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일 국회에서 2022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1년 12월 3일 국회에서 2022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윤구현 기자】 1997년 1월,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로 들어섰다.

외채를 갚을 능력이 없는 이른바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것인데, 그 결과는 참혹했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수많은 실업자가 아무런 대책 없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때 실직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엇비슷한 수준의 직장에 재취업함으로써 정상적 생활로 복귀했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그리던 삶에서 멀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

IMF관리체제는 2001년 빌렸던 돈을 다 갚음으로써 종료됐지만 상처는 너무 컸고, 교훈은 명확했다.

20년도 훨씬 지난 아픈 과거를 들추는 건 국가재정의 중요성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역사적으로 수지균형을 중시했다.

정부 채무를 경제규모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에 비해 채무증가가 급속도로 앞서가는 걸 허용치 않았다.

1997년 IMF 외환 금융위기를 맞자 정부의 정책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위기 극복을 위해 국채 발행을 크게 늘렸다.

IMF와 IBRD로부터 차관을 들여왔고,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을 발행했으며 금융기관의 외채와 예금에 대한 지불보증,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의 지급보증에 나서는 등 많은 채무를 짊어지게 됐다.

이러다 보니 GDP대비 정부채무는 17.3%로 치솟았다.

재무 관료들은 “앞으로 또다시 외환위기가 오면 그 때는 정부 재정이 부실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었는데, 요새 GDP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50%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가 돼 버렸다.

재정건전성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요새 나랏돈을 더 많이 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난무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4일 코로나 피해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과 관련, “국민 1인당 최소 100만원 정도는 맞춰야 한다”고 했다.

기왕에 50만 원 정도를 지원했으니 이번에 50만원 정도를 추가해 100만원을 맞추자는 것이다.

또 “설 전에 당연히 가능하고, 30조원 정도가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싶다”며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관한 운을 띄웠다.

작년 12월에 2022년 예산으로 607조원을 통과시킨 지 불과 한 달 만에 또다시 대규모 추경을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경이라는 게 예산을 짤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재해나 경제위기가 있을 때 편성하는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 달 사이에 코로나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고, 경제위기가 새로 생긴 것도 아니다.

올해 예산을 작년보다 8.9%나 늘린 건 코로나로 인해 크게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지원하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혹시 여지가 생긴다면 피해를 많이 본 이들을 집중 지원하는 게 더 정의로운 게 아닌가.

정치권의 추경 논의가 선거용 `표'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재정 악화의 폐해는 막대하다.

국채를 마구 발행해서 금리를 올려놓으면 이러저런 이유로 빚이 쌓인 사람들은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가 또한 들썩거리면서 서민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시비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민감하게 다가갈 것이다.

외국인이 돈을 빼가면 외환위기 불안에 시달릴 것이고, 빼가지 않으면 환율 강세로 수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는 사이 주가는 출렁거리기 마련이다.

슈퍼 예산을 짠 지 한 달 만에 슈퍼 추경을 얘기하는 건 경제안위 보다 선거에서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여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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