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신고리 원전의 전력을 수송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여기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현재 가동 중인 6개의 원전(고리1,2,3,4호기와 신고리1,2호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기존의 34만 5천 볼트 3개 송전선로(고리-신울산, 고리-울주, 고리-신양산)를 통해 아무문제 없이 송전되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원전이 추가로 건설되더라도 예정대로 노후 원전을 폐쇄한다면 송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현재 수명을 연장하여 36년째 가동 중인 원전 고리 1호기만 폐쇄하더라도 송전선에는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따라서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신고리 3호기와 4호기를 가동할 경우에 밀양 송전탑이 필요한 지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검토를 거쳐야 한다. 또한 고리 2호, 3호 ,4호기의 경우에도 가동한 지 30여년이 경과하는 상황이므로 이 원전들의 안전성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밀양 송전탑 건설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기존 노선 증용량하고, 노후원전 폐쇄하면 밀양 구간 부분지중화할 수 있다
 
송전선이 꼭 필요하다고 전제하더라도, 지중화가 불가능한 76만 5천 볼트를 고집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한전 자체 자료상으로도 신고리 3호기와 4호기는 34만 5천 볼트 송전선으로도 송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고리의 낡은 원전들이 순차적으로 폐쇄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76만 5천 볼트 송전선은 필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더구나 밀양을 지나가는 신고리-북경남 송전선은 길이가 90킬로미터에 불과하다. 76만 5천 볼트로 90킬로미터를 간 전기는 곧바로 34만 5천 볼트로 낮춰지게 된다. 따라서 굳이 76만 5천 볼트 송전선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는 1천킬로미터 정도의 장거리 송전에 사용된다는 76만 5천 볼트 송전선을 불과 90킬로미터 송전을 위해 건설해야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그렇게 보면 34만 5천 볼트로 송전선을 건설하고, 밀양에서는 피해가 큰 구간에서만이라도 부분지중화를 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한전은 지중화 공사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신고리 3호기와 4호기의 가동시점이 불분명하고, 신고리 3호기와 4호기는 기존 송전선로의 용량을 증대하고 고리 1호기를 예정대로 폐쇄한다면 기존 선로를 통한 송전도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부분지중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34만 5천 볼트로 송전선을 건설하고 지중화를 할 경우에는 비용도 정부가 주장하는 2조 7천억원에서 1/6 수준인 3천9백억원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잘못 선정된 밀양구간 노선은 재조정해야 한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제기된 문제이지만, 밀양 구간의 노선선정 과정이 불투명하다. 부북면 평밭마을의 경우에는 주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노선을 선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주민들의 피해가 큰 노선으로 변경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은 노선선정과정에서 공사의 편의를 위해 산악지형보다는 임도가 건설되어 있는 민가 쪽으로 노선을 돌렸거나, 다른 정치적인 배경이 개입되었다는 의혹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설사 초고압 송전선이 필요하다고 해도 주민들의 피해가 가장 적은 쪽으로 노선을 정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밀양에서는 이런 상식조차 무너졌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공사 중단과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 한다
 
박근혜 정부에 묻고 싶다. 이런 수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밀양 송전탑 공사를 그대로 강행하려 하는가? 고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물리력으로 누르기 위해 3,000여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하는 일을 이번 겨울 내내 계속하려 하는가?
 
그래서 우리는 간곡하게 제안한다. 공사를 중단하고 주민들과 조건 없는 대화를 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대해 논의할 최소한의 냉각기간을 갖기를 제안한다. 그동안만이라도 공사를 중지하고 대화에 나서라. 할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쟁점들에 대해 정부가 충분히 납득할만한 설명을 해 주시를 바란다.
 
현재 정부는 공개 토론도 회피하고, 주민들이 요구하는 모든 대화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최소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지만, 지금 정부는 밀양 송전탑과 관련해서 그런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대화의 방식과 일정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열어두고 논의를 시작하자. 밀양의 산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경찰들과 부딪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른다.
 
주민들의 요구는 지금 당장 송전탑 백지화 선언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선 이토록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고 주민들이 생을 걸고 반대하고 있는 송전탑 공사 강행을 잠시 멈추고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과연 어떤 방식이 민주적이고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길인지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밀양 주민들이 인내하며 내건 요구와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답해야 할 차례다.

한숙영 (환경연합 미디어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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