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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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우리나라에서 선거철만 되면 입버릇처럼 나오는 구호가 있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 해결하겠다!’ 10년도 더 지났는데 그 구호가 계속 유효하다는 얘기는 기존 정책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얘기이다.

저출산과 연관 검색어로는 200조라는 단어가 있다.

15년 동안 저출산 대책에 200조 넘게 쏟아 부었는데 역시 효과가 없다는 기사 때문이다.

실제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시행계획(예산안 기준)에 따르면 정부는 2006년(2조1000억원)부터 지난해까지 총 225조원을 저출산 대응 예산으로 사용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6조원 늘어난 46조원이 편성됐다.

그렇다면 저출산 대책이 왜 이렇게 효과가 없었을까?

사실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저출산의 원인을 잘 파악하고 대책을 펼쳤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가장 먼저 든다.

저출산에 대해 차근차근 접근해 보자.

우선 만혼과 비혼이 늘어나고 있다.

즉 혼인 자체가 늦거나 없어진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두 번째는 결혼 후 출산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있어도 하지 못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몇 가지 경우에서 우리가 출산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거나 출산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저출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출산에 대한 생각이 확고하게 있으나 결혼 자체를 여러 가지 이유로 늦추고 있는 사람, 그리고 결혼은 했으나 출산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이를 ‘출산 부동층’이라 부르고 싶다.

빗대어 생각하자면 정치인들이 중간 부동층을 잡기 위해서 온갖 노력은 다하면서 ‘출산 부동층’을 ‘출산 지지층’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만큼 노력하는지도 의문이다.

정치권, 그리고 정부에서 저출산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여러 정책들을 다시 쏟아내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라 이러한 정책들을 내놓는다’라고 원인과 결과를 명확하게 명시하여 정책을 발표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효과가 없다는 것은 문제를 잘못 짚었거나,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잘못되었거나 마지막으로 정책 전달이 잘못되어 집행이 안 되거나 하는 세 가지 중 하나인데, 행정부는 예산을 다 집행해야만 하는 의무를 지녔기 때문에 아마도 문제를 잘못 짚었거나 문제와 해답 간 괴리가 있는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잘못 되었는지는 이제 사회 시스템 전반까지 들여다 볼 정도로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그에 따라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고용 문제 등에 걸친 사회 전반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 맞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출산에 관한 부모의 심리 상태, 특히 부모 중 출산을 경험하는 여성의 심리 상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최근 들어 몇몇 학자들 중심으로 심리학적 요인에 대해 연구가 활발해 지는 현상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진화심리학 관점에서 저출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경희대학교 전중환 교수의 말을 빌려 알아보자.

‘현대사회의 저출산에 대한 진화적 분석’이라는 글에서 현대사회의 낮은 출산율은 ① 부산물 가설, ②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가설, ③ 현대 환경에서의 적응 산물 가설 등을 꼽고 있다.

이 중 세 번째가 가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지는데 저출산은 자녀의 경쟁력을 길러 주기 위해 부모의 투자량이 대단히 많이 요구되는 현대의 환경에서 자식의 수를 줄이고, 지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적응적 산물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쉽게 말하면 내 자식이 이 사회에서 우수한 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내가 가진 돈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한 놈에게 소위 ‘몰빵’하자는 얘기이다.

이와 일부분에서 유사한 관점을 고려대학교 허지원 교수도 얘기하고 있다.

허 교수는 최근 밀레니얼 세대는 ‘완벽한 관계’, ‘완벽한 성취’ 등 완벽주의를 강조하는 특성을 지니는데, 경제적·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만 출산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완벽한 부모’ 신드롬이라고 명명했다.

허교수에 따르면 출산율 저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라 아이를 위한 부모로서의 ‘이타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성평등 관점에서도 저출산에 대한 문제점을 찾고자 하는 노력들도 많이 나타나는데, 호주국립대의 피터 맥도널드 교수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에서의 지위’ 중 가정에서의 지위가 높아지면 출산율 하락이 정지되고 다시 상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는 제도를 통해 그나마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가정에서의 지위 상승은 상대적으로 더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과 심리학이 융합된 학문이므로 저출산 문제 또한 이러한 최신의 연구들을 모두 고려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앞서 얘기한 부분은 문제점에 대해 다양한 심리학 연구의 성과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므로 또 다른 문제는 정책이 ‘출산 부동층’의 마음을 흔들어 ‘출산’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끔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당 정책의 내용도 중요하고, 전달하는 방식 또한 중요하다.

누누이 말한대로 정책을 실험하고 실험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때, 출산 정책에 반영하여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저출산 해소 정책의 실험은 대도시와 나머지 지역을 나눠서 해야 한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인구 소멸지역은 저출산 문제가 아니라 지역에서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그에 따라 가임인구가 줄어드는, 보다 더 포괄적인 문제이기 때문이고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인구는 과밀 상태이지만 그곳에 있는 출산 가능 인구가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조영태 교수는 인구과밀과 경쟁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을 이유로 든다)

그래서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영국에서 2010년 선거 결과에 따라 약 65년 만에 보수당-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정부 예산이 너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양쪽 다 공감하여 생긴 것이 오늘날 넛지 정책의 모태가 되는 BIT (Behavioural Insights Team, 행동과학통찰팀)이다.

15년간 200조를 사용하는데도 효과가 없고, 정부에서 내어 놓는 정책이나 홍보가 출산율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심리학적으로 저출산을 조장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지금 시점이야말로 저출산 정책의 실패에 대해 겸허히 반성하고 한번쯤은 넛지 정책을 시행해보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퍼 준 예산의 1/1000인 200억만 써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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