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낙지다리’와 ‘쇠무릎’은 어떤 동물의 신체 부위만을 가리키는 용어는 아니다.

우리 땅에 저절로 자라는 자생식물의 정식 이름이다.

실제로 그 모양을 살펴보면 전자는 연체동물인 ‘낙지’의 ‘다리’를, 후자는 포유류인 ‘소’의 ‘무릎’을 꼭 빼닮았다.

예로부터 부르던 이름을 별도로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 채택한 것이다. 

자생식물 낙지다리는 아시아의 습지대에 널리 퍼져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른 키 절반 정도로 곧추서 자란다. 꽃은 한여름에 산낙지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핀다.

가을이 오면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가 붉게 익어 마치 익힌 낙지다리처럼 된다.

이렇게 불콰하게 물든 낙지다리가 군락을 이룰 때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룬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설악산과 월악산을 비롯하여 백두대간의 산정에 내로라하는 단풍 명소가 있다면, 낮은 땅 습지에는 낙지다리가 이룩한 가을의 군무가 있다.

낙지다리의 꽃(왼쪽)과 열매(오른쪽), 자생식물 낙지다리는 아시아의 습지대에 널리 퍼져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른 키 절반 정도로 곧추서 자란다. 꽃은 한여름에 산낙지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핀다. 가을이 오면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가 붉게 익어 마치 익힌 낙지다리처럼 된다. [사진=허태임]
낙지다리의 꽃(왼쪽)과 열매(오른쪽), 자생식물 낙지다리는 아시아의 습지대에 널리 퍼져 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른 키 절반 정도로 곧추서 자란다. 꽃은 한여름에 산낙지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핀다. 가을이 오면 꽃이 진 자리에 맺힌 열매가 붉게 익어 마치 익힌 낙지다리처럼 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낙지다리는 사람 손이 타지 않은 습지 주변에 산다.

드넓던 습지가 거대한 육지로 개발된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서 이 식물이 보기 드문 ‘희귀식물’이 되고 말았다.

많은 사람에게 ‘낙지다리’라는 식물이 낯선 이유는 아마도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강과 금강과 낙동강과 영산강, 이들 4대강에 대한 정비사업이 있기 이전에 그 강줄기 주변으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크고 작은 습지들이 지금과 견줄 수 없이 많았다.

낙지다리는 그 습지를 지키던 파수꾼이었다.

하지만 4대강 개발사업을 통과한 지금은 그 많던 습지도, 그곳을 수호하던 낙지다리도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그간에, 그러니까 대학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식물 탐사에 몰입할 수 있었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나에게 낙지다리의 생존 소식은 기다리던 답장처럼 띄엄띄엄 도착했다.

그 대부분은 습지의 개발을 앞두고 사전 조사를 하거나, 그와 반대로 ‘습지보호구역’지정을 위해 정밀 조사를 할 때였다.

나는 목격했다.

남한의 5대강, 한강공원과 금강 유구천과 영산강 수계와 낙동강 생태공원과 섬진강 하구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낙지다리를 살려둔 습지가 아주 드물게나마 존재한다는 것을.

달리 말해 그 습지들은 낙지다리 덕분에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낙지다리는 5대강 일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습지를 살린 장본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향 봉하마을에 돌아가서 화포천 일대를 중심으로 일찍이 ‘플로깅’ 활동을 실천하며 그 주변을‘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운동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실현된 것은 10여 년이 지난 2017년의 일이다.

그 중심에 낙지다리가 있었다.

화포천은 낙지다리를 비롯하여 다양한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게 그제야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인 전북 고창의 ‘운곡습지’와 최근에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경북 문경의 ‘돌리네습지’에서도 낙지다리는 파수꾼으로서 그 공간의 보전 가치를 인정받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강 주변의 습지로 조사를 나갈 때면 낙지다리를 탐색하는 더듬이를 달게 되었다.

내게 장착된 그 탐지기가 가장 격렬히 반응했던 장소는 다름 아닌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다. 

가을에 낙지다리는 열매도 줄기도 불그스레 물이 들어 아름다운 단풍을 연출한다. 정원 소재로도 좋은 식물이다. [왼쪽=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오른쪽=eol.org]

2018년 왕벚나무 꽃이 만개하던 날에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판문점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의 목표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에서 남측과 북측이 함께 유해를 발굴하겠다는 ‘남북공동유해발굴사업’이었다.

그해 가을에 ‘9·19남북군사합의’를 통해 대상지는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 내부에 있는‘화살머리고지’로 정해졌다.

한국전쟁 휴전이 머지않았던 1953년에 당시 중공군은 철원평야를 온전히 차지하기 위하여 화살촉 모양을 한 281m 고지를 맹렬히 공격했다.

보름 동안 이어진 격전에서 국군과 유엔군과 중국군을 통틀어 수천 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이것이 ‘화살머리고지전투’다.

휴전과 함께 고지는 비무장지대의 내부가 되었고 그로부터 60여 년이 넘도록 그 땅에 묻힌 전사자의 유해를 찾을 길은 남과 북 모두에게 꽉 막혀 있었다.

비무장지대 밖에서만 이루어졌던 기존의 유해발굴을 떠올리면 금단의 지역인 DMZ 내부에서 남과 북이 함께 유해발굴을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다. 

유해발굴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 ‘지뢰제거’와 ‘식물제거’를 통한 수색로 확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발굴 대상지에 어떤 종류의 동식물이 살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발굴에 따른 인위적인 행위가 그곳의 자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판단하는 일.

그 임무를 맡은 나는 그해 가을에 장병들과 함께 화살머리고지에 들어가게 되었던 거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나 역시 군인들과 같은 복장으로 철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단단히 갖춰 입어야 했다.

우리가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km씩 완충 구역으로 설정한 공간이 비무장지대다.

그래서 비무장지대는 한반도의 ‘동고서저’ 지형을 얇은 띠 모양으로 축소해 놓은 것과도 같다.

최동단인 강원도 고성에서 출발해서 점차 거칠어진 산줄기는 인제와 양구와 화천을 통과하며 천고지 이상의 높은 산들을 만들다가 철원과 연천을 지나 차츰 완만해지고 마침내 최서단인 파주 임진강을 만난다. 

습지가 눈에 띄게 펼쳐지기 시작하는 곳이 철원의 비무장지대다.

수색 장병들은 무게가 20kg이 넘는 보호장비를 두르고 땅속에 묻힌 지뢰를 탐지한다.

그들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검증된 땅만을 디뎌야 했기에 화살머리고지의 식물들을 꼼꼼히 기록하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철망 너머로 드넓게 펼쳐진 습지에서 낙지다리 군락만큼은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그들은 마치 누군가의 넋을 위로하듯이, 또는 대변하듯이 유독 붉게 피어 있었다.

그 풍경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있다.

우리보다 개발을 덜 한 북한의 습지에는 더 많은 낙지다리가 살고 있을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북한의 낙지다리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

함께 꿈을 꾸었으나 화살머리고지의 공동 유해발굴 작업은 북측의 호응 없이 남측의 단독 사업으로 마무리되었다.

반목과 불신은 지금도 여전히 그 땅에 수많은 유해를 묻어 두고 있다. 

중국에서 낙지다리는 ‘수택란(水澤蘭)’ 또는 ‘차근채(撦根菜)’라는 이름의 전통 약재로 쓰인다.

중국 남부지방의 소수민족인 묘족은 간 질환을 다스리는 특효약으로 그들 주변에서 널리 자라는 낙지다리를 오랫동안 이용해왔다.

현대 의학에서 그 효능이 입증되어 낙지다리로 신약이나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폭넓게 진행되고 있다.

‘낙지다리’가 중국의 전통식물로 자리하게 되었듯이, 우리에게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쇠무릎’이 그런 역할을 했다.

‘비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일대에 널리 자라는 식물.

쇠무릎은 줄기의 마디가 마치 소의 무릎처럼 툭 불거진 게 외형상 특징이다.

보도블록 틈, 빈집 마당, 쌓아둔 건초더미나 덤불의 가장자리, 가꾸지 않는 밭 둘레……

심어 기르지 않아도 우리나라 전역 어디서나 알아서 뿌리를 내리고 왕성하게 번식하기 때문에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은 이 식물을 삶 안에서 살뜰히 이용했다.

그래서 쇠무릎은 우리나라 전통식물로서의 내력으로 따지면 선두에서도 거의 맨 앞에 든다. 

툭 튀어나온 줄기의 마디가 마치 소의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쇠무릎’이라 부른다. 비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반도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일대에서 널리 자란다. 식물 쇠무릎과 실제 소의 무릎 사진(왼쪽과 가운데). 빈터만 있으면 어디서나 잘 자라는 쇠무릎의 강인한 생명력(오른쪽)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리나라 전통식물의 이용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가장 널리 쓰인 Top3 식물로 ‘쇠무릎’과 ‘익모초’와 ‘질경이’를 든다.

그들의 공통점은 어느 한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전국 어디서나 잘 자란다는 것과 사람의 몸을 다독이는 약효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한방에서 쇠무릎은 한자 이름인 ‘우슬(牛膝)’로 통한다.

'동의보감'과 '향약집성방'은 진통 억제, 골격계 강화, 이뇨 질환 등을 다스리는 데 우슬을 쓴다고 설명한다.

현대의 약리학적 연구 또한 쇠무릎이 지닌 다양한 효능(면역력 증진, 항암과 항염증 효과, 간세포 보호 효과 등)을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민간에서는 관절염의 특효약으로서 ‘우슬’이 크게 부각 되고 있다.

아마도 거기에는 쇠무릎이라는 이름이 가진 어떤 상징적인 요소가 한몫하는 게 아닐까. 

먹거리가 다채로워진 지금은 낯선 이야기 같지만, 쇠무릎이 나물로 사랑받던 때가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저술한 박물학서 '임원경제지'나 조선시대 종합농서인 '구황방고문헌집성'에는 당시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요리 비법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 고문헌에 등장하는 주요 나물이 쇠무릎이다.

봄에 수확한 새순을 물에 우려낸 후 데치거나 볶아서 양념을 해서 먹기도 하고, 장아찌를 담아 몸을 보하는 약채(藥菜)로 먹기도 한다.

우리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쇠무릎을 묵나물로 무쳐서 낸 반찬을 밥상에서 만날 수 있었다.

‘쇠무릎’도 아니고 ‘우슬’도 아니고 할머니는 꼭 ‘쇠물팍’이라고 했던 그 나물.

최근 우리 전통 음식을 연구하는 분야에서 ‘약선요리’의 재료로 쇠무릎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꽃이 화려하지도 않고 아무 자리에서나 잡초처럼 자라기 때문에 길에 쇠무릎이 무성하게 피어도 일반인은 잘 알지 못한다. 번식력이 좋아서 작물을 재배하는 땅에서는 잡초로 전락하기도 한다. 알고 보아야 눈에 들어오는 식물이 쇠무릎이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이렇게 이로운 쇠무릎이지만, 꽃이 화려하지도 않고 아무 데서나 잡초처럼 자라기 때문에 그들이 길에 무성하게 피어 있어도 일반인은 잘 알아보지 못한다.

번식력은 하도 좋아서 작물을 재배하는 땅에 눈치 없이 침입해서 푸대접을 받기도 한다.

그런 쇠무릎이 식물분류학자들 사이에서는 공을 많이 들이는 연구 대상이다.

쇠무릎은 한약재로 거래되기 때문에 그 기준이 되는 분류학적 실체를 더 깐깐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학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쇠무릎 사이에서 털이 유난히 많고 꽃의 생김새가 조금 다른 개체들을 ‘털쇠무릎’이라는 별도의 종으로 구분하여 우리나라에 사는 쇠무릎을 2종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견해와 그러한 차이는 생육 조건에 따라 들쑥날쑥하게 나타나므로 단일 종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서로 달리 존재한다.

일본의 식물분류학계와 국내의 한의학계에서는 현재 동일한 1종으로 쇠무릎을 인식하고 있다. 

식물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존을 위해 ‘극복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전보다 건조한 환경이 얼마간 지속 되면 그걸 알아차리고 털이 많아지거나 잔뿌리가 발달하는 방식으로 건조에 대처한다.

또는 꽃가루받이하러 찾아오는 매개자를 염두에 두고 꽃의 형태나 구조를 조금씩 바꾸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이어지면 쇠무릎의 경우처럼 같은 종 사이에서도 원래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외형을 지닌 개체가 등장하게 된다.

그렇게 드문드문 나타난 ‘변이개체’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또 다른 종으로 나아가는 진화의 단계인지, 전과는 다른 별도의 종으로 완전히 분화한 것인지를 밝히기 위해 식물분류학자들은 집요하게 식물을 추궁해야 한다.

부위별로 외부 형태를 낱낱이 측정하고 글과 그림을 통해 빠짐없이 기록하거나, 자르고 갈라서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해부적 형질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나노미터 단위의 미세 구조를 현미경으로 살피거나, 아예 식물체를 짓이겨 진공의 기계에 넣고 그들 DNA 사슬을 인위적으로 증폭하는 방식으로 유전자의 구조를 밝히기도 한다. 

그 결과들을 분석해서 종과 종 사이의 거리를 재단하는 일이 식물분류학자의 업이라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관계와 현상들을 구명하는 일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때로는 회의감과 절망의 감정들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 일에서 잠시 벗어나서 식물 본연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이를테면 낙지의 다리처럼 생긴 낙지다리와 소의 무릎을 닮은 쇠무릎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 그리하여 사랑하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가 동력을 얻는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식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을‘식멍’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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