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 바둑은 대국자가 바둑판의 공간과 시간적 제약 속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求道)의 과정이다. 일본에서는 바둑을 기도(棋道)라고 칭한다.

한편으로 바둑은 내기를 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노소동락(老少同樂)의 여가활동으로, 사고력 증진, 향상심(向上心)과 난국타개 등 긍정적 기능을 수행한다. 기성(棋聖) 오청원은 ‘바둑은 조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바둑이 전쟁이나 싸움이 아닌 함께 명국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조화라고 할 수 있지만, 바둑의 지향점인 두터움과 실리의 조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정치인 DJ가 생전에 강조한 그의 정치철학인 서생적 문제의식(두터움, 이념)과 상인적 현실감각(실리, 실용성)의 조화로도 파악할 수 있다.

바둑을 영어로 고(Go)라고 한다. 이세돌과 세기의 대결을 펼쳐 인공지능(AI)의 시대를 연 알파고는 알파(Alpha)와 고(Go)의 합성어이다. 바둑을 손으로 나누는 대화라는 의미에서 수담(手談)이라고도 한다. 그 밖에 좌은(坐隱), 위기(圍碁), 오로(烏鷺), 난가(爛柯), 망우청락(忘憂淸樂) 등 다양한 별칭이 있다.

두 사람의 대국자가 반상(盤床)에서 펼치는 한 집이라도 더 큰 영토확보를 위한 쌍방향적 두뇌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바둑에서는 반집이라도 누가 더 많은 집을 확보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엇갈린다. 그래서 부분적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나중에 전체적으로 집수가 적으면 대국에서 지게 되므로 형세판단이 중요하다.

오는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야간에 과반수의 확보를 둘러싼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를 위해 경쟁력이 있는 입후보자를 정하는 공천절차가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전국적으로 공천을 둘러싼 파열음과 경선 불복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시스템 공천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가사회에 기여할 역량 있는 새로운 입후보자를 정하는 공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 비판과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야 정치권은 선거가 한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공천과정의 갈등과 불만을 해소하고 봉합하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 되고 있다.

정치의 영역이건 바둑의 세계이건 어려움에 직면하였을 때 고수는 최선의 수를 찾지만, 하수는 어려운 국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십상이다. 배우 안성기가 조연으로 출연한 ‘신의 한수’라는 영화에서 “고수에게는 인생이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인생이 생지옥이다” 라는 명대사가 나온다. 고수는 삶의 다양한 어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 놀이를 하듯이 해법을 쉽게 찾는 반면에 하수는 어려움에 봉착하여 갈피를 못잡고 쩔쩔매게 된다는 의미이다.

바둑과 정치는 변화무상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포석이 좋으면 바둑을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선거는 입후보자의 역량만에 의하여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과 정책과 정당에 대한 국민적 신뢰 내지 지지가 더해야 한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은 포석에 해당할 수 있다. 경쟁력이 있는 후보의 공천을 잘 한 정당이 우세할 가능성이 높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 힘든 과정을 거친 정치인은 일견 포석이 나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초반 인생에 해당하는 포석이 나쁘더라도 얼마든지 중반전과 마무리 단계인 끝내기를 잘하여 승부를 뒤집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처럼 한판의 바둑 속에 승패의 희비가 있고, 화국(和局)의 묘미도 있다. 바둑에서 처럼 정치에서도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성이 중요하므로 정치인은 이념에만 집착하지 말고 깊은 수읽기를 토대로 변화하는 상황에 맞춰 실용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국민의 정치불신을 초래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극한대립은 꼼수와 저급한 수를 두고 있는 바둑의 대국을 관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치인은 승부를 떠나 바둑의 프로기사처럼 품격 있는 태도와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바둑으로부터 정치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 첫째로, 평점심과 부동심을 유지하는 것이다. 부분적 전투에서 이기더라도 대국 전체로 볼 때 지게 될 경우 승부에서 패하게 되므로 정치인은 선거의 특정 이슈에 있어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규칙위반, 패착이나 악수를 경계하여야 한다. 바둑이나 정치는 자신이 잘 두어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실수와 패착에 편승하여 이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둑이나 정치 모두 초·중반에 형세가 좋다고 방심하다 보면 역전드라마가 펼쳐지기도 한다

둘째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는 선거 초반에 열세이더라도 반칙을 범하지 않고 장기적인 전략적 사고를 하면 좋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 바둑에서는 당장의 수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착수를 하듯이 전체 국민과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성이 있는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단기적인 응급처방이나 국지적 정책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바둑에서처럼 정치의 영역에서도 한수 한수에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전략적 구도와 설정한 수순에 따라 국민에게 다가가는 실현가능성이 높은 좋은 정책을 제시하여 상대 진영에 대한 비교 우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사석작전과 부득탐승의 자세이다. 바둑이나 정치에서 작은 양보로 더 큰 이익을 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 살을 내주고 뼈를 자른다는 의미로 육참골단(肉斬骨斷)으로 거칠게 표현하기 보다, 바둑의 점잖은 표현인 사석작전(捨石作戰)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정치에 있어서 요석이 아닌 폐석에 대하여 과감히 버리고 다른 큰 곳을 차지하는 전략을 바둑에서 배울 수 있다. 바둑의 십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첫 번째가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이는 바둑에서 승리를 탐하면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선거에서 더 많은 의석 수를 차지하려고 과욕을 부리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김용섭 전북대 로스쿨 교수(변호사)

끝으로, 바둑에서 프로기사는 바둑판 위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는 서로 상대방의 다른 관점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거에서 상대진영의 흑색선전 등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선거전략보다 당락을 떠나 좋은 정책을 가지고 대결하는 성숙한 정치지형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정치도 바둑도 상대방이 있고 이를 지켜 보는 관전자가 있다. 정치인의 행보는 바둑의 프로기사가 상대방을 존중하듯이 무리수를 두지 않고 최적의 수를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입후보자들은 공정한 선거운동을 펼쳐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入城)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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