시게 되면 순식간에 서너병은 기본이 되다 보니 접대비가 감당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할 전설 같은 이야기가 그 사례다.

물론 애주가들에게 당시에는 와인이 낯설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하나 샵 시장의 비중이 높아지게 된 배경에는 코키지 프리를 선언하는 레스토랑들이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와인을 모르니 판매할 수는 없지만 와인을 갖고 가도 되냐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늘어나면서, 화이트 와인을 칠링해주고 와인을 오픈해주고 와인 잔을 제공하는 등의 서비스를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해주는 코키지 프리를 선언하거나 이 비용을 아주 저렴하게 받는 업소들이 증가하면서 대형 마트나 와인 전문점에서 와인을 사서 업소로 가지고 가는 소비자들이 증가한 것이다.

마트에서 2~3만원하는 와인을 업소에서 7~8만원 하는 것을 아는 소비자라면 아주 특별한 경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코키지가 없거나 저렴한 업소를 찾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유통 구조의 비율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유통 경로에서 업소 시장의 비중이 다시 점차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다른 나라들처럼 업소 시장의 비중이 4~50%로 다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와인을 즐기는 소비자층이 점차 증가하고 보다 젊은 세대와 여성들로 와인 문화가 확산되면서 이들은 와인 브랜드의 지명도나 생산 지역, 품종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와인 자체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 보니 과거보다는 음식점들에서도 와인을 취급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지게 되면서 다시 업소 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와인을 몰라도 업소에 가성비 높은 와인을 가져도 놓으면 판매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소비자들이 알아서 한정된 범위내에서라도 골라서 마시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특히 맛집으로 소문난 집일수록 와인 구색에 대해서도 믿는 것인데 실제로 젊은 업소 사장일수록 와인 구색에 신경을 쓰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업주들도 과거와 같이 샵가격의 서너배 높게 받던 관행을 벗어나 과감하게 가격을 대폭 낮추어 거의 샵가격 수준으로 와인 가격을 책정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소비자들의 업소에서의 와인 소비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국가 제도와 사업 환경의 변화도 이런 변화의 가속화에 한몫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작년부터 허용된 스마트 오더이다. 이것은 소비자가 와인 픽업 시간과 장소를 온라인 상으로 예약하고 픽업하고자 하는 장소에서 결제하는 방식인데 이에 따라 업소시장에서의 픽업도 가능해져서 현장에서 마시거나 테이크 아웃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처럼 애호가는 굳이 차에 싣고 가는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니 이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아주 높게 되었다.

둘째는 무인 주류 자판기에 의한 주류 판매 허용이다.

스타트업 지원과 제도 혁신 차원에서 주류 판매가 허용된 장소에서 성인 인증만으로 무인 자판기를 통한 주류 구매가 가능하게 된 것인데 이에 따라 무인 편의점도 증가하겠지만 동시에 인건비 절감을 위해 무인 업소 시장이 증가할 것인 바 이 곳에서의 주류 판매 역시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여진다.

세번째는 음식 배달시 배달하는 음식 가격의 50%까지는 주류 배달도 가능하므로 와인도 배달 가능성이 커졌다.

공유주방들이 유행처럼 생겨나면서 이 역시 업소 시장의 와인 매출 비중을 높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와인의 업소 판매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그동안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 고공행진하는 임대료,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도산 일보 직전까지 내몰린 업소나 이미 도산했지만 재기를 노리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사업 기회나 수익 창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므로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지기에 와인업계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스마트 오더 방식을 이미 10여년전부터 구상했던 사람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시점에서의 업소 시장의 활성화는 곧 와인 문화 확산의 가속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반가운 일이다.

생각보다 칼럼이 길어졌으니 샵시장을 엿보는 것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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