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6)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한글 전용을 그렇게 고집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전용이 가능하다면 한글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론은 마땅히 그렇게 나가야 하고, 그것은 독자에 대한 서비스다.

‘멘토’의 어원이 된 멘토르(Mentor)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나오는 인물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만큼 작품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왕이 될 왕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역할은 막중하다.

오디세우스 아들의 스승 ‘멘토르’에서 유래

그리스 이타이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에게 중대한 고비가 다가왔다. 숙적인 트로이와 결전을 치르기 위해 트로이로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갓 낳은 아들 텔레마코스와 아내 페넬로페가 제일 걱정이었다. 더구나 텔레마코스는 독자였다. 만일의 경우 자신을 대신해서 나라를 이끌 훌륭한 재목으로 키워야만 했다.

몇 달 만에 끝나는 전쟁이 아니었다. 수 년, 수십 년이 걸려야 끝나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오디세우스는 한 친구를 불러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들과 아내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 이름이 멘토르로 60세를 갓 넘었다. 당시로 따지자면 상당히 노인 측에 속하는 나이였다.

김형근 논설위원 겸 과학전문기자 

멘토르는 오디세우스가 없는 동안 텔레마코스를 잘 돌보아주면서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키웠다. 때로는 친구로 지냈으며 오늘날 같으면 선생님, 상담자, 심지어 아버지가 되어 그를 성심 성의껏 보살폈다.

문제는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였다. 10년 동안 계속되는 전쟁에서 승리한 트로이 병사들은 다 돌아왔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디세우스로부터는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그러자 페넬로페의 마음이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페넬로페와 결혼하겠다는 구혼자들이 나왔다. 일부 남자들은 오디세우스가 갖고 있던 재산을 뺏고 아들과 아내를 괴롭혔다. 텔레마코스는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없어 이들을 제압하지 못했다. 구혼자 수가 무려 108명이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를 연모한 아테네 여신이 늙은 멘토르가 돼 맹활약

평소 오디세우스를 흠모했던 용감무쌍한 정의의 여신 아테네가 멘토르의 모습으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에게 구혼자들의 횡포에 당당히 맞설 것을 주문한다. 또한 아버지의 소식을 알기 위해 먼 곳으로 항해하여 떠나라고 충고하고 도움을 준다.

아테네 여신은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멘토르의 모습으로 아내를 괴롭히는 구혼자들을 처치하는데 일조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정작 진짜 멘토르는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멘토르가 오늘날의 멘토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의 일로 17세기 프랑스의 시인이자 신학자의 한 소설작품에서 시작됐다. 

1699년 처음 출간된 프랑스 절대왕정 시기의 대주교 프랑스아 페늘롱(Francois Fenelon 1651~1715)의 <텔레마코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Telemachus)>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동화와 만화 등으로 이미 선보인 작품이다.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오늘날 멘토의 출발

페늘롱은 열두 살에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우아하게 글을 쓸 정도로 영리했다. 그는 또한 루이 14세의 손자인 부르고뉴 공작의 궁정 가정교사였다. 그는 어린 공작을 보다 재미있고 쉽게 가르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썼다. 이 작품은 출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그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이 작품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 않았던 텔레마코스에서 힌트를 얻어 이 작품을 썼다.

텔레마코스가 아테네 여신이 변신한 스승 멘토와 함께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오디세이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겪는 스릴 넘치는 모험과 이를 해결하는 기지를 다룬 책이다. 이 책은 부자(父子)간의 혈육의 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하고, 소년의 성장기이기도 하며 또한 통치자에 대한 조언이기도하다.

루소가 그의 작품 <에밀>에서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할 책으로 <로빈슨 크루소>와 이 책을 추천할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모험심을 심어주는 교육적 효과가 탁월한 책이다. 또한 내용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선배’라는 표현의 어원이라고 할 수 있는 멘토르는 <오디세이>에서는 단순히 오디세우스의 친구이자 텔레마코스의 스승에 불과하지만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는 아테네 여신이 그로 변장해 고비고비마다 제자를 구출해낸다.

페늘롱은 이 작품을 통해 통치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설파할 뿐만 아니라 왕은 오로지 백성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루이 14세의 미움을 받게 된다.

더구나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신이나 다름없는 멘토르로 치장한 것은 신성한 왕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왕자나 귀족의 자제들이 받는 교육이란 엘리트 의식과 귀족으로 자존심을 지키게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식인이었던 페늘롱은 왕이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게 되는 영향을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아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담아내는 동시에 지도자의 행동 원칙에 관한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왕의 미움을 산 그는 결국 궁정 가정교사의 지위와 은급을 박탈당한 후 뚜렷한 직책이 없이 방황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페늘롱이 루이 14세의 미움을 산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당시 막강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이단으로 취급받던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를 옹호했다. 기독교의 한 사상으로 인간의 자발적, 능동적인 의지를 최대로 억제하고 오로지 초인적인 신의 힘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사상이다.

17세기 당시 크게 외형화 세속화된 교회주의에 항거하고 금욕과 절제를 통해 신앙의 내면과 질의 향상을 추구하려는 일종의 신비주의 경향이 널리 퍼져 있을 때다. 그는 교황 인노첸시오 11세(Pope Innocent XI)의 미움을 샀고, 이 또한 교황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루이 14세를 화나게 만들었다.

“개인 지도자, 지원자, 후원자” 등으로도 쓸 수 있어

멘토 멘토링은 근래 들어 많이 쓰이는 외래어다. 초중학생 대상 대학생 멘토링 제도, 회사의 선후배 멘토링 제도 등이다. 기업이 전문계 고등학교와 협약을 맺어 학교를 지원하는 ‘1사1교 멘토링’ 운동도 시행되고 있다. 조언을 받는 사람은 멘티(Mentee)라고 부르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 다듬기(www.malteo.net)’를 통해 ‘멘토’를 대체하는 우리말로 ‘인생길잡이’를 선정했다. 2011년 누리꾼이 제안한 362건 가운데 투표를 거쳐 ‘인생길잡이’를 ‘멘토’의 다듬은 말로 결정했다고 한다.

꼭 인생길잡이가 아니어도 된다. 외래어 사용을 절제하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에 ‘멘토’를 가급적 ‘인생길잡이’로 대체하되, 마땅하지 않으면 ‘개인지도자’ ‘조언자’ ‘후원자’ ‘후견인’ 등 상황에 맞게 적절한 우리 말로 쓰면 된다.

멘토와 멘토링은 능력 있는 후배 과학자를 양성한다는 차원에서 과학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더욱 많이 쓰는 용어다. 과학과 접하는 사람들이 먼저 이러한 노력에 앞장선다면 더 좋은 이미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과학기술 쪽에는 영어를 비롯해 외래어가 많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근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찾아온 ‘부스터 샷(booster shot)’도 그렇다. ‘촉진’이나 ‘보조’를 뜻하는 ‘부스터’를 추가접종으로 표현하면 이해하기도 쉽고 문장도 깔끔하게 된다. 중요한 독자에 대한 서비스로 언론이 앞장서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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