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과기누설(71)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 기자】‘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라는 말은 원래 1998년 독일이 통일 후 경제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용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사용되었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 사이에서 경제적 쇠퇴기를 맞이한 오스만제국을 지칭하면서 사용되었다.

19세기 중반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전쟁에서 패하고 소생 기미가 없이 망해가는 오스만제국을 '유럽의 병자'라 지칭한데서 유래하였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독일 통일 후 너무 많이 드는 경제 비용 때문에 붙여져

이후 오스만 제국은 국가적 열등감을 갖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지식 수준이 낮다는 편견과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현재는 유럽에서 경제적인 쇠퇴기를 맞은 국가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1960~1970년대는 영국을 유럽의 병자로 칭하였고, 1990년대에는 독일이 고용률이 낮아지고 노동시장이 경직되면서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또 그 다음에는 실업률과 경제성장이 악화된 프랑스를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에는 이탈리아가, 2007년에는 포르투갈이 새로운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독일 Ifo 연구소의 한스-베르너 신(Hans-Werner Sinn) 명예 소장은 지난 1일(현지시간) 독일은 다시 한번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독일의 에너지 전략 측면에서 제기되는 이러한 도전은 특히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 우파 정당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신 소장은 이탈리아에서 한 포럼에 참석한 후 CNBC와의 회견에서 "독일의 도전은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 도전은 독일 산업의 심장부인 자동차 산업과 관련이 있으며 많은 도전이 여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22년 5월 수십년 만에 10억 유로 적자 기록

자동차는 지난해 독일의 주요 수출 상품으로 해외에서 판매된 전체 상품 가치의 15.6%를 차지했을 정도로 독일 경제를 이끌고 있는 산업이다.

독일은 2022년 5월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총 10억 유로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독일은 무역 흑자에서 수출 이상의 수입으로 잠시 전환한 것이다.

연방 통계청에 따르면 독일은 이후 무역 흑자로 돌아섰지만, 수출은 여전히 부진한 실정이다.

신 소장은 독일의 지속 가능성 목표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구심이 이 나라를 "유럽의 병자”로 묘사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현재 독일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한 가지 목표는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크렘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이 러시아산 가스 의존에서 벗어나려 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일부 사람들은 특히 독일의 기후 목표에 비추어 볼 때 러시아 가스에서 벗어나려는 독일의 야망을 “지나친 낙관주의”라고 묘사했다.

신 소장은 풍력과 태양열과 같은 재생 가능한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기업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는 ‘변동성 문제’를 야기해 사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는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 가능할지 우려되는 데다, 이와 같은 문제를 기존 에너지원으로 메울 경우 비용이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베렌베르크(Berenberg)가 지난 8월 발표한 연구노트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이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가스와 전기가 저렴한 국가로 사업장을 옮기면 현재 산업 역량의 2~3%를 잃을 수 있다.

국민들이 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느끼면서 소위 ‘그린 래시(green lash)’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지속가능한 유럽으로의 전환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의 징후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그린 래시는 녹색 정책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신 소장은 "분명히 반발이 있다. 이제 인구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처음으로 승리한 우파 성향의 대안 독일당의 인기를 언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에너지 위기에 빠지면서 그동안 독일이 추구했던 친환경의 지속가능한 정책에 국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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