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동위원소의 DNA를 찾아서(1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에 패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돼 1821년 52세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인(死因)은 위궤양으로 생긴 종양 때문이라고 보고됐다.

그러나 그의 사인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일부에서는 영국이 나폴레옹을 증오하고 시기해 독살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독살에 가장 흔히 사용되는 독극물인 비소(As)로 그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왔다.

나폴레옹의 공식 사인은 위궤양, 그러나 비소중독설 계속 제기돼

사실 나폴레옹은 유배기간 동안 독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지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위 측근들에게 자신이 죽게 되면 반드시 사인을 밝혀 달라는 당부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는 분명 누군가 자신을 독살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난 바로 다음날 생전의 당부대로 부검이 시행되었다. 당시는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절차가 없었다. 그래서 육안적 병리 소견만을 기록한 공식 부검소견서가 작성되어 5명의 영국 군의관들이 문서에 서명하였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사망한 나폴레옹의 공식 사인은 위궤양있다. 그러나 독살되었을 거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돼 왔다. [사진=Wikipedia]

군의관들의 주된 소견은 위궤양이었다. 그러나 부검의사들 사이에 일치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위궤양이라고 주장하는 군의관들과 달리 부검을 직접 담당한 의사들은 위암이 사인이라고 주장했다.

하긴 당시의 병리학 수준으로 볼 때, 더구나 병리학자도 아닌 아마추어 수준의 의사라고 할 수 있는 군의관들이 암과 궤양을 육안으로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든 이후 나폴레옹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나폴레옹의 독살 의혹에 불을 붙인 것은 스웨덴의 치과의사이자 내과의사인 포르슈훗(Sten Forshufvud 1903~1985)이다. 그는 1961년 ‘누가 나폴레옹을 죽였는가?’라는 책을 저술하여 나폴레옹은 독살되었다고 주장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아마추어 독물학자(毒物學子)이기도 한 그의 주장은 나폴레옹의 임상 증상이 비소 중독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생전에 여러 친지들에게 나누어 준 머리카락 분석해본 결과 정상보다 많은 양의 비소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나폴레옹이 독살되었음을 주장했다.

포르슈훗은 당시 정확하게 나폴레옹의 것으로 추정되는 5개의 머리카락을 조사했다. 당시 보디빌딩과 건강 및 피트니스 전문가로, 그리고 스포츠 의류 및 상품 사업을 펼치고 있던 캐나다 출신의 벤자민 웨이더(Benjamin Weider)와 이 작업을 진행했다. 

나폴레옹이 독살되었다는 주장에 선 인물로 ‘누가 나폴레옹을 죽였는가’를 비롯해 포르슈훗과 함께 나폴레옹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저서들을 공동으로 집필했다.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을 딴 스포츠 상품 브랜드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최근에는 건강식품에도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조사결과 그들은 머리카락에서 정상치에서부터 38배나 많은 비소를 발견해 내자 나폴레옹의 독살의혹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1995년 8월에는 미연방수사국(FBI)의 한 법의학 책임자도 나폴레옹의 임종 6시간 후에 하인이 채취하여 보관해온 또 다른 머리카락에서 다량의 비소를 검출하였다고 확인하였다.

방사화 분석법으로 머리카락 속 비소 기준치 이상을 발견

그렇다면 그들은 가느다란 머리카락 속에 비소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로 방사선을 이용한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NAA, neutron activation analysis)이다. 이 분석법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고감도 화학분석법의 하나다.

이 분석법은 어떤 식으로 작동될까? 방사능을 띄지 않은 일반적인 입자에 중성자를 쪼이면 그 중성자가 그 원자의 원자핵과 충돌한 다음 붕괴하지 않고 질량이 하나 늘어난 원소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질량이 59인 코발트 원소 Co-59에 중성자를 조사하면 질량이 1이 늘어난 Co-60이 된다. 중성자 질량이 1이기 때문이다.

질량이 하나 더 늘어난 원소의 원자핵은 불안정하게 되기 때문에 방사선을 내어 다른 안정한 원소로 변한다. 이때 주로 감마선이 나온다. 이 감마선을 측정하는 것이 바로 중성자 방사화 분석법이다.

구별이 왜 되느냐 하면 모든 원소의 반감기가 다르기 때문에 원소에 따라서 시간 별로 나오는 감마선의 세기가 변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원소가 얼마 있는지를 알게 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폴레옹의 비소독살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방사화 분석법의 최대 장점은 아무리 적은 미량(10억 분의 1그램 정도)의 원소일지라도 검출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남긴 머리카락 속에서 일반 사람의 머리카락에 비해 훨씬 많은 양의 비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같은 방법으로 뺑소니차가 현장 어디에 남긴 흔적, 예를 들어 그 차의 도색재료 등으로부터 뺑소니차를 찾아내기도 한다. 명탐정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그 밖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들을 이 방사화 분석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 방법은 1936년에 개발되어 그 동안 널리 사용되어 왔다. 고고학을 비롯해 법의학, 그리고 토양이나 생물체의 오염 정도나 독성(毒性)수준을 판단하는데도 필요한 분석법이다.

나폴레옹의 독살 의혹에 불을 붙인 것은 스웨덴의 치과의사이자 내과의사인 포르슈훗이었다. 그는 1961년 ‘누가 나폴레옹을 죽였는가?’라는 책을 저술하여 나폴레옹은 독살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진= Wikipedia]

그러나 비소 독살에 반대하는 주장도 많아

한편 나폴레옹의 죽음이 비소 독살로 완전히 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 겨우 몇 개의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제한적인 실험 결과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당시에는 비소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중독은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내세워 반론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비소가 나폴레옹의 커튼이나 벽지를 염색했던 염료를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점 등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비소 중독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보다 30배나 더 많은 비소중독을 우연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비소 중독에 반발하는 다른 하나의 학설이 있다. 나폴레옹이 간염, 즉 아메바성 간농양의 파열로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간의 질병을 모두 간염이라고 불렀다.

나폴레옹 주치의의 아들로 자신도 외과의사인 래리는 1892년 나폴레옹의 위궤양은 간농양의 합병증으로 생긴 것 같다는 아버지의 주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러나 일부 의학전문가들은 위궤양이나 암환자들은 밥맛을 잃어 보통 야위는데 반해 나폴레옹은 말년까지 뚱뚱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위 질환을 앓다가 사망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2002년 10월 프랑스 파리 경찰독성연구소는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되기 전인 1805년과 1814년의 나폴레옹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비소가 정상치의 5∼33배나 검출됐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는 나폴레옹이 유배되기 전에도 여러 번 비소에 중독됐다는 것을 뜻하며 비소 중독설에 반박하는 내용이다.

연구 책임자 이반 리코르델은 “만약 나폴레옹이 비소 때문에 숨졌다면 적어도 세 번은 숨졌을 것”이라며 비소 중독설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언제, 왜 비소에 이렇게 심하게 중독됐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가 비소가 들어있는 녹색 벽지, 탄약통, 발모제 때문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나폴레옹의 주검은 현재 파리에 매장돼 있다. 정부 당국은 그의 사인을 둘러싼 의혹을 풀기 위해 주검을 해부하자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을 세계적인 영웅으로 우러러보는 국민들의 관심사도 무시할 수 없다. 자칫 영불 간 국민적 감정 싸움이 재현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문의 죽음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 것은 방사선

비상(砒霜)이라고 불리는 삼산화 비소(As2O3)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래 전부터 사람을 독살하는데 사용되어왔다. 최근까지도 농약, 제초제 및 살충제, 그리고 쥐나 두더지 등 설치류를 죽이는 살서제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보다 안전한 물질로 대체되고 있다.

나폴레옹의 죽음을 둘러싼 역사적인 기록은 충분히 왜곡 가능성이 많다. 나폴레옹은 싸움에서 진 패장(敗將)이었고, 프랑스 역시 패전국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독살설을 반박하는 주장 역시 무성한 추측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사선 기술이 그가 충분히 죽음에 이를 정도로 비소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천하 영웅인 그의 죽음에 대해 과학적 증거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비소 중독설이 여전히 탄력을 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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