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소풍 대표/와인칼럼니스트】 2023년 1월부터 식품에 표시되는 유통 기한을 소비 기한으로 바꾼다고 한다.

1990년부터 유통 기한을 표시하는 제도를 시행해왔으니 무려 32년만에 바뀌는 것이다.

와인 강의에서 많이 나오는 질문 중의 하나도 와인에 유통 기한이 있는가 하는 거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와인은 유통 기한이 없다.

그리고 소비 기한도 없다.

와인이 알코올 음료이기 때문에 알코올 함량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몸에 해로운 균이 생존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살균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 보면 총상을 입은 주인공이 소독약이 없으면 마시던 술을 붓고 총알을 빼내는 장면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물론 이 경우 와인이 아니고 증류주가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와인의 경우 유통 기한이나 소비 기한 대신 제조일 혹은 병입일을 라벨이나 병뚜껑에 표기한다.

대개는 일자가 적혀 있기 보다는 로트 넘버나 코드로 표기되어 있는데 관련 서류를 추적하면 병입일자 혹은 제조일자를 확인할 수 있다.

와인의 경우 제조일자 개념이 애매하다.

발효 완료일자, 숙성 완료일자, 병입일자 등 여러 날짜가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병입일자가 제조일자인 셈이다. 장기 숙성의 경우 몇 년이 소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신 와인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빈티지라고 하여 포도를 수확하여 양조한 해의 년도가 라벨에 표기되기에 두 가지 정보를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식품이기도 하다.

유통 기한, 상미 기한, 소비 기한에 대한 용어 정리부터 해보자.

유통 기한은 말 그대로 특정 식품의 판매가 허용되는 기간으로 유통업자가 그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최대 기간인 셈이다.

식품 회사들은 유통 기한을 정할 때 유통업자들이나 소비자들이 어떤 상태로 보관하고 유통할지를 모르기에 나름 가혹한 상황을 설정하여 그 상황하에서 변질되지 않고 안정된 품질을 유지하는 기간을 측정하여 그것의 60~70% 수준에서 유통 기한을 설정한다고 한다.

변질되어 탈이 나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은 물론 사업의 지속성에 타격을 입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우유나 요구르트, 두부, 식빵 등을 유통 기한을 1주일에서 10일 정도 지나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이유이다.

그런데도 현행법으로는 그 기간을 지나서 판매하면 불법다.

상미 기한은 그 식품의 맛과 향미가 제대로 유지되는 즉 품질 유지 기한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표시를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일본에서는 이 상미기한을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와인의 경우에도 상그리아와 같이 천연주스와 설탕을 블렌딩한 경우 제조업체에 따라서는 상미 기한을 표기하기도 한다.

소비 기한은 섭취 가능한 기한으로 그 기한이 지나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극단적으로 보면 변질되기 직전까지의 기간인 것이 소비 기한이다.

식품의 변질 여부의 위험성 즉 안전성을 기준으로 놓고 정한 것이 유통 기한과 소비 기한이라면 상미 기한은 그 식품이 가진 원래의 맛과 향미의 유지 여부를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상미 기한은 식품에 따라서 유통 기한보다 짧을 수도 있고 유통 기한 또는 소비 기한과 같을 수도 있다.

따라서 상미 기한, 유통 기한, 소비 기한 순으로 기간이 길어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와인은 알코올 음료이다 보니 유통 기한과 소비 기한이 없는 대신 상미 기한이 존재한다.

그런데 상미 기한은 존재하는데 문제는 그 상미 기한이 동일 브랜드의 동일 빈티지일지라도 병마다 달라서 일단 마셔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람마다 최고 상태의 맛과 향이라고 느끼는 상태도 다를 수 있어 의견의 일치를 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맛과 향이 점차 시들해지고 평범해진다고 느끼는 시기가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상미 기한이 언제 인지 특정 지을 수는 없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가격 기준 5만원 미만의 데일리 와인들의 경우 화이트는 빈티지로부터 3년이내, 레드는 5년이내를 상미 기한으로 보면 된다.

그 이상 가격대의 와인은 화이트는 5~7년, 레드는 10년 정도라고 보면 된다.

특별하게 와인 평론가들이 10년 이상, 30년, 50년, 100년까지도 음용기간이라고 추천하는 와인도 물론 있다. 아주 특별한 명품 와인에 속하는 와인들로 가격도 아주 비싼 와인들이다.

그런데 와인의 경우에는 ‘상미 기한’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상미 기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고급 명품 와인의 경우에는 오히려 일정 기간 (화이트는 2~3년, 레드는 5~7년)이 경과한 이후부터 더 맛있어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최상의 맛과 향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그 기간 이후부터 10년~50년이내 심한 경우 100년까지도 유지된다.

유명 와인 평론가들이 특정 와인의 음용 기간을 정한다는 것은 상미 기간을 추천하는 것인데그들은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오래된 빈티지 와인들을 마셔본 경험치로부터 미래의 상미 기간을 추정해내는 식으로 음용 기간을 추천한다.

달리 보면 브리딩(Breathing) 혹은 에어레이션(Aeration)이라는 것도 아주 짧지만 상미 기간을 찾아 즐기는 방법인 셈이다. 더 짧게는 잔을 돌려가면서 시간을 두고 와인의 맛과 향을 보는 것도 상미 기간을 당기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어떤 와인을 최고조의 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행운은 그리 자주 오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찾아가는 과정은 직접 경험해볼 수가 있다.

빈티지가 좋다는 해의 특정 브랜드의 와인(12본입/케이스)을 3케이스 정도 사서 매년 한병씩 오픈해서 그 해의 신규 빈티지 와인과 비교하며 마셔가는 방법이다.

무려 길게는 최대 36년간에 걸친 대장정의 실험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해마다 와인의 맛과 향이 개선되어 가는 것을 느껴볼 수 있고 어느 해에는 그 이전 해보다 맛이 더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무언가 풍미가 줄었다고 느껴지게 되는데 이걸 소위 ‘와인(맛과 향)이 꺾였다’고 표현하고 그 상미 기간이 지난 것이 되는 것이다.

연이어 2년에 걸쳐 그렇게 느낀다면 확실히 상미 기간이 지난 셈이 되니 그 때부터는 최대한 빨리 마셔 없애야 한다.

이 경우 반드시 비싼 와인으로 이 실험을 해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잘 고르면 3~10만원대 와인 중에서 이런 와인들을 구할 수도 있다.

더 단기간에 알아보는 방법은 버티컬 테이스팅(Vertical Tasting)이라고 하여 같은 브랜드의 와인을 빈티지별로 구해서 그걸 비교 테이스팅해보는 것이다.

한자리에서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타임머신을 탄 듯 통으로 테이스팅해보는 방법이다. 그럼 최근 빈티지부터 몇 년 전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그걸로 그 브랜드의 미래 상미 기간을 예측해볼 수 있다.

버티컬 테이스팅은 와인 수입사에서 와인 공급사와 함께 가끔 와인의 품질을 자랑하기 위해 이벤트로 개최하기도 하니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그 때를 기다려 와인의 상미 기간을 특정짓는 경험을 해볼 것을 권한다.

아니면 친구들 혹은 지인들과 각자 동일 브랜드의 올드 빈티지 (혹은 백 빈티지(Back Vintage)라고도 한다.) 와인 한 병씩을 가지고 모여서 테이스팅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SNS 시대에 경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SNS 친구들끼리 해볼 만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것을 취미삼아 하다가 종국에는 비즈니스로까지 확장한 것이 셀러트랙커닷컴이다.

와인 애호가 개인이 올드 빈티지를 언제 따서 마셔야 최상일 지를 잘 모르다 보니 온라인 상에서 자신이 개봉해서 마신 와인에 대해 일지 형식으로 쓰면서 다른 사람들이 댓글을 달게 했더니 대부분의 올드 빈티지 보유자들이 자신들도 궁금하던 차에 이것을 참고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일종의 올드 빈티지 와인 품평회겸 오픈 시점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로 발전한 것이다.

지금은 아예 최신 빈티지의 와인들과 데일리 와인들까지도 평가가 올라오고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가 되었다.

식품에 대해 유통 기한에서 소비 기한으로 변경하기로 한 중요한 이유가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정부입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약 1조원의 경비가 절감된다고 추정하는데 잘만 정착되고 시행된다면 그동안 유통 기한(판매기한)을 소비 기한(섭취기한)으로 인식하여 유통 기한이 임박하면 구매를 잘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반품 혹은 폐기 대상이 되고 푸드뱅크 같은 복지 재단에서도 잘 취급하지 않아 버려지던 것들이 줄게 되어 추정한 것 보다 훨씬 절감 효과가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식품회사들이 혹시나 변질로 인한 소비자 클레임등을 이유로 소비 기한을 과거의 유통 기한과 동일하게 잡거나 원래의 소비 기한보다 훨씬 짧게 잡을 경우 그 효과가 반감될 우려도 있다.

와인을 맛있게 마시려면 온도와 보관을 잘 해야 하는 것처럼 식품에 대해서도 보관 온도 등의 보관 환경을 잘 지켜서 건강하게 먹고 마시면서 쓰레기도 줄여서 환경보호하고 버려지는 식품을 줄여서 식량 자급율도 높이고 식품회사들의 수익도 더 증가하게 해주어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게 하는 일타 삼피의 바람직한 식품 소비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한다.

결국 현명한 식품 소비자가 되는 것이 자신도 살고 환경 보호도 하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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