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25)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자연이라는 약육강식의 세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자리하고 있다. 오직 강자만이 살아남아 번식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세력균형이라는 질서와 조화의 시스템이 함께 한다.

물리고 물리는 시스템 속에서 강자도 약자도 같이 사는 교묘한 질서를 유지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생태계라고 부르는 세력균형의 틀이고 시스템이다.

이러한 질서가 파괴되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외부의 종이 느닷없이 이 생태계에 침입했을 때다. 이 새로운 외부의 적(敵)에 대비를 못한 생태계는 깨지고 만다. 생태계의 교란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외래종, 또는 외래침입종(invasion species)에 의한 생태계 파괴 현장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별다른 생각 없이 외국에서 들여온 동물이나 식물이 새로운 서식지에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다른 종을 잡아먹고 주인 노릇을 하면서 조용했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많은 외래종 가운데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어종(魚種)은 블루길(bluegill)이다. 본토인 미국에서 관상용, 스포츠 낚시용, 그리고 몸집이 커서 식용으로 도입한 이 외래종은 천적이 없는 새로운 서식지에서 환경을 파괴하는 대표적인 종으로 꼽힌다.

특히 이종은 아메리카 대륙과 멀리 떨어지고 생소한 아시아 지역에서 생태계 교란의 주범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태계 파괴 1호 어종이며 이웃 강과 호수가 많은 일본과 중국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어종이다.

아키히토 왕세자 시카고에서 받은 선물 블루길 

지난 13일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당시 아키히토 왕세자가 호기심에서 스포츠 낚시 목적으로 일본에 처음 도입한 블루길에 얽힌 스토리를 바탕으로 이 어종의 파괴 현장을 고발하면서 인간의 자연 생태계 개입을 경고했다.

이 매체는 “일본을 잡아먹은 왕세자, 시장, 그리고 미국의 물고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1960년 시카고 시장이 아키히토 왕세자에게 준 순진한 선물이 60년 동안 일본의 생태계를 위협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키히토 왕세자가 블루길을 일본에 도입한 것은 1960년의 일이다. 그해 10월 3일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그가 유일하게 요청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실내 수족관인 셰드 아쿠아리움(Shedd Aquarium)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당시 열렬한 낚시꾼이었던 리처드 J. 데일리(Richard J. Daley) 시장은 왕세자에게 수조에서 직접 건져 올린 블루길 18마리를 선물했다. 이 물고기는 일리노이 주를 대표하는 주어(州魚)다.

당시 26세의 아키히토 왕세자는 열정적인 어류학자로 그는 궁전을 둘러싸고 있는 연못에 이 이국적인 물고기를 넣어 키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의 아름답고 순진한 꿈이 향후 수십 년 동안 생태적 위기를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선물을 들고 시카고와 작별을 고했다.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이 블루길은 일본의 민물 호수와 강에 몰려들어 토종 어류의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악몽이 되고 말았다.

미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아키히토는 15마리 블루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왕세자 물고기(prince fish)'라는 이름을 붙이고 낚시 게임 물고기(game fish)로 야생에 풀어줄 것을 일본 수산청에 요청했다.

아키히토의 신분을 따 이름을 ‘왕세자 물고기’로, 기념비도 세워

1966년에는 시즈오카현 이토시 외곽의 이페키(一壁) 호수에 블루길의 새끼를 기르기도 했다. 다시3년 후에는 이 ‘왕세자 물고기’의 성공적인 도입을 축하하기 위해 해안가에 비석을 세웠다. 이후 일본 전역의 담수 생태계에 더 많은 블루길들이 방류되었다.

1989년부터 일본 시가현에서 북아메리카 침입 어종들을 연구해온 비와호 박물관(Lake Biwa Museum, 琵琶湖博物館)의 연구원들은 이 외래종에 대해 그동안 경미하게 취급했던 과거를 이렇게 토로했다.

"당시 우리는 침입 어종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블루길의 먹이 습관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다른 어종을 잡아먹는 맹수성 어종이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 동안 이 물고기는 야생에서 눈에 띄지 않게 번성했다. 일본의 강, 호수, 그리고 하천에서 개체수가 크게 늘었으며 곤충, 플랑크톤, 수생식물을 넘어 새우를 비롯해 토종 물고기 알까지 먹는 등 식생활을 확대했다.

1999년이 되자 블루길은 일본의 모든 담수 생태계를 식민지로 삼아 우세종으로 등장하자 일본 정부는 블루길의 확산 방지 대책에 나섰으나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지금까지 블루길은 전국의 중요한 토착종들에 심각한 위협을 가했다. 블루길은 일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담수호인 비와 호수의 특유의 발효 별미인 후나즈시(funazushi)로 사랑받는 크루시안 잉어(Crucian carp) 개체수를 멸종시켰다.

이쯤 되자 시가현 정부는 어민들에게 블루길을 사냥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kg당 3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또한 게임 낚시를 위해 블루길과 배스(bass)를 다시 입고할 경우 1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또한 사람들에게 이 생선을 먹도록 장려하기 위해 블루길의 요리법을 홍보하는 웹사이트도 만들었다. 현지의 한 해산물 가공업체는 블루길 초밥과 후나즈시 블루길 요리를 개발해 판매하기도 했다.

일부 연구팀은 블루길과 그 알을 포획하기 위해 새로운 종류의 덫을 고안하기도 했다. 2002년 일본 환경성은 블루길을 “침입적인 위협 어류”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블루길은 비단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에서도 생태계를 위협하는 어래종이다. 강과 호수에 서식하면서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어종이다. 

2005년 6월 일본의 ‘국가침입외래종법’에 따라 블루길을 포함한 97종의 수입, 보유, 운송이 금지됐다. 그로부터 2년 후 아키히토 일왕은 이 블루길을 일본에 소개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일본 영자신문 재펀타임즈(Japan Times)는 이를 두고 "희귀한 회개의 표현(a rare expression of contrition)"이라고 지적했다. 아키히토는 "이렇게 된 것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당국은 그동안 많은 방법을 동원했으나 이 외래종을 퇴치하는데 실패했다. 그래서 이제 일본의 유전학자들은 외래종인 블루길을 불임하도록 만들어 멸종하기 위해 CRISPR라는 유전자편집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유전자편집 이용한 ‘불임 유전자’ 기술 개발, 그러나 환경보호단체 반대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야생동물 관리자들은 미국이 중국에서 도입한 골치 아픈 외래종 아시아 잉어(Asian carp)를 없애기 위해 개발한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어류 유전학자 히로유키 오카모토(Hiroyuki Okamoto) 박사가 주도하고 있는 연구는 유전자편집 도구를 이용해 불임 수컷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암컷을 불임시켜 난자 생산능력을 없애는 유전자 유도 억제(gene-induced suppression)에 초점을 맞춘 연구다. 이 유전자 불임 연구 프로그램은 6년째 진행돼 왔다.

그러나 이 방법이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정부의 연구 지원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의 반발도 많다. 이러한 유전자변형(GM) 블루길이 자연 생태계에 방류하는 것은 또다른 교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다음과 같이 꼬집으면서 글을 마무리했다.

“수십 년 동안 입증되었듯이 일본의 왕세자가 블루길을 기념품으로 고국으로 가져가든, 미국 농민이 중국 동부에서 아시아 잉어를 수입하든 간에 의도는 좋을 지 모르지만 인간이 환경에 개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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