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평가를 하려고 변호사업을 접은 사람 이야기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삶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모든 잔을 마셔봐라. 

모든 와인을 맛봐야만 한다. 몇몇은 단지 맛만 봐야 하지만 다른 것들은 병째 마셔야만 한다.

Accept what life offers you and try to drink from every cup. All wines should be tasted; some should only be sipped, but with others, drink the whole bottle.”

- 파울로 쿠엘류(Paulo Coelho:1947~, 브라질의 소설가, 시인)

다음 인물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휴 존슨(Hugh Johnson, 1939~), 오즈 클락(Oz Clarke(=Robert Owen Clarke), 1949~), 

마이클 브로드벤트(John Michael Broadbent, 1927~2020), 잰시스 로빈슨(Jancis Robinson, 1950~), 안토니오 갤로니(Antonio Galloni), 팀 아트킨(Tim Atkin), 기아 페닌(Guia Penin), 제임스 할러데이(James Halliday, 1938~),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1947~), 제임스 써클링(James Suckling, 1958~). . 

와인 애호가라면 아마 적어도 마지막 두 사람 혹은 그외 서너명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 와인업계에서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 세계 와인 가격을 좌지우지하고 판매량을 결정할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영향력 있는 와인 평가자들 중에 변호사가 되었다가 와인 평론가로 변신한 인물이 있다.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로버트 파커는 1947년생으로 최초로 100점 만점의 와인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여 와인의 맛과 향 등 와인 품질에 대한 평가를 소비자들이 보다 쉽게 인식하도록 했고 와인 전문 잡지인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을 1978년 창간하여 운영해오고 있는 평론가다.

그는 2006년 와인 애드버킷의 와인 평가자들을 대거 영입해서 전세계 주요 와인 생산지역의 와인들을 평가하게 하고 있고 2012년부터는 본인은 일선에서 물러나서 주로 후견인 역할을 하며 자신의 와인 평가는 점차 줄여오고 있기도 하다. 

박수칠 때 물러나는 지혜로움까지 겸비했다고나 할까?

그는 학부에서는 주전공으로 역사를, 부전공으로 예술사를 공부하였고 1973년 법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1978년 격월간 와인 잡지인 와인 애드버킷을 창간했다.

처음에는 격월로 서신형태로 구독자들에게 보내는 방식이었다가 월간 잡지 형태로 바꾸었다. 

그의 와인 입문기는 의외다.

대학생 시절 여자친구가 알자스 지방으로 유학을 갔는데 방학 때 여기에 놀러 갔다가 와인에 반하게 되어 대학과 대학원시절 와인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 미국에 불기 시작한 소비자권익 보호 운동의 영향을 받아 당시 유럽의 유명 평론가들이 그들이 평가하는 와이너리들의 사외이사란 것을 알게 되었고 와인 잡지들도 와인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보고 그러면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광고 없이 구독료만으로 운영하는 와인 평가지를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법전공자답게 공정성에 정의감을 불태우며 취미를 사회운동과 사업에 접목한 것이다.

처음부터 잘 되었을까?

모든 창업은 초창기에 소위 캐즘(Chasm)이라고 부르는 위기의 순간이 오고 그걸 넘어서야 그 다음 단계로 성장 발전하고 이것을 넘지 못하면 제대로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문을 닫아야 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당연히 그도 그런 어려움을 경험했다.

샤토 무통 로칠드 1982 100점 만점
샤토 무통 로칠드 1982 100점 만점

하지만 그는 운좋게도 이 캐즘을 극복할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다.

보르도 와인 1982년 빈티지를 두고 당시 유명 와인 평론가들과 그의 평가가 정반대로 엇갈린 것이다. 당시에 많은 유명 와인 평론가들은 1982년 빈티지를 그냥 평범한 빈티지라고 한 반면 그는 1961년 이래 최고의 세기적인 빈티지라고 평가하였고 결과적으로 그의 평가가 옳았다고 판정이 나면서 유료 구독자수가 급증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는 1984년부터 변호사업을 떠나 아예 와인평가업을 전업하게 되는데 이것은 격월간지를 발간하고 6년후의 일이다.

사실 이 때가 미국에서 와인 붐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의 평가가 옳다고 나중에라도 인정한 타임지나 다른 와인 잡지들의 평론가들도 참 멋진 사람들이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판정을 번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인 비노 베리타스(in vino veritas)' 즉 '와인속에 진실이 있다’는 말처럼 그들은 와인이라는 상품을 평가할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만으로 그가 유명하게 되었을까? 

사실 1982 보르도 빈티지가 세기의 빈티지라고 평가한 사람은 그 만이 아니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동안 유럽(영국)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20점 만점 기준의 와인 평가 시스템을 확 바꾸어서 100점 만점으로 하여 미국의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평가제도다.

 로버트 파커 100점 와인 엠샤푸티에 르 빠비옹
 로버트 파커 100점 와인 엠샤푸티에 르 빠비옹

그가 100점 만점의 와인 평가 시스템을 개발하기 이전에는 유럽의 평가 체계인 20점 만점 기준과 정성적 분석을 기술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럽 이외의 지역 특히 100점 만점에 익숙한 미국 사람들이 쉽게 그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가 100점 평가를 내놓자 와인 평가에 대한 이해가 보다 쉬워진 것이다. 미국의 와인 붐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된 셈이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그의 평가는 기본적으로 50점은 인정하고 들어가니 사실상은 50점 만점 기준인 셈이다.

그의 평가 시스템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70점 아래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니 마시지 말라는 의미다. 그리고 사실 그가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준 와인들은 잘 공개되지도 않는다.

· 96–100 – Extraordinary : 예외적인

· 90–95 – Outstanding : 아주 뛰어난

· 80–89 – Barely above average to very good : 평균 이상이거나 아주 좋은

· 70–79 – Average : 평균

· 60–69 – Below average : 평균 아래 

· 50–59 – Unacceptable : 수용 불가

그럼 그의 와인 평가는 칭찬만 들었을까?

유명하게 되면 항상 빛과 그림자 즉 칭찬과 비평 혹은 비난이 따르게 마련인 것이 인간사라는 것은 주지하는 바니 그도 비평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는 프랑스 중에서도 보르도와 론 지방 스타일의 와인에는 강하지만 부르고뉴 스타일의 와인에는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그의 취향이 오크향과 과일향이 풍부하여 강하고 진하고 복합적인 구조를 가진 스타일이면서도 균형미가 있는 와인이라고 사람들은 평한다. 그의 평가를 잘 받아야 판매가 용이하고 가격도 올려 받을 수 있다 보니 와인 생산자들이 그의 취향에 맞추려는 

경향이 생겨나기도 했으니 다양한 와인의 맛과 향의 세계여야 할 와인 시장이 세계적으로 유사한 맛과 향의 와인을 만들게 하여 동질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와인의 세계가 주는 다양성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이야기인데 굳이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그와 유사한 입맛을 가졌거나 그를 신봉하는 소비자의 시장 규모가 크다는 것과 이 시장 논리를 따라 가려고 하는 생산자들의 문제인 것이나 생산자들도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수요에 맞춰서 공급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

그의 코와 혀가 일백만 달러 보험에 가입되어있다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와인 평가업을 전업으로 하게 된 19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와인의 생산 스타일이 그의 영항력과는 상관없이 로버트 파커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변경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팩트다. 역으로 그가 시대를 잘 만난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에밀 페노 교수(출처 ; https://oenofile.co.uk/oenofile/peynaudhtml/) 
에밀 페노 교수(출처 ; https://oenofile.co.uk/oenofile/peynaudhtml/) 

이런 양조계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프랑스 보르도 대학의 에밀 페노(Émile Peynaud (1912 – 2004))라는 교수인데 그는 그 이전과는 달리 최대한 늦게 수확하여 과일의 풍미와 당도를 높이고 스테인레스 스틸통에서의 젖산 발효를 통해 타닌감을 부드럽게 하는 등의 새로운 기법을 주창하고 보급한 ‘현대 양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포도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최대한 수확기를 늦추라고 주장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수확기의 비로 인한 낙과와 당도 하락 등의 피해를 줄이고 산도가 높으면 와인의 장기 보관이 가능한 데다가 음식과의 궁합에서 산도가 중요하기에 포도가 완숙 단계에 이르기 전에 수확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는 로버트 파커는 그 새로운 양조 흐름과 미국 와인 붐이 일기 시작한 시기에 전통적인 유럽인들의 입맛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입맛에 맞추어 와인평가를 시작한 운 좋은 사람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와인 시장도 당시만 해도 초보자들의 시장이라고 볼 수 있었으니 초보자들에게는 과일향과 꽃향이 풍부하고 약간은 달콤한 감미로움이 있는 와인이 신맛이 강한 와인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그의 성공은 행운에 본인의 소신과 철학이 맞아 떨어진 케이스다.

그에게는 소비자 입장에서 엄정하게 광고 없이 구독자만으로 운영되는 객관적인 평가를 하는 잡지를 만들면 그것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알아줄 것이라는 철학과 믿음이 있었다.

여기에 100점 만점 기준의 소비자가 이해하기 편한 점수제도를 만들어 도입했던 것이고

그가 잡지를 창간하고 얼마 되지 않아 때마침 보르도 특급와인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가 나오는 시기까지 도래해서 이것이 그가 유명해지는 계기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사실 세기의 빈티지는 유럽에서 최소 이삼십년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기후조건이기에 대운이 따른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때가 시기적으로 미국에 와인 붐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시점이었다는 행운까지 따른 것이다.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운칠기삼을 너머 운칠복삼의 사나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소위 천지인(天地人)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라고도 볼 수 있으나 그의 공정성에 대한 정의로움과 100점 만점제 아이디어, 그리고 타고난 절대 미각이 없었다면 그런 기회가 와도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행운은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적용되기도 한다고 하겠다.

그가 만점을 준 와인들이 최근으로 올수록 미국 와인이 많아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컬트 와인 생산자들이 지속적으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고로 그가 100점을 준 와인리스트 일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Hundred Acre Fortification Port 2005, 2007, 2008

2) Hundred Acre ‘Precious’ Cabernet Sauvignon 2005, 2008

3) Hundred Acre ‘Few and Far Between’ Cabernet Sauvignon 2010, 2012, 2013, 2015, 2016, 2018

4) Hundred Acre ‘Morgan’s Way’ Cabernet Sauvignon 2002, 2005, 2007, 2013, 2015, 2018

5) Hundred Acre ‘Ark Vineyard’ Cabernet Sauvignon 2005, 2007, 2012, 2013, 2015

6) Hundred Acre 'Wraith'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USA 2013, 2014, 2015, 2016, 2018

7) M. Chapoutier Ermitage ‘Vin de Paille’ 2010

8) M. Chapoutier Ermitage ‘Les Greffieux Rouge’ 2006

9) M. Chapoutier Ermitage ‘L’Ermite Blanc’ 1999,2000,2003, 2004,2006,2007,2009~2014 (5년연속)

10) M. Chapoutier Ermitage ‘Le Meal Blanc’ 1997, 2010, 2013, 2015

11) M. Chapoutier Ermitage ‘Le Meal’ 2009, 2017

12) M. Chapoutier Ermitage ‘de L’Oree Blanc’ 1997, 2000, 2009, 2010, 2013

13) M. Chapoutier Cote Rotie ‘La Mordoree’ 1991

14) M. Chapoutier Ermitage ‘L’Ermite’ 1996, 2001, 2003, 2010, 2012, 2015, 2017, 2018, 2019

15) M. Chapoutier Ermitage Le Pavillon 1989, 1990, 1993, 1995, 2003, 2005, 2009, 2010, 2011, 2012

16) Markus Molitor Wehlener Sonnenuhr Riesling Auslese 2011, 2013

17) Il Marroneto Madonna delle Grazie, Brunello di Montalcino DOCG, Italy, 2010, 2016

18) Casanova di Neri Cerretalto, Brunello di Montalcino DOCG, Italy 2010

19) Duffau-Lagarrosse Chateau Beausejour, Saint-Emilion Grand Cru, France 2010

20) Leroy Domaine d'Auvenay Chevalier-Montrachet Grand Cru, Cote de Beaune, France 1999

21) Domaine Leroy Romanee-Saint-Vivant Grand Cru, Cote de Nuits, France 2015, 2016, 2019

22) Domaine Leroy Chambertin Grand Cru, Cote de Nuits, France 2010, 2015, 2016, 2019

23) Marcassin 'Marcassin Vineyard' Pinot Noir, Sonoma Coast, USA 2002, 2004

24) Chateau Mouton Rothschild, Pauillac, France 1945, 1959, 1982, 1986, 2016

25) Chateau Lafite Rothschild, Pauillac, France 1870, 1953, 2003, 2010, 2018

26) Petrus, Pomerol, France 1921, 1929, 1989, 1990, 2000, 2009, 2015, 2016, 2018

27) Tenuta San Guido Sassicaia Bolgheri, Tuscany, Italy 1985, 2016

28) Masseto Toscana IGT, Tuscany, Italy 2006, 2015

29) Domaine de la Romanee-Conti Romanee-Conti Grand Cru, Cote de Nuits, France 1985, 2005, 2015, 2016, 2019

30) Screaming Eagle Cabernet Sauvignon, Napa Valley, USA 1997, 2007, 2010, 2012, 2015, 2016, 2018

31) Chateau Pavie, Saint-Emilion Grand Cru, France 2000, 2005, 2009, 2010, 2016

32) Vega Sicilia Unico Gran Reserva, Ribera del Duero, Spain 1962

33) Chateau Ausone, Saint-Emilion, France 2003, 2205, 2018, 2021

34) Giacomo Conterno Monfortino, Barolo Riserva DOCG, Italy 2004, 2006, 2010, 2014

35) Scarecrow Cabernet Sauvignon, Rutherford, USA 2007, 2013, 2014, 2016

36) Verite La Muse, Sonoma County, USA 2014, 2016

37) Egon Muller Scharzhofberger Riesling Trockenbeerenauslese, Mosel, Germany 2015, 2018

38) Alvaro Palacios L'Ermita Velles Vinyes, Priorat DOCa, Spain 2013, 2016

39) Kongsgaard The Judge Chardonnay, Napa Valley, USA 2013, 2015, 2016, 2017

40) Clos i Terrasses Clos Erasmus, Priorat DOCa, Spain 2004, 2005, 2013

41) Quinta do Noval Nacional Vintage Port, Portugal 2011, 2017

(추가로 로버트 파커 100점 리스트를 보시고 싶으시면 아래를 참조)

https://www.wine-searcher.com/critics-27-robert+parker+the+wine+advocate/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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