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오룡리 향나무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영천 오룡리 수령 420년의 향나무는 경주최씨 오룡문중의 사당인 일신정 앞에 강건하게 서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 191번지에 경주최씨(慶州崔氏) 진사공파 오룡문중의 일신정(日新亭)이 있다.

2016년 1월 18일 자로 지정된 ‘산림유전자원 보호수’ 표지석도 바로 옆에 있다. 

일신정은 임진왜란 때 가산을 바쳐 구국운동을 한 오담(梧潭) 최분화(崔汾華)를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했다.

최분화는 군자감정에 추증되고, 후손 우헌(寓軒) 최막라(崔莫羅)는 한성판윤에 증직(贈職)되었다.

1940년 이태일이 쓴 '일신정중건기'에는 일신정을 우헌 최막라의 산정(山亭)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808년에 최두순, 최달관이 중수했으며, 1860년 최두순의 손자 최진관, 최인관이 문중과 협의해 중건했다.

1940년께 후손들이 중건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1917년에 작성된 '영양지'에도 일신정은 최막라의 강학소로 기록되어 있다. 

일신정은 주변이 잘 정돈된 상태로 정자 또한 관리 상태가 양호하다.

일신정이란 당호에 어울릴 만큼 집을 새롭게 단장하고 수리하는 등 선대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다.

일신정의 건립 당시 모습은 찾을 수 없지만 건립 후 네 번의 중수 및 중건을 거친 것으로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건물에 스며들어 있다.

일신정은 방형의 와적(瓦積) 토담을 두르고 중앙에 정자를 서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정면 3칸, 측면 1.5칸으로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드린 뒤 전면에 반 칸의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이다.

진입은 정면이고, 창호는 좌측에 쌍여닫이문을 달아 출입하게 했으며, 대청 뒤로는 판벽에 쌍여닫이 판문(당판문)을 두었다.

방의 전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달았고 측면에는 외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지붕은 홑처마의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이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한편 일신정에서 가까운 고경면 오룡리 1447에 ‘샘촌댁 인덕원(仁德園)’이 있다.

경주최씨 진사공파 문중의 가족공원 묘소이다.

도덕산을 등에 지고 험준하면서도 잘 순화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금계포란형국(金鷄抱卵形局)의 야산 자락에 ’해방을 등지고 사방을 바라보고 앉은 자리‘(亥坐巳向) 양지바른 곳에 2기의 묘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아담한 잔디공원이다.

605㎡(약 183평) 규모의 ‘인덕원(仁德園) 가족공원’을 꾸며 잔디장 방식으로 장지(葬地)를 조성했다.

깊이 50㎝ 이상 흙을 파낸 후 흙과 분골을 섞어 묻고 잔디를 원상태로 복구하는 방식이다.

비석은 세우지 않고, 하나의 ‘명단석’에 이름을 올린다.

현재 2기의 묘가 있지만, 망자들의 시신을 봉분도 묘비도 납골당도 없는 자연장으로 모신다.

이 가족묘원 때문에 2010년 경주최씨 문중이 보건복지부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봉분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 전통적인 장사법을 버리고, '자연장'을 실천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수령 420년의 향나무가 사는 오룡리는 ‘영천 누에 치는 마을’로 유명하다.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조선시대부터 양잠업의 명맥을 꾸준히 이어왔다.

오룡2리는 3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인데 산기슭이 푸른 뽕나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중국산 누에고치가 수입되면서 국내산 고치 가격이 폭락하고 기상이변으로 누에고치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누에가 소갈병(당뇨)에 좋다는 점에 착안하여 ‘입는 누에’에서 ‘먹는 누에’로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마을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에가 몸에 좋다는 걸 알고 누에를 삶아서 말렸다가 가루로 만들어 먹는 등 오래전부터 식용해 왔으며 그 덕분에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장수했기 때문이다.

한때 ‘먹을 게 없어서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 배웠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영천의 오지마을’이었다가 이제는 누에 덕분에 부자마을이 됐다.

<영천 오룡리 향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6-01-01
·보호수 지정 일자 2016. 1. 18.
·나무 종류 향나무
·나이 420년
·나무 높이 15m
·둘레 3m
·소재지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 191
·위도 36.015217, 경도 129.13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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