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65)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진화론이 우리에게 보여주듯이 생명현상은 그렇게 과학기술이라는 한방의 공격 수단으로 무너지는 간단한 시스템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방어는 생물체의 당연한 진화의 요체다.

모순(矛盾)은 원래 창과 방패를 의미한다. 그러나 서로 대립이라는 말로 쓰이지 않고 앞뒤가 서로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같은 시간에 양립될 수 없는 것을 모순이라고 한다.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 그리고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가 모순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슈퍼 항생제와 슈퍼 박테리아의 矛盾

모든 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항생제는 존재할까? 역으로 어떠한 항생제에도 완강히 버텨 살아남는 박테리아는 존재할까? 그렇다면 이를 두고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첨단 과학이 만들어낸 항생제 페니실린은 그야말로 만병 통치의 ‘마법의 탄환’으로 의학의 혁명을 예고했다. 그러나 슈퍼 박테리아의 본격적인 습격이 시작되었다.

진화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박테리아가 계속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화될수록 항생제는 박테리아에 밀리는 느낌이다. 박테리아의 진화의 요체는 과연 무엇일까?

영국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과 쿼드람 연구소(Quadram Institute)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박테리아는 특수 펌프를 이용해 세포 밖으로 자신들을 씻어내기 때문에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빠르게 진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이 연구는 학술지 ‘npj 항균제와 내성(npj Antimicrobials and Resistance)’ 저널 최근호에 실렸다.

항균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내성이 강한 이러한 "슈퍼버그"의 출현은 미생물 감염을 치료하고 확산을 막기 위해 항생제와 같은 항균제를 사용하는 인간에게 새로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동 연구팀은 항균제에 노출되는 것이 어떻게 저항성의 출현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항생제에 대한 슈퍼버그의 방어 방법은 몇가지로 요약된다. 약물을 무력화하거나 회피하는 방법, 그리고 항생제가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법들이 있다. 그리고 항생제가 어떤 효과를 내기 전에 세포에서 빼내 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연구팀에 따르면 이 슈퍼버그들이 정확히 어떻게 그런 방법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고, 계속 연구 중이다.

연구팀은 식중독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살모넬라 박테리아를 두 가지 다른 항생제에 노출시켜 항생제 내성을 유발하도록 하는 진화 스트레스를 재현했다.

그리고 박테리아를 환경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가지 다른 상태에서 자라고 번식하도록 허용했다. 하나는 물에 떠다니는 플랑크톤 형태로, 다른 하나는 생물막(biofilms)에서 살도록 했다.

박테리아는 독특한 방법으로 수없이 많ㄹ은 진화를 하면서 인간이 만든 '마법의 탄환'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슈퍼 항생제가 나올 때마다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하는 치영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Science] 
박테리아는 독특한 방법으로 수없이 많ㄹ은 진화를 하면서 인간이 만든 '마법의 탄환'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슈퍼 항생제가 나올 때마다 슈퍼 박테리아가 출현하는 치영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Science] 

박테리아 진화의 비결… 항생제를 씻어내는 펌프 기능의 발전

박테리아는 원래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표면에 생물막을 형성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박테리아는 생물막에 존재한다.

수백 세대의 박테리아가 성장하면서 항생제에 노출되어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진화 시뮬레이션에서 적자생존의 자연선택은 항생제에 대처하기에 가장 적합한 박테리아를 선택했다.

이 항생제와 싸움에서 이긴 "승자"들이 어떻게 저항성을 갖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돌렸다. 그들은 저항성이 없는 조상들과 비교하여 어떤 유전자가 변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저항성 박테리아의 게놈 배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승자들은 새로운 항생제에 대항하기 위해 계속해서 펌프를 바꿔 자신을 세척해 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항생제 대한 반격이다. 그 반격이 계속 진화하고 발전한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에서 바라보았다. 자연재해나 외세의 침략과 같은 심각한 도전을 받은 문명은 지금까지 찬란하게 발전해오고 있지만 그런 도전을 받지 않은 문명은 스스로 멸망하고 말았다고 결론지었다.

인류 문명만이 아니다. 생명체의 역사가 그렇다. 인류가 만든 ‘마법의 탄환’ 항생제에 대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박테리아는 끝없이 몸부림을 치는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 항생제가 나올 때마다 슈퍼 박테리아가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로 얼음 속에 잠자던 고대 박테리아들도 출현해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그 전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