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조정제도 운영은 한국이 유일
시간과 비용 절약,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어...

【뉴스퀘스트=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 우리나라 공정거래제도에서는 분쟁조정제도라는 독특한 제도가 있다. 물론 조정제도는 법원, 행정형, 민간형 등 일반적인 제도로서 많이 존재하지만 공정거래제도의 틀속에서 분쟁조정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고 생각된다.

공정거래제도가 경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시장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중요한 제도이지만, 불공거래행위로 피해를 본 사업자들에게 직접적인 구제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에 2007년 공정거래법 개정시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행정제재(과징금, 시정조치) 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신속한 피해구제의 목적으로 분쟁조정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매우 성공적인 제도로 평가되어 왔고, 그후 2011년에는 하도급거래, 2012년에는 대규모유통거래, 약관거래, 2013년에는 가맹거래, 2017년에는 대리점거래로 분야가 확대되었다.

대표적인 분쟁해결 수단은 여전히 소송이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제활동도 다양화됨에 따라 소송으로만 분쟁을 효과적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경우 분쟁의 95%가 중재 등 등 대체적 수단으로 해결된다고 한다.

스티븐 소더버스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 포스타 
스티븐 소더버스 감독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 포스타 

2000년 개봉한 ‘에린브로코비치’란 영화는 미국 서부 해안의 에너지 회사인 PG&E와 벌인 법적 분쟁을 영화화한 실화 영화였는데, 주인공인 줄리아로버츠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크게 흥행에 성공하였다.

이 영화에서도 변호사인 테드가 “중재를 택한다고 배신하는 건 아닙니다. 모두가 배상받을 수 있는 최선책이에요”라며 고소인들에게 중재를 설득하는 방면이 나온다. 결국 주민들은 거액의 배상을 받는 걸로 영화는 끝이 난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재판관 포셔의 중재 제안도 유명한 얘기이다. 재판관 포셔는 살을 자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는 판결 대신 채무액의 세 배를 받도록 조정안을 제시하지만 샤일록은 이를 거부한다.

이와 같이 소송외의 분쟁해결 수단을 통칭하여 대체적 분쟁해결수단(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이라고 한다. 강제성이 가장 낮은 형태로 협상(Negotiation)/화해(Compromise)부터 알선(Conciliation)가 있다.

다음으로는 조정(Mediation)과 중재(Arbitration)가 있는바, 조정에는 강제성이 없는 반면 중재에는 강제성이 존재한다. 실제로는 조정(Med)/중재(Arb), 옴부즈만제도, 간이심리 같은 절충적 방식(Hybrid Dispute Resolution)이 있다.

필자가 공정거래조정원장을 맡고 있었을 때 방문한 미국의 연방조정알선국(FMCS)에서도 1차적으로는 조정, 2차적으로 중재를 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을 들은 기억이 난다.

조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강제성이 없다는데 있다. 이에 대하여 국제적으로도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는데, 2018년 1월 18일 채택된 싱가포르 협약(Singapore Convention on Mediation)이 바로 그것이다.

동 협약에는 53개국이 서명하였고 현재 8개국이 비준을 하였다, 우리나라는 서명을 하였지만 아직 비준을 거치지는 않았다. 이는 조정절차에서 합의한 내용을 체약국에서 실질적으로 집행가능성을 보장한다는 것으로써 조정의 효력을 한 단계 높이는 결과가 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불공정거래행위 분쟁조정제도도 원칙적으로 강제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우선 합의가 성립되면 공정위의 시정조치에서 해방이 된다.

이는 합의 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공정거래조정원의 합의 성립율이 70~80%에 달하는 것도 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공정거래 분쟁조정제도는 공정위의 시정조치와 연계되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종래에는 사건처리의 순서상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이루어지면 조정이 불가하였으나, 최근 법개정으로 공정위 시정조치 이후에도 조정을 통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또한 약관 거래를 제외하면 합의에 재판상 효력이 있어서 불이행시 법원에 강제집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약관거래는 민사적 효력만 가진다.

그 외에도 무료로 처리가 되고 2~3개월의 기간내에 신속하게 처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제도의 장점에 속한다. 거래관계가 파탄에 이르지 않고 합의에 의하여 종결함으로써 장래 지속가능성을 담보한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한 제도이다.

필자가 조정원장 재임시 방문했던 뉴욕시 민사법원에는 조정을 권장하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조정은 자발적이다(Voluntary). 조정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된다(Confidential). 비용이 들지 않는다(Free).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Informal). 자율적이다(Empowering).”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신동권 KDI 초빙연구위원

이런 장점이 있다면 조정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조정에 취약하다고 생각된다. 조정제도는 개인적으로도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아직 공정거래제도에서 분쟁조정제도를 잘 모르는 기업인이 많은 것 같다. 공정거래 관련하여 우선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리스크 관리가 중요하지만, 만약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조정제도를 활용해서 조기에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상호간에 윈(Win)-윈(Win)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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