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한국시간) 소치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고 17일간의 열전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소치만큼 테러가 가장 큰 이슈가 된 올림픽도 없을 것이다.
 
24살이던 필자는 91년 돌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생각으로 아직도 공산주의 체제였던 구소련(USSR)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구소련은 체제전환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최악의 경제여건이었다. 당연히 범죄는 만연했고 치안도 불안하여 늘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범죄를 당하지 않기 위해 대중교통 이용 시 “항상 가장 늦게 타고 가장 늦게 내리는” 식으로 혹시 있을 미행자를 따돌렸다. 이후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범죄에 노출되는 확률이 낮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주위의 한국 유학생들은 수없이 크고 작은 범죄를 당했고, 필자의 지인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살해되었다.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러시아 스킨헤드가 공공장소에서 유색인종을 무차별 테러하는 일은 흔한 현상이었다. 스킨헤드 외에도 한국 사람들을 무섭게 했던 것은 동네 꼬마들이었다. 중학생 정도의 꼬마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한 번은 러시아 치과병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응급실에 실려온 여자환자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너무 많이 맞아 얼굴 형체도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결심했다, 러시아인과는 절대로 싸우지 않겠다고. 실제로 아무리 화나도 러시아인과 주먹다짐을 하지 않았다. 카투사 복무 때 미군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던 필자는 10년 내내 얌전한 고양이처럼 조용히 러시아 유학을 마쳤다. 러시아인은 미국인의 건장한 체격에 끝장을 보는 근성도 갖추고 있어 웬만하면 싸워서 이기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리랑치기의 경우 몰래 지갑을 훔치고 도망을 간다. 하지만 러시아 아리랑치기는 ‘급’이 다르다. 일단 죽지 않을 만큼 때린 다음 지갑을 뺏는다. “러시아인은 누구든지 ‘한 방’이 있어 예방적 차원에서 죽지 않을 만큼만 때리는 것”이란 필자만의 추측이다.
 
모스크바 시내에서 정말 희한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외제차와 연결된 트레일러에 구소련 국민자동차인 지굴리(Жигули)가 받치는 접촉사고가 났다. 외제차 운전자는 이를 알지 못해 계속 주행을 하니 지굴리 운전자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의 차로 외제차 운전석 문을 세게 박고 냅다 도망쳤다. 외제차 운전자는 영문도 모른 채 사고를 당해 문을 열고 나오려 했으나 문이 찌그러져 나오지도 못하는 황당한 상황에 놓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가용 운전자는 아무리 오래된 중고차라 할지라도 자신의 애마를 애지중지 사랑하고 아낀다. 하지만 지굴리 운전자는 충돌 시 상대 외제차가 입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해 일부러 사고를 낸 것이다.

이게 러시아다!(에따 러시아)
 
이 사고는 러시아와 이슬람 반군과의 끓임없는 전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60억분의 1 사나이 러시아의 예멜리야넨코 표드르만 보더라도 러시아인이 얼마나 싸움을 잘하고 근성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러시아인이 싸우면 처참하게 지는 민족이 있다. 바로 카프카스 출신 마피아들이다. 카프카스에 모여 사는 80여 민족들이 사실상 러시아 마피아를 장악했다. 그중에서도 체첸 민족의 용맹성과 잔인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흔히 체첸 남자는 모두 ‘일당백의 전사(戰士)’라고 불린다.
 
1995년 10월 14일 모스크바 크렘린 붉은 광장 인근에서 현대전자 연수단이 버스 안에서 인질로 잡힌 적이 있었다. 범인은 권총을 쏘며 저항하다 러시아 특수부대요원들에게 사살되었고, 다행히 인질 29명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같이 인질로 잡혔던 통역은 사건 후일담을 이렇게 들려주었다.
 
“아몽(OMON, 러시아 내무성 특수부대) 진짜 무식하더라, 경고사격이고 뭐고 없고 그냥 난사하는데 다들 죽는 줄 알았다.”
 
러시아 당국은 체첸 분리주의 세력 및 테러리스트와는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기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대규모 인질극에서도 모두 특수부대 요원들을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진압하며 인질의 희생도 감수한다.
 
2002년 10월 모스크바 문화회관에서 체첸 반군이 700여명의 인질을 잡고 경찰과 대치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으로 인질 129명을 희생시켰다.
 
2004년 9월에는 러시아군이 북오세티야공화국 베슬란학교에서 체첸 반군에 인질로 잡힌 1000여명을 구출하기 위해 무리한 진압을 하다 인질 334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작년 12월 소치에서 불과 690km 떨어진 볼고그라드에서 이틀 새 30여명이 목숨을 잃은 테러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러시아 당국에 의하면 2013년 한 해 코카서스 지역에서 사살된 이슬람 테러리스트는 총 260명에 달하며 미수에 그친 테러 시도는 총74차례나 된다.
 
이슬람 반군은 테러의 목표를 모스크바에서 소치로 변경하고, 소치동계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의 최고 이슬람 반군 지도자 도쿠 우마로프는 지난해 7월 추종자에게 ‘모든 수단을 동원해’ 올림픽을 저지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지난 1월 4일 국제테러조직 ‘알카이다’ 깃발을 배경 삼아 “소치 올림픽을 테러한다”고 주장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다.
 
러시아는 테러를 저지하기 위해 소치에 야전부대를 배치하고 6만 명의 안전 요원을 배치하였다. 푸틴 대통령은 올림픽 안전을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며 테러 공격에 경계를 대폭 강화하고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도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 문화공연단, 정부대표단 500여명의 안전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리 철저하게 테러 대비책을 세워도 올림픽 기간 중에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개연성이 상당히 존재한다. 지난 5일 美 뉴욕타임스(NYT)는 소치동계올림픽이 “사상 처음으로 분쟁지역의 언저리에서 열린다”며 테러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러시아를 향한 이슬람 반군들의 분노는 조금도 줄어들고 있지 않고 있다. 더욱이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은 이슬람 반군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그래서 이번 소치동계올림픽이 더욱 위험한 것이다. 외제차(러시아)를 들이 받는 지굴리(반군) 운전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네 손해가 나보다 훨씬 크다”
 
소치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우리 국민은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낯선 사람의 호의에 현혹되지 말고 어두워지면 유흥을 즐기지 말고 숙소로 돌아와야 한다.
 

 
러시아에서 10년간 유학한 필자의 테러에 대한 근심걱정이 기우에 불과했으면 좋겠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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