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왕 김연아가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올림픽 2연패를 하며 피겨의 전설로 남을 것인가? 일본의 아사다 마오나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김연아의 라이벌로 호칭되는 것이 영광일 정도로 사실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김연아 금메달 획득의 유일한 적(敵)은 우스꽝스럽지만 소치올림픽의 사륜기가 될 전망이다. 사륜기로 풍자되는 현재 러시아 국가의 불안정성이 김연아를 위협하는 유일한 변수라고 말할 수 있다.
 
약 500억 달러를 쏟아부은 ‘역사상 가장 비싼’ 2014소치동계올림픽은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정작 올림픽 경기보다는 개막식 사륜기 사고를 풍자한 티셔츠, 쌍둥이 변기, 뚜껑이 잘 못 달린 변기 등 제대로 준비 안 된 올림픽 관련뉴스가 더 외신을 타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물론 국민도 볼멘소리를 한다. “왜 러시아만 가지고 그러냐?”며 소치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방해한다고 외신기자들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들도 우리나라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절실한데 서방언론에 편승하여 러시아를 음해하는 기사들을 내 보내서는 안 된다고 항변한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는 유라시아 국가이다. 러시아는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러시야닌(Россиянин)’이라는 독특한 러시아 정체성을 강조한다. 즉, 러시아는 다른 나라, 특히 유럽과 미국과는 다른 독특한 민족성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는 무려 240년간(1240년 ~ 1480년) 몽골의 지배를 받아 침략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으며, 자신들이 아시아와 유럽에 둘러 쌓여 있어 영토의 독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는 급격히 늙어가고 있다. 결혼율과 출산율이 급격하게 낮아져 2050년에는 러시아인의 인구가 50%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반면 극동지역에서는 중국인구가 늘어나 러시아 인구를 추월하고 중부지역에서는 이슬람 인구가 러시아인 보다 많아질 전망이다. 이래저래 ‘러시야닌(Россиянин)’ 정체성을 지키고자하는 러시아의 노력이 점점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외부세력에 대해 상당한 경계심과 어느 정도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1991년 봄 갑자기 소연방(USSR)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겠다는 심정으로 모스크바 유학을 결정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초강대국이었고, 가장 넓은 영토에 풍부한 지하자원과 기초과학과 우주항공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다. 1991년은 중국이 사실상 소련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하지만 2013년 중국 명목 GDP는 세계 2위 8조 9,393억 달러이고, 러시아는 8위 2조 1,178억에 불과하다). 유학한 10년 동안(1991~2001) 국가명이 소련에서 러시아연방으로, 국가지도자는 고르바초프에서 옐친을 거쳐 푸틴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도 러시아 사람이나 한국인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러시아 참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바뀌었냐고 물어보면 1.모스크바가 많이 발전했다 2.생활이 윤택해졌다 3.사람들이 친절해졌다 등의 답변을 한다. 특히 공무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도 많이 바뀌어 친절해졌고, 공항의 출입국 절차도 대폭 간소화되었다는 자랑을 한다.
 
하지만 지난 10일 미국 UPI 통신사가 전한 뉴스는 러시아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콘랜던 네덜란드항공의 아틸라이 우슬루 사장이 러시아 소치에서 블리디미르 푸틴 대통령 별장에서 노상방뇨를 하다가 군인들에게 1시간동안 문초를 당했다고 전했다. 필자가 실소를 한 것은 우슬루 사장이 풀려난 뒤 지갑을 확인하니 미화 1364달러가 없어진 사실 때문이었다. 에따 러시아!(이게 러시아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외국인과 같이 필자도 항상 지갑에 미화 5불짜리를 2~3개씩 보관하고 다녔다.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교통경찰이나 경찰의 불심검문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새벽에 조깅 갈 때에도 여권과 비자를 챙겨나갔다. 경찰이 외국인 거주지역에 몰래 숨어 있다가 추리닝 차림의 외국인을 불심검문해서 돈을 뜯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러시아의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우리 김연아의 금메달 획득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2010벤쿠버동계올림픽에서 금 3개, 은 5개, 동 7개로 세계 11위를 차지했다.(한국 5위, 금 6개, 은 6개, 동 2개) 하지만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는 홈그라운드의 이점과 편파판정 논란 속에 러시아는 놀랍게도 현재 세계 4위(18일: 금 5개, 은 8개, 동 6개)를 달리고 있다.
 
올림픽 개최가 국가에게 가지는 의미 차원에서 본다면 소치올림픽은 1988서울올림픽과 매우 닮아있다. 당시 대한민국은 금 12개, 은 10개, 동 11개로 소련·동독·미국에 이어 종합 4위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1984LA올림픽에서는 종합 10위에 불과했다.(금 6개, 은 6개, 동 7개) 홈그라운드 이점과 편파판정 논란 속에 무려 2배의 금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1988년 권위주의 노태우 정부는 올림픽의 성과를 통해 국민대통합을 추구했고, 2014년 푸틴 정부도 올림픽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구소련의 영광을 재건하고자 한다.
 
70년간의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했던 러시아는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소련에서 자유 러시아연방으로 체제전환한 지 아직 2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러시아 비정상의 정상화까지는 약 70년(공산주의 체제기간) 정도가 소요된다는 주장이 있다. 러시아가 보통국가 혹은 선진국으로 전환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소치올림픽의 사륜기, 변기, 편파 판정, 군인 절도 등은 디테일적 요소이다. 러시아는 작은 실수라고 항변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국가와 국민 의식수준을 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이다. 
 

 
동계올림픽의 여신 김연아의 적은 김연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륜기(비정상, 편파판정)가 가장 큰 적으로 떠올랐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담대한 김연아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훌륭하게 치룰 것이다. 설사 러시아 텃세와 편파판정에 의해 김연아가 금메달을 빼앗기더라도 세계는 김연아를 진정한 ‘피겨 여왕’이라고 칭송할 것이다.

한승범 맥신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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