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오감만 잘 갖추고 있다면 인간은 충분히 우주가 무엇인지를 탐험할 수 있다. 그것을 모험과학이라고 부른다” -허블(1889~1953): 미국 천문학자, 우주팽창 이론가-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 미국의 에드윈 허블은 매서운 펀치를 갖고 있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를 처음으로 제시해 천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연 그는 고등학교시절만 해도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복서였다.

그는 전국고등학교 육상대회에서 6번이나 우승할 정도였고 일리노이스주 체전에서는 높이뛰기 기록보유자로도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육상으로 다져진 그의 단단한 몸과 민첩한 발 놀림으로 링에서 그를 따라잡을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김형근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육상선수 출신의 복서로 대단한 능력 발휘

주위 사람들도 운동으로 출세할 사람이라고 여겼다. 당시만 해도 복싱은 아마추어, 프로 가릴 것 없이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기였다. 오직 믿을 것은 주먹밖에 없는 사각의 정글에서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인간의 동물적 투쟁에 사람들은 많은 박수를 보냈다.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면서도 권투를 계속했다. 이 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체격이 좋은 데다 인상이 강했고 얼굴도 잘 생겨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았다.

사실 그는 스승이자 유명한 천문학자인 조지 헤일 교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우주와 은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권투를 완전히 접었다.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꿈도 버렸다.

변덕스러웠던 그는 전공을 완전히 바꾸고 변호사가 될 결심으로 영국으로 갔다. 집념이 강했던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법률을 공부해 1912년 학사학위를 취득해 법률가로의 길을 시작했다.

그러나 곧바로 싫증을 느꼈다. 다시 권투생각이 난 그는 인디애나에 있는 모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농구코치로 일했다. 그러나 그가 매달려야 할 평생직장은 다른 데 있는 듯싶었다.

그는 다시 체육선생도 그만두었다. 결국 대학시절 황홀하고 신비스러운 별들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천문학이 천직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결국 모교인 시카고대학으로 돌아와 여키스 천문대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말 재미있는 남자였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운동을 잘하던 그는 장교로 지원했다. 불과 몇 년 만에 소령으로 진급할 정도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허블은 카네기 재단이 운영하는 윌슨산 천문대(Mount Wilson Observatory)에 근무하면서 외부은하에 관련된 연구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연구에 돌입하면서 천문학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가 발휘한 천재성이 바로 우주가 커지고 있다는 우주팽창이론이다. 우주팽창 하면 적색이동, 스펙트럼, 허블 상수 등 어려운 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훗날의 이야기다.

허블이 우주팽창이론의 실마리를 잡은 것은 대단한 수학 공식이나 방정식이 아니다. 또 거창한 상대성이론과 같은 어떤 물리학 이론도 아니다. 그저 망원경을 통한 육안으로 확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남긴 말처럼 오감(五感)으로 위대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五感으로 우주여행을 한 천문학자”

망원경을 통해 별들의 움직임을 계속 관찰한 결과 평소에 보이는 별들과 은하의 수가 증가했다. 그리고 점차 희미하게 보였다. 그리고 망원경 내에 새로운 별들이 보였다. 결국 우주가 멀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며, 이는 곧 우주가 팽창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은 오감만 잘 갖추고 있다면 충분히 우주를 탐험할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허블 망원경은 하늘에 떠 있는 인공위성 망원경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대신해 주며 우주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어떠한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형형색색의 아름답고 신비한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1990년 4월 천문학자 허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와 미항공우주국(NASA)이 공동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다.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실려 지구 상공 610km 궤도에 진입한 후 관측활동을 시작하면서 우주와 은하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보낸다. 해상도는 물론 감도도 높아 지구에 설치된 망원경들보다 50배 이상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이 가능하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노벨상도 인연이 닿아야 한다. 짓궂게 표현하자면 재수가 좋아야 한다. 스웨덴의 노벨상 심사위원회가 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결정을 내렸을 때는 이미 세상을 뜬 지 3개월이 됐을 때의 일이다. 노벨상은 사후에는 결코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하긴 우리가 보는 밤하늘인 우리 은하를 넘어 외부은하를 탐험하면서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와 이야기를 나눈 허블에게 노벨상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겠는가? 부질없는 탐욕이고 장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부질없는 인간의 헛된 욕망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덤도, 유해도 없이 족적을 한사코 거부한 과학자

허블은 1953년 9월 28일 캘리포니아 산마리노에서 뇌혈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평생 반려자였던 아내 그레이스에게 장례도 치르지 말고, 시신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도 말고 화장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또 무덤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아내는 이를 지켰다. 지금까지도 그의 유해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대 천체물리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허블. 그는 그의 족적(族籍)이 후세에 남는 걸 한사코 반대한 너무나 겸손한 과학자다. 역사상 많은 말을 남긴 어떠한 사상가와 철학자보다 우리에게 뭉클한 감동을 준다. 과학과 과학자가 걸어가야 할 길을 제시한 훌륭한 스승이다.

우주를 바라보는 인류의 눈의 구실을 해온 허블 망원경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많은 과학자들이 허블을 기리기 위해 허블 망원경이 계속 남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역할을 새로운 인공위성 망원경 제임스 웹(James Webb)이 대신하게 된다. 다음달 18일 이 망원경이 우주로 올라간다.

그동안 우리가 봐 왔던 아름답고 경이로운 천체 사진들 대부분은 허블 망원경이 찍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망원경은 5번의 수리와 부품 교체를 통해 30년간 우리 곁을 지켰지만 이제 그 수명을 다한 것이다.

저 건너에 있는 무한한 우주의 소식을 전해주는 허블 망원경에는 이처럼 집념으로 똘똘 뭉친 위대한 과학자의 위대한 영혼이 배어 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왕년의 집념의 복서 허블은 이렇게 강조했다. “천문학에 대해 확고한 소명의식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천문학에 뛰어들지 말라!”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