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66)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 '처녀생식(virgin birth)'이라고도 불리는 단성생식은 수컷 정자 없이 암컷 혼자만으로 개체 증식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고 암컷 혼자서 새기를 낳는 것을 말한다. “처녀가 애기를 낳다”는 말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러한 처녀생식이 희귀한 일은 아니다. 불가사리나 새우 등 일부 해양 무척추동물에게는 비교적 흔한 일이다. 그러나 상어와 악어와 같은 척추동물에게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척추동물에게 드문 ‘처녀생식’이 나타난 이유는?... 생존을 위한 진화?

최근 해양 척추동물 상어에 이어 파충류인 악어에서 이 처녀생식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이 괴상한(?) 현상에 대해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지금까지 악어를 포함하는 악어목인 크로커딜리아 (Crocodilia)목에서 처녀생식이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의 생식 패턴이 아니라 새로운 패턴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와 오염에 의한 생물체의 진화인가? 생물체의 멸종에 대한 경고인가? 혹시 멸종을 앞둔 개체의 최후의 발악은 아닐까?

우선 수컷 없이 임신해 알을 낳은 악어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지난 7일(현지시간) 과학전문지 라이브 사이언스는 암컷 악어가 수컷 악어 없이 스스로 임신해 알을 낳은 자기복제 사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왕립학회가 발행하는 생물학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악어는 16년 동안 코스타리카 파르크 렙틸라니아(Parque Raptilandia) 동물원에서 갇혀 살다가 2018년 1월 알을 낳았다.

이 미국 악어(Crocodylus acutus)는 2살 때부터 거의 일생을 다른 악어들과 분리된 채 지냈는데, 18살이 된 해에 14개의 알을 낳은 것이다. 새끼는 완전한 형태로 컸지만 부화하지는 못했다.

과학자들은 16년 동안 고립되었던 암컷이 혼자서 알을 낳은 처녀생식에 대해 진화적인 차원에서 과거 멸종된 공룡의 생식 능력을 밝혀줄 잠재적인 “감탄할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 생각한 동물원 측은 처녀생식으로 불리는 단성생식(parthenogenesis)의 전문가로 11년간 이 분야만을 전공한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 워런 부스(Warren Booth)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연구팀을 조직한 작한 곤충학자인 부스 교수는 “부화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렇게 처녀생식으로 자손들이 태어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처녀생식은 멸종 직전에 더 흔히 나타날 수 있어

그는 “이러한 처녀생식은 멸종 직전의 종에서 더 흔할 수도 있다. 야생 개체군을 조사하는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죽은 새끼들은 유전적으로 어미 악어와 99.9% 일치했으며, 암컷과 짝짓기를 한 수컷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부스 박사는 "우리는 상어, 새, 뱀, 도마뱀 등에서 이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며 "놀랄 만큼 흔하고 널리 퍼진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악어류에서 비교적 늦게 단성 생식이 발견된 이유도 사람들이 사례를 찾을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이 애완 뱀을 기르면서부터 단성 생식에 대한 보고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짝짓기 없이 새끼를 낳는 경우가 많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 부스 교수는 단성생식이 가능한 종이 개체수 감소와 멸종위기에 처하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단성생식이 매우 다양한 종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먼 조상 격인 공룡도 단성생식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멸종위기 암컷 제브라상어가 수컷과 짝짓기 없이 처녀생식을 통해 새끼를 출산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수컷이 주위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수컷과 짝짓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새끼를 낳았다는 것이다.

제브라상어의 처녀생식을 조사한 미국 필드자연사박물관(Field Natural History Museum) 프리츠커연구소 연구팀은 암컷 제브라상어가 '단성생식'으로 알을 수정해 새끼를 출산했다는 연구결과를 작년 12월 어류생물학저널(Journal of Fish Biology)에 발표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척추동물 대부분은 짝짓기 상대가 마땅치 않을 때 번식을 위한 최후의 방법으로 처녀생식을 택한다. 그리고 처녀생식을 통해 태어난 새끼는 일반적으로 수명이 짧고 불임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처녀생식이 가능한 척추동물이라도 짝짓기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단성생식을 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멸종위기 암컷 제브라상어가 수컷과 짝짓기 없이 처녀생식을 통해 새끼를 출산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암컷 상어는 수족관 주위에 건강한 수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홀로' 임심을 했다. [사진=위키피디아]
멸종위기 암컷 제브라상어가 지난해 수컷과 짝짓기 없이 처녀생식을 통해 새끼를 출산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암컷 상어는 수족관 주위에 건강한 수컷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홀로' 임신을 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수컷이 주위에 있는데도 짝짓기 대신 ‘나홀로’ 처녀생식 택해…왜?

그러나 제브라상어의 경우 같은 수조에 건강한 수컷 2마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생식을 통해 번식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새끼 상어들의 DNA가 수조에 있는 어떤 수컷 상어와도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모두 어미 상어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끼들은 처녀생식으로 인한 열성유전자 탓으로 태어난 지 얼마 안돼서 사망했다. 연구팀은 어미로부터 결함이 있는 유전자 변이체를 물려받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면 악어와 상어에서 최근 나타난 처녀생식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들 동물들은 처녀생식을 택한 것일까? 상어의 경우에는 주위에 수컷인 있는데도 말이다.

보통 번식을 위해 짝짓기를 해야 하는 상어, 뱀, 그리고 다른 생물들이 때때로 혼자서임신하는 처녀생식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자들도 확실한 대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제브라상어의 처녀생식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온 필드 박물관의 케빈 펠드하임(Kevin Feldheim) 박사는 “생식 파트너의 부재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재 파트너가 없다는 의미이지만 나아가 수컷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 처녀생식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종의 번식을 위한 암컷의 생존경쟁을 위한 치열한 투쟁이라는 지적이다.

펠드하임 박사는 “처녀생식을 통해 유전적 다양성이 적은 자손을 갖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지만, 그것이 종의 번식을 위한 최후의 노력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암컷이 고립된 섬이나, 수컷이 드물거나 없는 지역을 식민지로 지배하게 된다면 처녀생식은 암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그녀의 유전자를 물려주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이 고립되는 경우, 그리고 수컷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처녀생식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진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예상치 못한 처녀생식의 등장 뉴스는 엄청난 기후변화와 오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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