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KBO리그 두산 대 LG 경기. 5회 말 두산 김태형 감독이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 후 퇴장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1 KBO리그 두산 대 LG 경기. 5회 말 두산 김태형 감독이 비디오판독 결과에 항의 후 퇴장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나와 우리 아들들은 모두 스포츠 광팬이다.

실제로 둘째 아들은 농구선수를 꿈꾸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되면, 그날의 종목별 승패와 스코어를 일일이 확인한 후, 종목별 특정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당일 사람들의 견해를 살펴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소위 말하는 게시판이 폭발하는 글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일례로 프로야구를 들어보자.

중요한 순간에 나온 스트라이크, 볼 판정이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정확히 말하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내내 그 내용으로 게시판이 도배가 된다.

비디오판독을 통해서 야구 심판의 정확성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비디오판독을 요청할 수 있는 행위들은 사전에 정해져 있고(스트라이크 볼 판정은 비디오 판독의 대상이 아니다) 비디오 판독의 횟수 또한 정해져 있으며, 실제 비디오 판독으로도 명확하게 결정을 내리지 못할 상황이 나오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중 하나의 상황이 시소게임 중 나오기라도 한다면 정말 난리가 난다.

바로 며칠 전, 롯데자이언츠의 주장 전준우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육안으로는 스트라이크 존보다 훨씬 낮게 보여지는 공에 어이없는 삼진 콜을 듣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고 항의하는 장면이 있었다.

롯데자이언츠 팬들은 역시 볼인데 뭐냐고 난리가 난 반면, 상대팀 팬들은 포수가 미트질을 잘못하고 떨어지는 변화구라서 그렇지 타자 앞을 지날 때는 낮은 쪽 스트라이크 존에 걸친 게 확실하다고 다수가 주장했다.

이러한 현상도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만의 생각,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이나 생각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우선 우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상대방이 얘기할 때 시끄럽거나 주의가 산만하여도 대강의 뜻을 이해하고 대화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주위가 조용하고 상대편이 말하는 내용이 한글자 한글자 명확하게 들려도 내가 가진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곡해할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같은 현상을 보고 롯데자이언츠 팬들은 명백한 오심이라 주장하고 상대팀 팬들은 정심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 덕분이다.

그리고, 하필 그날 구심은 며칠 전 전준우 선수에게 유사한 볼 판정을 한 심판이었기에 “그 심판은 분명히 전준우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는 심판이야”라는 고정관념 또한 팬들은 가지고 있었을 듯하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이 생기더라도 웬만하면 나의 생각을 바꾸기보다는 고정관념 체계를 만들어 고정관념의 하위 개념으로 집어 넣기도 한다.

예를 들면, 롯데자이언츠 팬들이 보기에 본인들에게 불리한 판정을 했던 그 심판이 타 팀의 주장 선수에게도 똑같은 판정을 한다면 “그 심판은 저 코스는 계속 잡아주는 일관성 있는 심판이다”라고 본인들의 고정관념을 고치기보다는 “그 심판은 팀의 주장들을 길들이려고 하는 성향이 있구나”라고 고정관념의 하위 내용들을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고정관념 얘기를 들으면 예전부터 자주 얘기했던 몇 가지 개념들이 떠오를 것이다.

우선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을 떠올릴 수 있다.

확증편향 개념을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계속 강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선택적 지각(Selective Perception)이라는 개념도 고정관념과 매우 가까운 개념이다.

이 말은 시쳇말로 ‘모 눈에는 모만 보인다’라는 개념이다.

자신의 신념이나 생각과 일치하거나 유리한 것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존 생각을 중심으로 현상을 설명하고자 하는 행동도 포함된다.

예를 들면 ‘음란마귀’라는 표현이 유행하는데 같은 그림이나 단어를 보고도 야한 생각을 떠올리는 현상을 우스갯소리로 나타낸 것으로 선택적 지각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누가 나에게 사무실이 있는 교대 근처에서 길을 물어보면 나는 술과 안주를 좋아하니까 당연히 교대 앞 유명한 곱창집 중심으로 설명하거나 아니면 큰 식당이나 술집 간판을 중심으로 설명할 텐데 내 친구 조 모 변호사는 당연히 큰 로펌이나 법원, 검찰청 중심으로 길을 설명하고자 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적 지각을 보통 광고나 언론에서는 의도적으로 자주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가 자신들의 기본적인 고정 관념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가치에 따라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현상을 이용해 언론이나 기업은 대상자가 어떠한 정보를 주로 받아들일지를 고민하고 전달하고자 한다.

선택적 지각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 모르는 나와 같은 일반 사람들은 내가 평소에 가진 생각에 따라 누군가가 메시지를 전달했을 때, 그 메시지가 나와는 다른 편의 입장에 유리하게 편향됐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적대적 매체 지각(hostile media perception)이라고 한다.

특정 이슈에 대해 아무리 중립적인 기사가 나오더라도 이쪽 편과 저쪽 편 모두 그 기사는 왜곡되었고, 우리 편에게 악의적인 보도라고 생각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시 내가 사랑하는 스포츠로 돌아와보자.

앞에서 얘기한 고정관념, 선택적 지각 때문에 같은 시합을 보면서도 각 팀들의 팬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심판이 했던 하나의 행동을 두고 서로 편파적이라고 비난한다.

야구는 그나마 덜할 수도 있는 것이 서로 간의 몸싸움이 허용되는 농구 같은 스포츠에서는 더하다.

몸싸움에 대해 어디까지 파울로 볼 수 있는지 심판 재량이 크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오죽하면 미국 프로농구인 NBA에서는 마지막 2분 동안 심판 판정에 대해 오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경기 후에 발표하는 제도를 만들었을까?

선택적 지각 관점에서 보자면 세상에 공정한 심판은 단 한 명도 없다.

같은 판정에 대해서 서로 편파적이라고 비난할테니 말이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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