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소풍 대표/와인칼럼니스트】 와인병을 보면 대략 90%의 확률로 그 와인의 생산지역과 포도품종, 맛과 향을 짐작할 수 있다.

어깨가 약간 각지게 있는 보르도 스타일의 병과 어깨가 없이 비스듬히 흘러내리는 부르고뉴 스타일의 병이 우선 크게 구분된다.

전자는 대개 여러가지 품종을 블렌딩한 와인을 담는 데 사용하고 후자는 대개 단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을 담는다.

다만 프랑스 론지방의 와인의 경우 북부 론은 시라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에 어깨가 없는 부르고뉴 스타일의 병을 사용하는데 남부 론은 여러 품종을 블렌딩 하는 와인인데도 부르고뉴 스타일의 어깨가 없는 병을 사용한다.

북부 론이 지리적으로 부르고뉴에 가깝고 역사적으로 남부 론의 와인보다 더 유명했기에 부르고뉴 스타일의 병을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와인 병의 바닥을 보면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이것을 펀트(punt)라고 한다.

이 펀트가 깊을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 말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다.

와인 생산 원가에서 병이 차지하는 비중도 꽤 되는데 펀트가 깊을수록 병 자체가 두꺼워져야 하니까 당연히 일반 데일리 와인 수준에서 펀트를 깊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루이 로드레 사가 만드는 크리스탈 샴페인이라고 러시아의 짜르가 마시던 샴페인에는 이 펀트가 아예 없다.

심지어 와인병까지 투명하다.

와인에 자외선은 상극이기에 와인 병은 대부분 초록색이나 갈색으로 만드는데도.

투명한 크리스탈 병에 담아서 펀트없이 만든 샴페인이 크리스탈 샴페인인데 이유는 가족 이외에 황제 제일 가까이 갈 수 있는 사람은 와인을 따르는 소믈리에이므로 황제의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펀트가 깊으면 그곳에 흉기를 숨겨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펀트가 깊을수록 좋은 와인이라는 말의 예외로 많이 인구에 회자하기도 한다.

오늘날 신대륙의 일부 와이너리에서 데일리 와인 가격을 조금 넘는 수준인데 마케팅 차원에서 일부러 펀트를 깊게 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에 이 역시 예외 사례가 된다.

그럼 도대체 이 펀트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자.

우선 소믈리에가 폼나게 와인을 따르게 하려는 것이라는 설이다.

와인의 격식을 높여 멋진 분위기 연출을 만드는 데 활용하라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펀트에 넣고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으로 병을 받치듯이 잡고 다른 한 손은 뒤로 한 채 꼿꼿하게 서서 아주 간지나게 와인을 따르는 장면을 보면 누구나 한번은 따라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다.

바로 그걸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하지만 이는 어딘가 억지가 섞인 본말이 전도된 해석같다는 느낌이 확 든다.

역으로 펀트가 있어서 그런 장면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맞다.

둘째는 압력 분산설이다.

와인이 효모가 죽지 않은 경우 병속에서도 발효되는 경우가 있는데 유리병이 도입된 초창기에는 유리병 제조 기술이 오늘날처럼 좋지는 않았을 테니 압력으로 인해 병이 깨지는 경우가 있어서 이렇게 펀트를 만들어 두면 표면적이 좀 더 넓어져서 압력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이건 물리학적 해석까지 들어가서 그럴 듯한데 이 역시 정답은 아니다.

다만 스파클링 와인에는 적용이 크게 된다.

병속에서 2차 발효를 하게 하는 샴페인 방식으로 만드는 까바나 샴페인, 스푸만테 같은 스파클링 와인들은 병 속 내부 압력이 5~6기압(최소 요건 3기압 이상)이므로 압력의 분산 효과가 있다.

하나 앞서 언급한 크리스탈 샴페인에는 이 펀트가 없다는 것만 봐도 이 설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펀트가 먼저 있고 압력 분산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여 나중에 펀트를 더 깊게 만들기는 했을 것 같다.

셋째는 와인 장기 보관시 여과기능을 한다는 설이다.

와인을 장기 보관하면 화학작용에 의해 침전물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병 내부의 오목한 테두리에 쌓이게 되어 와인을 따르더라도 넓게 퍼져 있는 경우보다는 덜 따라 나오게 된다는 해석이다.

과거에 유리병을 와인 용기로 사용할 때 침전물이 쌓일 것을 고려하여 펀트가 있는 와인병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으니 이 역시 펀트의 기능중의 하나일 수는 있으나 그게 처음부터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넷째는 병을 세워두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설이다.

병 바닥이 오목하게 되면 바닥 외부 테두리가 좀 더 두꺼우면서도 동그랗게 편평하게 되어, 잘 넘어지지 않고 세워두기 편하기에 그렇게 펀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일리는 있으나 펀트 유래의 정답은 아니고 만들어 놓고 보니 그런 편리함이 있다는 해석이 더 맞을 것 같다.

유용한 기능을 나중에 발견한 사례란 것이다.

다섯째는 초창기 유리병 제조 기술상 어쩔 수 없이 펀트같은 것을 만들었어야 한다는 설이다.

유리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던 시절 그 바닥쪽을 어딘가 고정시키고 불어서 병을 만들고 병 입구쪽을 잘라서 병을 만들게 되는데 유리병을 입으로 불어서 만들 때 부는 쪽 반대편에서 긴 쇠막대로 녹은 유리덩어리를 받쳐서 들고 있게 된다. (통상은 쇠막대 끝에는 유리를 조금 묻혀서 병 바닥부분에 대었다고 한다.)

이 쇠로 된 긴 막대를 폰틸(Pontil; 이탈리아 Ponte (다리)에서 유래한 표현) 혹은 폰틸 로드(Pontil rod) 라고 하고 바로 이 자국이 유리병 바닥에 남게 되는데 이것을 펀트 자국(Punt Mark, Punt scar)이라고 불렀다.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 펀트는 병에 따라 사각형일 수도 있고 원형일 수도 있었고 깊이가 비교적 얕은 것도 있고 깊은 것도 있었다.

왼쪽이 폰틸 로드이고 오른쪽이 유리병 부는 막대 (출처: 위키피디아)
왼쪽이 폰틸 로드이고 오른쪽이 유리병 부는 막대 (출처: 위키피디아)

이 다섯번째가 가장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펀트 마크를 만들어 놓고 보니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후적으로 여러가지 편리한 기능들이 발견된 것이다.

유리병 제조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긴 것이 나중에 더 편리한 기능들을 발견하면서 그 기능들을 더 살릴 수 있도록 펀트를 더 발달시키고 유지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것외에도 추가로 발견된 편트의 유효한 기능 몇 가지가 더 있다.

*펀트가 있어서 병 내부의 공명이 발생하지 않아 운송시에도 병이 잘 깨지지 않는다.

*병끼리 끝을 맞대어 쌓기에 좋다.

*와인병이 실제보다 크게 보이게 하여 용량을 좀 많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옛날 선술집에서는 다 마신 병의 펀트에 구멍을 뚫어 빈병임을 확인시켜 중간에 다시 채운 것이 아님을 확인해주는 역할도 했다. 바닥이 편평하면 사실 구멍내기 쉽지 않다.

*와인 병입 전에 병을 소독할 때 뜨거운 물을 쏘아서 병 내부로 넣게 되는데 이 때 펀트로 인해 뜨거운 물이 골고루 바닥에 퍼지면서 소용돌이 치게 되어 안에 잔유물이 남지 않게 된다. 즉 병소독에 편리하다.

*8와인 병의 표면적을 넓게 하니 와인을 칠링할 때 좀 더 빨리 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이건 근데 좀 과장된 것 같다. 물론 물리적으로 전혀 그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쓸 만한 추가 상식

바닥이 편평하고 긴 장대로 밀고 가는 긴 배도 펀트(Punt)라고 한다.

럭비나 미식축구에서 공을 손에서 놓으면서 땅에 닿기 전에 멀리 차는 것도 펀트(Pun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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