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기심을 법 집행에 적용한 독특한 제도
경쟁당국의 정책목표와 업체의 이해관계 조정
요건 완화해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

【뉴스퀘스트=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동의의결 제도'는 한·미 FTA의 이행법률 중 하나로 공정거래법에 2011년 도입되었는데, 2014년에는 표시광고법, 최근 2022년에는 갑을관계 4법(하도급법·대규모유통업법·가맹사업법· 대리점법) 뿐만 아니라 방문판매법에도 도입이 되었다.

동의의결 제도란 공정거래법을 위반, 소비자에게 피해를 일으킨 사업자가 스스로 재발 방지 대책을 제안하고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시정 방안을 제안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의견 수렴을 거쳐 법적 제재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를 말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달 23일 가맹분야 최초로 H도시락 제조업체가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와 관련하여 신청한 동의의결에 대하여 해당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 간 공정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와 관련하여 동의의결이 진행된 적이 있는데, 이제 다른 법 분야에서도 동의의결제도가 확대되는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다.

모든 사회제도나 법제도에서 엄정한 제재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법가(法家)사상을 대표하는 한비자(韓非子)는 법치(法治)와 함께 술치(術治), 세치(勢治)같은 다양한 통치원칙의 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술치(術治)는 신하들을 대상으로 하는 은밀한 통치술이며, 세치(勢治)는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는 일체의 사회관계를 이해와 계약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편안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취하고 위태롭고 해가 되는 것을 멀리하는 ‘이익 추구’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계약 곧 법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도덕적으로 발현하는 제도라고 한다.(김예호 역주, 한비자 정독, 2018) 어찌보면 인간의 이기심을 국부의 원천으로 보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동의의결제도 역시 인간의 이기심을 법 집행에 적용한 독특한 제도로 볼 수 있다. 법에 의해 상호간의 이익, 즉 경쟁당국의 정책목표와 업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다.

춘추시대 손무(孫武)가 지은 손자병법에서는 최상의 병법으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싸울 수 밖에 없다면 미리 이기고 싸우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함의가 있지만, 법적 분쟁으로 계속 가지 않고 실리를 챙기는 것, 싸우게 되더라도 최대한 피해가 적게 마무리 하라는 말로 들린다.

동의의결 절차는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도입한 제도는 아니다. 2011년 한미 FTA협정 과정에서 미국측의 요청으로 협정문에 아래 내용이 포함되게 되었고 그 이행을 위해 공정거래법에 도입된 것이다.

“(한미 FTA 협정문 제16.1.5) 각 당사국은 자국의 국가 경쟁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자국의 당국에게 그 집행 조치의 대상자와 상호합의에 의하여 자신의 행정적 또는 민사적 집행조치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한다(Each Party shall provide its authorities responsible for the enforcement of its national competition laws with the authority to resolve an administrative or civil enforcement action by mutual agreement with the subject of such an enforcement action).”

미국에서는 소송제기 이후 90% 이상의 사건이 최종 심리를 거치지 않고 종국적으로 조정·중재 등 대안적 분쟁해결방법(ADR)을 통해 소송상 또는 소송 외 합의(In court or out of court settlement)에 의하여 해결되고 있다고 한다(김건식, 공정거래분쟁의 ADR활성화 방안, 2017). 이러한 법문화에서 동의의결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데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는 협상과 협의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법적인 수단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고소, 고발이 남발되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에서도 고소, 고발이 일상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오죽하면 동의의결제도를 도입하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없는 검찰총장과의 협의라는 절차를 두고 있는데, 할 수 없이 제도를 도입하지만 형사처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는 모양새가 되었다. 물론 이는 형벌조항이 많은 입법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제도이건 그 제도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공동행위 자진신고제도의 경우 1996년에 도입되었지만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결과 거의 활용이 되지 않다가 2005년 제도를 투명하고 단순하게 정비하면서 크게 활용이 되기 시작하였다.

기업들의 자발적 법 준수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CP제도도 과징금 감경 등 혜택을 없어지자 활용도가 뚝 떨어졌다. 최근 공정거래법에 CP제도의 근거가 마련되어 활용도가 높아질지 주목된다.

이런 예는 다른 분야에서도 보여진다. 예를 들어 행정기본법 제24조에 인·허가 의제 조항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의제되는 인·허가를 위해서는 별도의 절차 또는 요청되는 요건 등을 갖추어야 해서 의제의 의미와는 그 내용이 달라 희망고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강현호, 법치행정 구현을 위한 행정계획 법제의 구성체계 및 내용, 2023)

꼭 같지는 않지만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동의의결제도도 유사한 문제가 있다. 문제의 출발은 동의결제도가 그 제도의 취지와 달리 활용도가 저조하다는데 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동의의결 인정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분석한다. 법상 인정요건은 “첫째, 해당행위가 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예상되는 시정조치, 그밖의 제재와 균형을 이룰 것, 둘째, 자유로운 경쟁질서나 거래질서를 회복시키거나 소비자, 다른 사업자 등의 보호에 적절하다고 인정될 것”이다.

한눈에 봐도 제재를 받는 것 이상으로 요건이 엄격해 보인다. 법위반업체라는 주홍글씨가 붙는지 아닌지의 차이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제도에 대한 유인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동의의결 제도를 경쟁법상의 중요한 제도로 인정한다면 그 요건을 다소 완화하더라도 제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대상 법률을 확대한 것도 제도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이다. 그렇다면 실제 잘 활용이 되도록 운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안의 성격을 잘 판단해서 아무리 좋은 동의의결안이라도 제재가 불가피하거나 시장질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안은 제재를 통해 경쟁질서의 기준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경쟁제한사건은 경쟁제한상태가 제거되었는지, 소비자나 다른 사업자의 피해에 중심이 있는 사건은 그 피해가 회복되는지에 중점을 두소 심사를 하여야 할 것이다. 추후 이행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상생기금 출연같은 것은 나쁠 것은 없지만 제도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B사가 일종의 자진 시정 방안인 동의의결안을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S전자에 대한 피해 구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정위가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한 뒤 전원회의에서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은 2011년 제도가 도입된 후 처음이라고 한다.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필자가 언론보도 이상의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피해구제에 중점이 있는 사건이었다면 피해기업과 피해금액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교감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의의결 결정권한은 위원회에 있지만, 동의의결 절차는 일방적 조사와는 달리 일련의 협의과정이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법제도가 ‘버리기는 아깝지만 먹으려면 별로 먹을 것이 없는’ 조조의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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