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만 남은 솟대타기, 최근 들어 복원돼

【뉴스퀘스트=김승국 전통문화칼럼니스트 】

기산풍속도 솟대타기
기산풍속도 솟대타기

 전승이 단절된 전통연희 종목 중에는, 명칭만 남아 있지, 연희 양상을 전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지만, 문헌자료와 그림 자료를 통하여 구체적인 연행 양상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솟대타기는 후자에 속한다. 문헌상의 기록으로는 솟대타기의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솟대타기는 면면히 전승되어 오다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전승이 단절되었다. 그 후 복원을 위한 시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최근 들어서 진주 솟대쟁이놀이보존회(대표: 김선옥)와 남사당놀이 솟대쟁이패보존회(대표: 양근수)를 중심으로 솟대타기 복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있다.

  솟대타기는 전문 연희자가 솟대 위에 올라가 연주하거나, 솟대 아래에 있는 어릿광대와 재담을 나누고, 삼현육각 패의 반주 음악에 맞추어 노래와 갖가지 묘기를 펼치는 가·무·악·희(歌·舞·樂·戱)가 일체화된 연희로서 줄타기와 그 속성이 매우 흡사하다. 솟대란 본래 민속신앙에서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수호신의 상징으로 세운 긴 나무와 장식으로, 종교적 의미가 있으므로 연희도구로는 적당하지 않아 솟대타기에서는 별도 제작한 긴 장대를 사용한다.

장대에 오른 광대가 가·무·악·희(歌·舞·樂·戱)를 펼치는 종합예술 

  솟대타기는 주로 유랑 전문 예인들인 솟대쟁이패, 초라니패, 대[竹]광대패 등에 의하여 연행되었는데 연희자들은 솟대에 올라 솟대 아래에 있는 삼현육각 연주자들의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을 추거나 솟대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매달리는 등 갖가지 기예를 보여주었다. 나아가 솟대에 대금이나 장고 같은 악기를 들고 올라가 연주하거나, 솟대 아래에 있는 어릿광대와 익살스러운 재담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묘기를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진주 솟대타기
진주 솟대타기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조 말까지 그 연행 양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된 문헌 기록이 여러 곳에 남겨져 있고, 조선조에 그려진 화첩과 감로탱 등에 '솟대타기'의 연행 장면이 그려진 자료도 많이 남아있어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고려조  이색의 한시에 연행의 모습 담겨있어 

  대표적인 문헌 기록으로는 고려 말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집(牧隱集)> 33권과 고려가요 청산별곡 7연으로 비교적 자세하게 솟대타기 연행 장면이 서술되어 있다. <목은집(牧隱集)>에서는 솟대 위에서 연희자가 자유자재로 걸어 다니는 묘기를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산대(山臺)를 얽어맨 것이 봉래산 같고(山臺結綴似蓬萊) /과일 바치는 선인이 바다에서 왔네(獻果仙人海上來) /연희자들이 울리는 북과 징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고(雜客鼓鉦轟地動) / 처용의 소맷자락은 바람 따라 돌아가네(處容衫袖逐風廻) / 긴 장대 위의 연희자는 평지에서 걷듯 하고(長竿倚漢如平地) / 폭죽은 번개처럼 하늘을 솟네(爆竹衝天似疾雷) / 태평성대의 참모습을 그리려 하나(欲寫太平眞氣像) / 늙은 신하 글솜씨 없음이 부끄럽구나(老臣簪筆愧非才) 

  또한 고려조 <청산별곡> 7연에는 사슴 가면을 쓴 광대가 솟대 위에서 해금 연주하는 모습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솟대타기를 모르는 대부분의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들이 7연의 시가 사슴을 통하여 생의 절박한 심정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아직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 / 사스미 짐ㅅ대예 올아셔 / 奚琴을 혀겨를 들오라 (사슴으로 분장한 광대가 장대 위에 올라가 / 해금 타는 것을 듣노라) 

  또한 중국 사신을 영접할 때 연희 장면을 그려놓은 화첩인 아극돈(阿克敦, 1685~1756)의 <봉사도(奉使圖)> 제11폭과 선암사 감로탱(1736년)에도 솟대 양옆에 두 줄을 매어 고정하고, 연희자가 솟대 꼭대기에서 한 손으로 중심을 잡는 기예의 그림이 남아있다.

이극돈의 봉사도
이극돈의 봉사도

대표 관광 공연예술상품으로 가능성 큰 ‘솟대타기’ 

  '솟대타기'는 방울받기, 줄타기처럼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연희로 우리나라에만 전승되어 온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의 솟대타기가 곡예 중심으로 발전되어왔지만, 우리는 재담과 음악과 춤과 곡예가 어우러진 독특한 종합예술의 형태로 발전되어 예술적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종합예술의 보고인 솟대타기가 하루빨리 온전히 복원되어 대중 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솟대타기를 온전히 복원하여 선보인다면 국민에게는 전통 공연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게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솟대타기를 기반으로 진화된 창작 공연예술을 선보인다면 한국의 대표적인 관광 공연예술상품 브랜드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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