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형법 적용해 보호할 수 없어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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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이태웅 기자】 자신의 가상자산 지갑에 잘못 입금된 다른 사람의 비트코인을 돌려주지 않고 사적으로 사용했더라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법원이 가상자산을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점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6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실형은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은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A씨는 2018년 6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가상자산 지갑에 199.999비트코인이 이체되자 이 중 199.994비트코인(당시 약 14억8000만원 상당)을 본인의 다른 계정 2곳으로 이체했다.

검찰은 A씨를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1·2심은 비트코인이 물리적 실체가 없고 사무적으로 관리되는 디지털 전자정보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횡령죄의 객체인 '재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1·2심은 A씨에 대해 배임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가상자산이 경제적 가치를 갖는 재산상 이익으로 형법상 보호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잘못 이체된 비트코인이더라도 A씨가 이를 보관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2심은 "A씨가 법률상 원인 없이 타인 소유 비트코인을 보관하게 된 이상 이를 반환하기 위해 보호하고 관리할 임무를 부담한다"며 "A씨는 배임죄의 주체로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가상자산 권리자의 착오나 가상자산 운영 시스템의 오류 등으로 법률상 원인관계 없이 다른 사람의 가상자산 전자지갑에 가상자산이 이체된 경우 부당이득을 반환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게 될 수 있다"면서도 "이는 당사자 사이의 민사상 채무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A씨가 피해자에게 직접 부당이득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사람을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경우에는 피해자와 피고인 사이에 신임관계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현재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취급되지 않고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기 때문에 형법을 적용해 법정화폐처럼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원인불명으로 재산상 이익인 가상자산을 이체 받은 자가 가상자산을 사용·처분한 경우 형사처벌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이라면서 "착오송금에 횡령죄 성립을 긍정한 (대법원) 판례를 유추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근거로 배임죄로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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