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3000원으로는 쌀 1kg도 못 사
달러 만질 수 있느냐가 신분 결정
주민 생활수준 좌우하는 ‘달러 파워’
체제이반 할까 김정은 고민 깊어질 듯

 

평양의 축전경흥상점에서 주민들이 쇼핑할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평양타임스]
평양의 축전경흥상점에서 주민들이 쇼핑할 물건들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평양타임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평양의 광복거리상업중심은 북한의 대표적인 쇼핑센터다. 옛 광복백화점의 명성을 잇고 있는 이곳에선 식품류와 먹거리부터 전자제품과 화장품・의류까지 웬만한 물건은 다 살 수 있다.

노동당 고위 간부나 군부 장성급 등 특권층의 경우 별도의 특별공급(배급)이나 외화상점 이용 등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김정은 체제 들어 새롭게 등장하거나 리모델링한 백화점, 또는 대형 슈퍼마켓 형태의 쇼핑센터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한다.

물론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방 거주 주민의 경우 이동의 자유가 없는데다 특히 평양에 들어가려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평양 주민이라 해도 넘어야 할 벽이 있다. 매달 월급을 받아 생활해야 하는 기관・공장의 사무원이나 노동자의 경우 가격표를 보면 혀를 내둘러야 할지 모른다.

광복거리상업중심의 경우 버터단빵 한 개가 북한돈으로 500원 정도에 판매된다. 북한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3000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빵 6개를 사먹으면 한 달 치 월급이 바닥난다는 의미다.

살결물로 불리는 스킨로션 등이 담긴 미래화장품 여성 세트의 경우 36만5100원으로 가격표가 적혀 있는데, 이결 하나 사려면 10년 1개월 치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제품을 그대로 본뜬 ‘삼복’ 브랜드의 커피믹스 100개들이 하나를 사면 7만250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2년 치 월급에 해당한다.

북한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근로자나 월급 생활자들은 구매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백화점 수준의 상업중심이라 그런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보통의 상점이나 장마당에서도 가격이 크게 차이나 나는 것 아니라는 게 탈북 인사들의 전언이다.

첫째로 지적될 수 있는 건 북한 주민들에게 월급은 사실상 의미가 없는 돈이 됐다는 점이다. 북한돈 3000원의 평균월급으로는 제대로 살 수 있는 게 없을뿐더러 기본적인 생활이 어렵다고 보면 된다.

쌀 1kg이 평양 장마당에서 5070원(데일리NK 11월 물가 조사)이라 점에 비춰보면 월급으로 쌀도 제대로 살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가 북한 주민의 40% 수준인 1100만명이 만성적인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둘째는 달러화가 북한의 경제와 장마당을 장악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공식 환율은 달러당 140~150원 수준이지만 장마당의 비공식 환율은 8400원에 이른다. 한 달 월급이 50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월급만으로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가난과 기아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일부 특권층이나 중산층 이상의 경우 나름대로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

달러에 접근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삶의 질이나 신분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기준이 되기도 한다. 휴지에 가까운 북한 원화와 달리 100달러 지폐 한 장이면 시장 환율로 환산해 엄청난 구매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의 경우 커피믹스 100개 들이 상품을 9달러 정도면 살 수 있고, 화장품세트도 45달러 정도에 구매가 가능하다. 물론 이 돈도 일반 주민들의 수준에서 보면 큰 금액이지만 달러를 만질 수 있는 계층들에게는 지불 가능한 영역이라 볼 수 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미 달러화의 위력을 알고 있는 주민들은 달러벌이에 혈안이 돼 있고, 외무성이나 무역기관, 해외 공관・대표부 등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리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고의 신랑・신붓감으로도 꼽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시절인 2009년 11월 전격적인 화폐개혁을 시도한 것도 장롱속의 달러화를 거둬들이려는 시도였지만, 장마당 ‘돈주’(상업유통으로 막대한 자본을 거머쥔 부유층) 등의 반발로 실패했다.

김정은 체제 들어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는 특권층과 의미 없는 수준의 월급으로 연명해야 하는 주민들 사이의 격차는 훨씬 커졌다. 뒤늦게 월급만으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엘리트와 주민들은 장마당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 탈북인사는 “예전엔 김일성대 부부교수가 가문의 영광이었지만 이젠 굶어죽기 십상인 시절이 됐다”고 말했다. 일반 근로자보다 높은 5000원 정도의 월급을 받지만 둘이 합친다 해도 별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달러를 받고 입시과외를 하거나 여교수가 퇴직하고 돈벌이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노동당의 배급으로 생활하던 시절은 일찌감치 지나갔고 이젠 각자도생의 시대가 다가왔다.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느냐는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느냐는 결정하는 변수가 됐고, 빈부간의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자칫 이런 불만이 체제 이반으로 나타난다면 북한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으로 세상에 눈 뜬 젊은 세대들의 경우 반발할 공산이 크다. 핵과 미사일을 거머쥐고도 김정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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