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소풍 대표/와인칼럼니스트】 7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 동안 서울 국제 주류 박람회의 루마니아 대사관 코너에서 참관자들에게 와인 시음 도우미로 뛰면서 느낀 소회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우리나라 와인 문화 태동기리고 할 수 있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와인문화 보급을 위해 와인 박람회에 참가하고 그 이후로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대비 효과가 없어 참가하지 않았다.

다른 와인 수입회사들도 그 이후 2~3년 사이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게 되면서 박람회 타이틀도 와인 박람회이었다가 어느 순간 슬그머니 주류 박람회로 바뀌었다.

2005년 이후 그만큼 와인 회사들이 덜 참가하고 다른 주종의 회사들이 참가했다는 것이다.

거의 16년만에 참가한 이번 주류 박람회에서 3일 내내 거의 점심도 서서 먹으면서 방문자를 응대해야 할 정도로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그동안에도 가끔 3~4년에 한 번씩 주류 박람회에 관람차 가기는 했지만 부스에 서서 소비자들을 응대한 것은 만16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마디로 상전벽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시장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시장이 성장하는 데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럼 2000년대 초반과 2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변화했는지 성형외과 홍보 컨셉인Before/After 개념으로 비록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알아보기로 하자.

우선 참가업체들의 구성이 달라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와인 전시회라고 명칭을 사용할 정도였다가 지금은 주류 박람회라고 하는 것부터가 무언가 바뀌었다는 걸 이야기해 준다.

당시는 2001년에는 맥주, 와인, 위스키 업체들이 많이 참석하다가 2002년부터 수입 와인업체들 위주로 전시가 되었었다.

그러다가 2004년 이후부터는 막걸리 업체, 사케, 수입맥주업체, 중국술업체 등을 거쳐 지금의 수제맥주업체, 전통주업체, 국내 와인 생산 업체들이 골고루 참가하는 전시회로 변화되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수입와인업체는 아주 소수였을 정도다.

결국 전시회 참가업체들의 구성을 보면 우리나라 주류의 시대별 주종별 트렌드 변화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둘째로 참가한 사람들의 연령층과 와인 지식 정도가 8:2의 법칙을 빌려 표현하면 완전히 반대로 뒤집혔다.

2000년대 초반에는 40대 중반 이상의 남자 위주에 4,50대 이상의 여성분들이 참관자들의 주류를 이루었고 당시에 와인 용어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해서 그저 와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맛보려고 온 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2,30대에 40대 초반의 남성과 여성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와인의 맛과 품종에 대한 지식을 가진 분들이 80% 정도 된다는 것이다.

결국 약 34~5%의 2차 팔로우어(Follower)들이 시장이 들어온다는 2차 와인 빅뱅기도 한참 지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셋째로 와인 가격에 대해서도, 데일리 와인 3만원이라도 맛을 보고 맛있으면 별 부담없이 수긍한다는 것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3만원이라고 하면 부담감을 많이 가졌었다.

물론 이번 박람회에서 시음시킨 루마니아 와인은 기존의 타 수입사들의 가격 책정 룰에 따르면 4~5만원대의 품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3만원대라는 가격은 그 절대가격 자체로도 과거에는 쉽지 않은 가격이었다.

결국 가격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맛과 향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넷째로 전시장에 카트족의 등장이다.

전시장에서 주류 판매가 가능하게 되어 아예 맛보고 사가려고 카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2000년 초반에는 아예 없던 현상이자 신종 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방침의 변화가 일조한 현상이기는 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시장에서의 주류 판매는 금지였다.

처음에는 전시장에서의 와인 판매가 처음이다보니 판매가 허용되는 듯하다가 이내 국세청에서 아예 전시장 주류 판매 면허(의제면허)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허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학습효과 덕분인지 코로나로 미리 장만해두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카트족들이 꽤 많이 눈에 띄었다.

그것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섯째 국산 와인의 약진이다.

품질도 많이 좋아져서 이제는 수입 와인과 비교해도 될 만한 정도가 된 국산 와인들이 많아졌고 소비자들의 국산 와인 가격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많이 사라진 듯하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식용포도로 만든 국산 와인은 양조용 포도로 만든 수입 와인에 밀려서 국내 생산업자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맛과 향 면에서 식용포도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고 소비자들도 수입 와인에서 단련된 맛과 향의 다양성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색다른 맛과 향에 대해 포용력을 갖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2000년대 초반에 필자가 모 언론사 칼럼에서 국산 와인은 수입 와인이 성숙시장에 이르면 소비자들의 맛과 향에 대한 심리적 수용폭이 넓어지면서 국산 와인도 품질만 지속적으로 향상시켜 나간다면 수입 와인 가격 이상을 받아도 그 시장이 충분히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이번에 근 20년 만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이다.

여섯째 국산 수제 맥주의 약진이다.

국내에 수제 맥주 붐이 최근 4~5년 사이에 불어서 약 160개의 업체가 우수죽순처럼 생겨났다가 코로나 등의 이유로 한 50% 정도가 현재 힘든 상황이라고는 하나 일부 잘 나가는 업체는 주식이 상장되기까지 할 정도인데 이걸 직접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수제 맥주 붐에는 수입 와인도 기여한 바가 있다.

수입 와인의 맛과 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경험했던 소비자들이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수제 맥주 붐에 호응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한 나라의 주류 문화의 변화를 보면 가격대가 낮은 수입맥주와 수제 맥주 붐이 불고나서 이보다 가격이 높은 와인 시장이 열리게 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시장이 변화한 것이다.

일곱째는 국산 와인과 국산 수제 맥주가 시장을 확대하면서 이들 설비를 생산하거나 수입하는 업체들이 전시장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한 10년 전부터 오크통 제조 업체가 박람회장에 등장하더니 최근에는 생산 설비 업체까지 등장한 것이다.

사실 설비업체가 그것도 국내 생산업체가 전시장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설비로 생산한 제품들의 시장이 꽤 크다는 증거가 되는 셈이다.

여덟째는 참가하는 나라들의 대사관 부스의 변화다. 2000년대 초반만해도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대사관이나 이들 나라 코너가 별도로 전시장에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 루마니아와 스페인 부스가 주를 이루었다.

즉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신생(?) 수입국들의 코너가 남아 있는 셈이었다. 2~3년 전에는 몰도바나 헝가리 코너가 눈에 띄었었다.

아홉번째는 이번에 보니 상대적으로 수입량이 적은 몰도바나 루마니아 와인을 접한 와인 애호가도 꽤 있더라는 것이다.

몰도바 와인은 사실 4~5년전부터 적극적으로 서울과 대전 등의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알려지기는 했지만 루마니아의 경우는 그렇게 까지 적극적이지 않았고 상대적으로 수입된 시점도 2~3년 밖에 안돼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꽤 접해본 분들이 나타나서 놀랐다.

아마 해외 여행 자유화와 새로운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로 인해 생긴 즐거운 현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앞으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많은 와인 생산국의 와인들도 더 많이 등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번째는 참관자들의 시음 태도의 변화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어떻게든 시음주를 더 많이 받으려고 더 달라는 사람들이 많았고 점심 시간이 지나가면서부터 취기가 오른 분들이 부스에 많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고객들이 시음주를 조금만 달라고 하고 시음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아주 심하게 취한 고객 두세 명을 보았을 뿐이다.

그것도 와인 코너가 아니라 화장실 근처에서.

와인과 증류주, 민속주, 맥주들이 골고루 있는 전시장에서 시음만해도 취하는 것이 정상인데 취기가 오른 고객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은 음주문화가 우아하게 고품격화되었다는 것이니 업계 종사자로서 아주 반가운 일이다.

사실 빈이태리(Vinitly)같은,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와인 전시회에 가보면 취객들이 아주 많이 눈의 띈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든 생각은 확실히 우리나라는 이제 모든 면에서 한단계 도약하고 질적으로 변화하는 변곡점에 있거나 이미 변곡점을 조금 지난 지점에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 에필로그

전시장 부스에서 ebs E class에서 한 필자의 와인 교육 방송을 보았다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다. 마스크도 쓰고 있고 그때는 소위 뽀샵 처리(방송용 화장)까지 했고 그날은 그냥 생얼이었는데도 명함의 이름을 보더니 알아보는 것을 보고 매스미디어의 힘에 깜짝 놀랐다.

또 어떤 참관자는 필자를 어찌 아는 지 옆에서 시음하시는 참관자들에게 이 분 유명하신 분이라고 와인업계의 전설이라고까지 말씀해주는데는 감사하면서도 참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당황했다. 면전에서 대놓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리 설명히다니.

마지막으로 젊은 두 부부가 와인샵을 하겠다며 이 와인 공급받을 수 있냐고 거의 동시에 나타나서 시음 중에 묻기에 ‘각자 놀지 말고 뭉치자, 뭉쳐서 연대하면 구성원 전체가 행복한 시대를 만들 수 있다.”라며 새로운 연대 방식을 설명했더니 아주 공감한다는 답을 했다

소비자와 와인 판매 소매점(업소와 샵)의 연대로 새로운 유통을 실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보다 하프로 와인가격이 떨어질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