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서울 성북동 뒷산은 나에게 늘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자연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나눔과 동행조차도 빼앗아갔다. 심지어 사랑해야 할 가족과 이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고운 추억마저 잃었다. 지겹고 황량한 시간들이었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마스크의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마스크의 행진이 얼마나 계속될 지 모른다. 아름다운 이의 아름다운 얼굴을 볼 수 없는 의심의 행진은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른다. 이웃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성북동 뒷산 북악산은 나에게 늘 위안이다. 산책로를 따라 핀 들국화, 코스모스, 그리고 이름모를 꽃들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돈암동에 위치한 성북구 구민회관에서 북악산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마워한다.

뒷산이 가을로 물들어 있다. 가을의 색깔로 내가 물든 것 같다. 아마 나를 짜면 빨간색 노란색의 물감이 나올지 모른다. 때로는 과히 달갑지 않지만 북악골프연습장의 힘찬 샷들이 건강한 젊은이의 맥박처럼 들려온다.

뒷산은 대기오염의 정도를 알 수 있는 ‘관측소’이기도 한다. 한신아파트 바로 뒤에 있는 ‘전망대’를 가면 남산 타워가 멀리서 보인다. 이 타워 중간을 보면 파란색이 있다. 이 파란색이 보이면 공기가 ‘오케이’라는 것이다. 만약 안보이면 ‘노(No)’다. 아니 그 전에 남산 타워가 안 보인다.

미세먼지는 늘 우리의 기분을 빼앗아간다. ‘죽음의 먼지’, ‘잿빛 재앙’, 그리고 ‘은밀한 살인자’ 등 수많은 악명을 지닌 미세먼지는 아름다운 계절의 꿈을 퇴색시킨다.

분진(粉塵)이라는 미세먼지는 아황산가스, 질소 산화물, 납, 오존, 일산화탄소 등과 함께 수많은 오염물질을 포함하는 대기오염물질을 총칭하는 말이다. 우리의 폐까지 침투해 각종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인체의 면역기능을 악화시킨다.

환경病 대책은 의학자의 손에서 나오지 않아

코로나19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긴다.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 같은 세균에 의해 감염되는 전염병은 우리의 과학과 기술로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출중한 과학자나 의학자들이 실험실에서 세균들과 싸움을 계속하면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백신과 같은 예방주사나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중금속 오염 질환은 다르다. 또 대기 오염으로 인한 질환은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은이나 납,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 오염 질환은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연구결과로 나올 수 없다. 아토피, 천식과 같은 병도 그렇다.

이러한 질환들은 행정가와 정치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리고 한 국가의 정치인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병도 아니다. 모든 국가의 지도자들이 협력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질환이다.

파리 협정을 비롯해 각종 기후협약과 지구 온난화 협약들은 아름다운 청사진을 제시하지만 결과는 늘 실망스럽다. 돈이 들기 때문이다. 각 나라별로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엮어 있기 때문이다.

12일까지 파리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어떤 약속을 할 지 의문이 간다. 이미 세계 강대국이면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불참했다.

그렇다고 중국과 러시아만 탓할 수는 없다. 과거에 산업혁명을 등에 업고 이산화탄소를 너무 많이 배출한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어떤 책임을 져야하는 지도 그렇다.

중국은 “지금의 지구온난화는 18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 산업혁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최대 정유업체들을 거느리고 있는 미국도 과히 이러한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 않은 눈치다.

코로나19는 환경적 문제로 발생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인류는 과학과 기술을 무기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을 퇴치할 방법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제 질병은 세균 감염에 의한 질병보다 환경으로 인한 병이 더 심각한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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