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

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

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

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

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청송 대전리 시무나무는 나실마을 어귀에 형성된 마을숲에 자리하는 나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마을 어귀의 도로 양편으로 시무나무가 즐비한 마을 숲이 아름다운 청송 나실마을은 주위의 산이 마치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했다고 해서 예전에는 나래실이라고 부르다가 나실로 바뀌었다.

또 약 400년 전에 청송심씨(靑松沈氏)의 선조가 마을을 개척할 때 산 좋고 물 맑은 비단결 같은 골짜기라 해서 나곡(羅谷)이라 했다가 난실로 바뀌었다는 설도 함께 전한다.

대전리 나실마을에 보금자리를 일군 청송심씨의 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위위시승(文林郞衛尉寺丞)을 역임하였다.

그 뒤 4세손인 심덕부(沈德符:1328~1401)는 고려 말 정치제도의 개혁과 왜구 토벌에 업적을 남겼다.

조선 개국 후에는 신왕조 건설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1394년에는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가 되어, 한양의 궁실과 종묘를 영건(營建)하는 일을 총괄하여 한양 건설에 큰 공헌을 하였다.

그 후 청송심씨 가문은 세 명의 왕후와 네 명의 부마를 배출한 조선의 명문가가 되었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나실 마을을 일으킨 인물은 고려 말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으며,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킨 심원부(沈元符)의 7세손, 심정(沈汀:1568~1592)이라고 한다.

심정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신립(申砬)장군 휘하에서 탄금대 전투에 임해 많은 적을 섬멸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이때 장군의 나이가 25세였다.

이런 사연을 가지고 있는 청송심씨의 세거지인 나실마을은 능선으로 둘러싸인, 사발처럼 오목한 분지이다.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사진=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청송 대전리 시무나무숲은 보호수로 지정한 시무나무를 포함해 느티나무 굴참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아름답게 어우러졌다.

마을 입구 도로 양편의 개울가에 형성된 이 숲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나무는 두 그루라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 이 숲에서 자라는 20여 그루의 시무나무는 대략 나무의 나이에서부터 규모까지 엇비슷하다.

숲의 시무나무들은 모두 100년을 살짝 넘겼고, 나무 높이는 13~16m쯤 되며, 둘레는 1.5~2.5m쯤 된다.

보호수로 지정한 다른 나무와 비교하면 나이에서 어린 축에 속한다.

그러나 시무나무는 느릅나뭇과 시무나무 속에 속하는 보기 드문 나무에 속한다.

습지에서 잘 자라며 세계적으로는 1속 1종만 있는 희귀한 나무이며 또한 숲을 이루기에 보호수로 지정해서 보호할 가치는 매우 높다.

이 마을숲에는 보호수로 지정한 시무나무가 한 그루 더 있고(보호수 지정 번호 13-13-08), 마을 입구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시무나무보다 규모가 크고 오래된 당산목 느티나무도 있다(보호수 지정 번호 11-15-3-1).  

현대에는 나무가 마을의 상징이거나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전통 사회에서는 나무가 도로 표지판이나 이정표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의 마을 길에서 이정표 역할을 한 나무가 바로 오리나무와 시무나무였다.

오리나무는 십리의 절반인 5리(2km)마다 심었고, 5리가 4번이 되면 스무나무를 심었다.

스무나무는 물론 지금의 ‘시무나무’를 가리킨다. 한자로 ‘이십리목(二十里木)’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보러 먼 길을 떠나는 선비나 보부상들에게 오리나무와 시무나무는 요긴한 이정표였다.

옛길이 거의 사라지면서 길가에 심었던 시무나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오래된 시무나무는 더 그렇다.

심지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시무나무는 제476호인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주남리 주사골의 시무나무가 유일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시무나무 가운데에도 200년 넘은 시무나무는 고작 예닐곱 그루밖에 없다.

대다수가 문맹이었을 조선 시대에 나무를 표지로 한 길 안내는 매우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조선 시대 일반 농민들은 글자를 모르는 대신 특정한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그 용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를 하러 다니는 게 일과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런 사회에서 시무나무는 지금의 도로 표지판 구실을 훌륭하게 수행했을 것이다.

청송 대전리 나실마을 어귀의 시무나무 숲은 워낙 흔치 않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일 뿐 아니라, 마을에서 100년 넘게 잘 보호하며 지켜온 숲이어서, 앞으로도 마을의 상징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청송 대전리 시무나무>

·보호수 지정 번호 13-13-07
·보호수 지정 일자 2013. 10. 13.
·나무 종류 시무나무
·나이 100년
·나무 높이 16m
·둘레 2m
·소재지 청송군 부남면 대전리 산 109-13
·위도 36.332616, 경도 129.070459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