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지난 세기만 해도 책은 오로지 눈으로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한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性)을 바꾸는 것도 가능할지 모르는 4차 산업 혁명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금세기부터는 180도 달라졌다.

듣는 것이 보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세상이 됐다. 오디오북이 책을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것에 익숙한 신세대들에게 각광을 받는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 플랫폼으로 떠오른 덕분이다.

말할 것도 없이 관련 시장도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매년 30∼4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2020년 말을 기준으로 100억 위안(元. 1조8500억 원) 전후의 시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현 성장세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23년에는 200억 위안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시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 시내 한 지하철 역에 내걸린 란런팅수의 광고. 오디오북플랫폼업계 극강의 1위로 손꼽힌다./제공=신징바오(新京報).

당연히 시장을 노리고 뛰어든 플랫폼 업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두각을 나타내는 기업은 소수라고 해야 한다.

이들 중에서 요즘 들어 단연 주목을 받고 있는 업체는 “책으로부터 두 눈을 해방시켜 세상을 듣게 한다.”라는 슬로건으로 5억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란런팅수(懶人聽書)가 아닌가 보인다.

오디오북 모바일 앱 중에서는 단연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전망은 종합 지식 콘텐츠 플랫폼 1위 기업인 시마라야(喜馬拉雅FM. 영문명 히말라야FM)보다 더 낫지 않느냐는 평가도 받고 있다.

란런팅수는 지난 2012년 고고의 성을 울렸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간편한 오디오북을 통해 자기계발 욕구가 강한 신세대 직장인들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것이 설립 당시의 취지이자 목표였다.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성공을 거둔 이면에는 사실 “게으른 사람이 책을 듣는다.”라는 의미를 가진 회사의 이름도 크게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최근 들어 탕핑(躺平)문화(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누워 뒹구는 현상)가 크게 유행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가능하면 게으른 생활을 즐기려는 신세대에게 크게 어필했던 것이다.

최근 광동성 선전에서 열린 한 문화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란런팅수의 서비스를 체험해보고 있다. 업계 1위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드는 풍경이다./제공=신징바오.

그렇다고 란린팅수가 지금의 성공 신화를 거저 주워 먹은 것은 아니다. 나름 각고의 노력을 통해 지금의 위상을 확립했다고 해야 한다.

우선 양질의 콘텐츠 확보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력해온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이 결과 현재 란런팅수는 대륙 전역의 1000여 출판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고전부터 동화, 인터넷 소설 등 20여 개 장르에서 총 300만 시간 전후 분량의 음성 콘텐츠를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텅쉰(騰訊. 영문명 텐센트) 산하의 최대 온라인 문학 플랫폼인 웨원그룹(閱文集團)과의 제휴를 통해 중국 내 80%에 달하는 콘텐츠 음성 판권을 확보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단연 극강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단언해도 좋다. 이에 대해서는 유명 문학 평론가인 마샹우(馬相武) 런민(人民)대학 교수의 부연 설명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웨원그룹의 온라인 플랫폼은 1000만여 명 가까운 인터넷 소설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중국 전체 온라인 작가의 88%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플랫폼은 중국 인기 순위 상위 50위에 랭크된 온라인 작가 중 41명을 배출할 정도로 막강한 ‘콘텐츠 파워’를 자랑한다. 란런팅수의 압도적 경쟁력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란런팅수가 업계 극강의 기업이라는 사실은 모바일 앱 점유율에서도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2021년 상반기 기준으로 무려 89%를 기록, 2위 업체인 쿠워팅수(酷我聽書)의 9.5%를 압도하고 있다. 사실상 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모바일 앱 다운로드 규모 면에서도 크게 다를 까닭이 없다. 2021년 상반기까지 누적 다운로드 규모가 6억 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역시 2위 업체인 쿠워팅수의 2억 건을 우습게 내려다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 구조가 나쁠 수가 없다. 무척이나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콘텐츠 매출과 광고 수입이 6대4의 비율로 상당히 균형이 잡혀 있다.

업계 매출액의 70% 가까이에 이르는 70억 위안의 매출을 자랑하는 란런팅수의 야심은 그러나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향후 오디오북 콘텐츠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종합 지식 콘텐츠 플랫폼으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은 사실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란런팅수의 라이벌은 시마라야FM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업계를 평정했다고는 하나 나스닥 상장까지 넘보는 시마라야의 위상을 감안할 경우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란런팅수는 믿는 구석이 있다. 2021년 초 27억 위안의 투자를 받으면서 텅쉰의 계열사로 편입됐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다. 텅쉰이 작심하고 밀어줄 경우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면서 시마라야와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더구나 독립 경영을 지속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유한 만큼 독자적으로 가능한 자금 조달을 통해 시마라야에 대적할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것 역시 별로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란런팅수의 기업 가치는 최소한 100억 위안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경영진에서 마음만 먹으면 나스닥은 몰라도 홍콩이나 상하이(上海)나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증시에 상장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막연한 업계 공룡에서 누구나 알아주는 명실상부한 유니콘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다. 란런팅수가 단순한 오디오북 플랫폼을 넘어 종합 지식 콘텐츠 플랫폼으로 성장하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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