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오 예비역 육군중장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 군인에게는 여러 가지 상징이 있다. 군복은 살았을 때는 물론, 죽어서도 수의(壽衣)로 사용되는 군인의 첫 번째 상징이다.

총기는 군인만이 다룰 수 있는 특권이다.

스포츠형 두발 또한 군인의 절도와 패기, 야성을 나타내는 군인의 멋이다.

이 스포츠형 조발은 운동선수나 군인처럼 육체적 활동이 많은 분들이 머리 위생을 유지하는데 적합한 형태이다.

야외훈련이 많고 훈련기간이 1주 이상 4주까지도 진행되는 군인들에게 두발은 짧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고 여러모로 유리하다.

사실 전쟁 중에도 접적지역에서 초긴장 상태로 낮과 밤을 지새워야 하는 지상군의 경우는 한가로이 머리를 다듬고 자를 여유가 없다.

따라서 시간이 된다면 가급적 짧게 깎아야만 했다. 그런데 병사들의 두발을 간부처럼 길게 하겠다는 국방부의 발표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오히려 점차 야전성을 잃어가는 간부의 두발을 병사들처럼 짧게 한다고 해야 옳았다.

군인의 복장과 두발은 전장 임무와 야전 생존에 알맞게 발전되어 왔다.

공군 조종사의 길다란 빨간 마후라는 바다에 불시착했을 때 상어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해군의 더블 버튼 상의는 거센 바닷바람에 체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수병들이 입는 상의에 연결되어있는 작은 망토는 양쪽 끝을 둥글게 말아 바다 멀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들으려고 구상한 것이었다.

주로 적과 근접해 있는 접적지역 지상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지상군의 경우는 장시간을 야지에서 생활해야하기 때문에 보온과 위생을 신경 써야 했다.

그래서 발전된 것이 유명한 버버리코트이다. 지금은 세계적 브랜드가 된 이 트랜치 코트는 말 그대로 야전의 참호에서 비와 눈을 막고 하강하는 체온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온용 의상이었던 것이다.

두발은 어떠한가? 군인의 두발은 항상 짧지만은 않았다.

근대 이전, 머리를 고르기 어렵던 시절에는 잘 묶어서 틀어 올리기도 했지만 그냥 산발한 채 지냈다.

전쟁을 치르며 두발이 짧아야 전장에서 전염병을 막을 수 있고 깜깜한 밤의 백병전에서도 피아를 구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군인의 머리카락은 당연히 짧아야 했던 것이다. 평시라 하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동시에 여러 명이 생활해야 하는 병영에서는 개인위생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래서 주말만 되면 내무검사라 하여 제대로 이발하였는가를 점검하고 손, 발톱 검사, 심지어 속옷 세탁상태까지 확인했다.

인권 차원의 지적도 있을 수 있었지만 다수의 장병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병영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병영생활관에서는 작은 환자 발생도 초기에 잘못 대처하다가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여름에는 식중독이 무섭고, 날씨가 추워지면 옴 환자 발생을 특히 경계하였다. 옴은 한명이 발병하면 이미 그 생활관은 모두가 감염되었다고 봐야하는 무서운 동절기 전염병이었다.

흔치는 않았지만 ‘이’라는 흡혈곤충도 커다란 골칫거리였다. 자주 세탁하지 못하는 동내의와 모포는 이 ‘이’의 좋은 서식지였고 온 몸을 물어 장병들을 괴롭혔다.

그렇게 집단생활에서는 개인위생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군이 평시에 그런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앞선 휴대폰 사용이나 두발 자율화 등등이 병영생활 개선을 위한 일이라며 시도되고 있는데 이런 조치가 부디 ‘아예 한반도에 전쟁은 없을 것’이라는 치명적인 오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