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소풍 대표/와인칼럼니스트】 대부분의 와인병에는 년도가 표시되어 있다. 사람에게 탄생년도가 있듯이 와인에게도 탄생연도가 있는데 이 연도를 빈티지(Vintage)라고 한다.

주자학에서 생년월일에 태어난 시간을 더하여 사주라 하여 이것으로 사람의 성품과 기질, 운의 좋고 나쁨을 논하듯이 와인의 경우에는 원재료인 포도가 같은 지역이라도 생산된 해의 자연 환경과 기후 조건에 따라 그 품질과 특성이 달라지기에 빈티지가 좋았던 해와 보통인 해, 나쁜 해 등으로 구분한다.

빈티지라는 용어는 수확이라는 의미의 프랑스 고어(古語) 방다주(Vendage)(오늘날에는 방당주(Vendange))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이것의 어원은 라틴어 빈데미아(Vindemia)다. 이것 역시 ‘포도를 거두어 들인다’ 즉 포도 수확을 의미하는 의미이다. 오늘날 이탈리아어로는 벤데미아(Vendemmia)라고 한다.

포도 수확 연도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원재료인 포도의 품질이 와인의 품질을 좌우하기 때문인데 이 포도가 생산된 해의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해마다 포도의 당도, 산도, 수확량, 향의 응축도 등이 달라진다.

꼬뜨 드 본의 수확장면. [사진=위키피디아]
꼬뜨 드 본의 수확장면. [사진=위키피디아]

결국 와인에서 빈티지는 포도를 수확하여 양조한 해를 의미한다. 이는 발효기간이 최대 15~20일이기 때문이기에 수확해서 양조를 끝내면 동일한 해에 사실상의 생산이 끝나기 때문이다.

보졸레 누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숙성 등의 이유로 출시는 빨라야 그 다음 해나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아주 심한 경우에는 10년 이상을 와이너리 셀러에 보관했다가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빈티지는 해당 연도에 수확한 포도 100%로 만든 와인을 의미하는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나라마다 융통성을 두고 있다.

칠레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에는 최소 75%만 같은 해에 수확한 포도이면 라벨에 연도를 표시할 수 있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이나 호주, 뉴질랜드는 최소 85%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원산지 증명(AVA)제도를 적용하여 원산지까지 표기하는 경우에는 당해 연도 생산 포도가 최소 95%이상이어야 하지만 원산지 표기를 하지 않는 경우에는 최소 85%이상이면 빈티지를 표시할 수 있다.

이렇게 최소 일정 비율이상으로 규정해놓은 이유는 해마다 작황이 다르기에 좋은 해의 와인을 남겨두었다가 다른 해의 와인과 블렌딩하여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하려는 것도 있고 이렇게 하여 맛과 향의 향상을 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때론 아주 기후나 자연 조건이 좋은 해의 경우에는 그 해 수확한 포도 100%로 만들어 특별 에디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럼 빈티지가 없는 와인은 없을까?

빈티지 표시가 없는 와인을 논빈티지(Non-vintage)와인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포트(Port)와인과 일반 스파클링 와인들이다. 이들은 반대로 아주 작황이 좋은 해에만 빈티지 와인을 생산하여 라벨에 빈티지 표시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최소 2개 연도 이상의 여러 해의 와인들을 그 해에 수확하여 만든 와인과 블렌딩을 하여 품질의 균일성을 확보한다.

레스토랑에서 와인 리스트를 보다 보면 NV라고 적힌 경우를 보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논빈티지의 약자인 것이다.

와인쑤지애스트 빈티지 챠트 일부. [사진=wineenthusiast.com]
와인쑤지애스트 빈티지 챠트 일부. [사진=wineenthusiast.com]

이런 빈티지들을 지역별로 평가하여 년도별로 모아놓아 표로 정리해놓은 것을 빈티지 차트(Vintage Chart)라고 한다. 즉 지역별로 여러 해의 빈티지를 평가해 놓은 표를 말한다.

특정 지역에 대해 특정 연도에 생산된 와인의 품질과 특징을 점수화하여 표기한 표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와인 생산 지역별로 기후 조건이 좋아 포도 작황이 좋고 포도가 잘 익은 해와 그렇지 않은 해를 점수화해 놓은 표이다.

대부분의 유명 와인 잡지들이 해마다 이 빈티지 차트를 발표하는데 100점 만점 혹은 5점 만점으로 표기한다.

보르도의 경우 세기의 빈티지라고 할 만큼 좋은 빈티지는 2016, 2015, 2010, 2009, 2005, 1982, 1961, 1959, 1947, 1945, 1929, 1928년이다. 부르고뉴는 2019, 2015, 2009, 2005년도가 아주 좋은 빈티지이다.

그럼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이 정말 좋은 것이어서 빈티지 차트를 무조건 믿어야 할까?

이 빈티지 평가의 중요성(결국은 빈티지 차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우선 빈티지 차트는 기후 변화가 심한 구대륙 와인을 구매할 때 특히 유용하고 전반적으로 기후변화가 크지 않고 전반적으로 기후 조건이 좋은 신대륙 와인의 경우에는 빈티지별로 와인의 품질 차이가 크지 않아 별로 유용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을 구매하면 좋지만 일반적으로 데일리 와인을 구매할 때는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유는 오늘날에는 양조 과학과 양조 기술이 발달하여 작황이 좋지 않은 해에도 좋은 해와 마찬가지로 품질이 좋은 와인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 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주장은 애호가들이나 전문가들조차도 실제로는 빈티지가 좋았던 해와 좋지 않았던 해의 와인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애호가와 전문가가 그럴진대 일반적인 사람들은 더더욱 잘 구분을 하지 못할 것이기에 참조는 하되 빈티지 챠트를 맹신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실제로 미국의 와인경제학회 회장이자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Roman Weil)가 이것을 가지고 실험하여 얻은 재미있는 결과가 있다. (출처: Weil, Roman L. "Parker v. Prial: The death of the vintage chart". Oenometrie VIII. Eighth annual meeting of the Vineyard Data Quantification Society (VDQS))

제법 와인을 마신 와인 유경험자들일지라도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빈티지 점수가 높았던 해와 낮았던 해의 와인을 구분할 수 없거나 만약 실제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의 와인 선호도는 빈티지 평가 점수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즉 평가 점수가 높은 해를 구분해냈다고 하더라도 선호하는 와인은 점수가 낮은 와인일 수 있다.)’라는 가설을 가지고 시카고 대학 MBA과정 재학생을 포함하는 동문 위주로 241명의 와인 유경험자들을 대상으로 토스카나, 북부 론, 보르도 포므롤, 오레곤 피노누아, 캘리포니 카베르네 소비뇽 등의 와인 593쌍을 가지고 실험했다.

결과는 이들은 보르도 와인을 제외하고는 빈티지가 좋은 해와 나쁜 해를 구분하지 못했고 설사 구분을 한 경우에도 실험 참가자 개인이 선호하는 와인은 빈티지 차트상의 좋은 해를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반반이었다.

즉 와인 선호도는 빈티지 차트의 높은 점수와는 별개였다는 것이다.

이 실험은 실험 설계상 특정 지역 와인에 대해 잘 모를 경우 와인의 품질 자체를 잘 모를 수 있다는 점과 와인을 오래 마신 애호가 그룹은 다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연구의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규모를 줄여서 프랑스 와인을 15년간 매월 마셔온 자칭 와인 전문가급인 동호회 회원 15명을 대상으로 프랑스 뽀므롤의 높은 점수의 해와 낮은 점수의 해의 와인 2가지만으로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앞의 실험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다만 와인을 정식으로 공부한 와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동일한 실험에서는 2/3가 빈티지 평가가 좋은 해의 와인을 맞추었으나 빈티지가 좋은 해와 나쁜 해에 대한 와인 선호도에서는 반반 정도로 나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럼 빈티지 차트는 무의미할까?

세상에 의미없는 것은 없다. 활용하기 나름이다.

빈티지 차트는 잘 모르는 지역의 와인을 고를 때와 유명 명품 와인 컬렉터들이 와인을 마실 시기를 결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명품 와인의 경우에는 빈티지가 좋은 해의 와인은 그렇지 않은 해에 비해 비싸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비싸지기에 빈티지 차트를 활용하면 좋다.

역발상을 해서 빈티지 점수가 낮은 해의 명품 와인을 구매하는 것이다.

빈티지 점수가 낮은 해의 명품 와인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좋은 빈티지보다 마시기 좋은 시점이 빨리 오는데다가 앞에서 언급한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사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전문가들도 잘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오히려 평가가 낮은 해의 와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본인이 그런 사람일지...

또한 형편없는 빈티지 와인이라 인기가 없어 아주 낮은 가격에 와인을 사게 되면 실제 품질은 그 가격보다 높은 경우도 많으니 이를 위해 빈티지 차트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빈티지 차트의 또 다른 이용법은 평가가 좋은 빈티지의 와인은 장기 숙성이 가능하여 최소 10년 이상은 두었다가 마셔야 제대로 즐길 수 있으니 음용 시점을 고르는데 참고하는 것이다.

빈티지 차트에 현재 마시기 좋은 지 보관해야 하는 지를 표시까지 해주기니 이것도 도움이 된다.

빈티지 차트 맹신도 금물이지만 불신도 금물이다.

나의 입맛은 어떤 것인 지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 이 빈티지 차트를 내게 맞게 활용하면 된다.

내가 설사 절대 미각이라고 해도 평가가 좋은 빈티지의 와인이 내 입맛에 맞지 않을 수도 있는데 굳이 비싸게 점수가 높은 빈티지의 와인을 마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가치과 가격이 다르다는 교훈 그리고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깨달음을 와인의 빈티지와 빈티지 차트를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와인을 즐기는 또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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