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은 탁월하지만 결단력은 글쎄...

 

허핑(사진 왼쪽) 중국 기자협회 주석. ‘킹 오브 킹’이라고 불릴 만한 조직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 국제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허핑(사진 왼쪽) 중국 기자협회 주석. ‘킹 오브 킹’이라고 불릴 만한 조직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한 국제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뉴스퀘스트=베이징/전순기 통신원】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와는 달리 동북아의 한중일에서 기자들의 위상은 엄청나게 높지 않다. 특히 한국과 중국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단언해도 좋다.

기본적으로 자본과 권력에 종속된 채 해야 할 말,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토해낼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중국의 기자들이 한국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해야 한다.

사회주의라는 체제의 속성 상 권력 눈치만 조금 볼 경우 다른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꽤 자유로운 만큼 이렇게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특히 자본에 대해서는 할 말을 다 한다고 해도 괜찮다.

중국 기자들이 사회적으로 크게 존경을 받지는 못해도 기레기라는 치욕적인 욕을 먹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직도 우몐즈왕(無冕之王.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 역시 통하기도 한다. 명문대학 출신의 엘리트들도 기자가 되기 쉽지 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해야 한다.

무려 55만여 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 이 우몐즈왕들 역시 관변이기는 하나 한국처럼 기자협회(공식 명칭은 중화전국신문공작자협회)를 통해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당연히 한국과 다른 점도 상당히 많다.

무엇보다 기자가 되는 순간 의무적으로 협회에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수장이 투표가 아닌 당국의 임명으로 결정된다는 것 역시 한국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위상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영향력에 비춰볼 경우 총리 못지않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실제로도 상당한 고위급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킹 오브 킹’, 즉 ‘무관의 제왕’들의 수장인 기자협회의 주석은 관영 신화(新 華)통신의 사장을 역임한 허핑(何平. 66)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 겸 외사위원회 주임이 맡고 있다. 척 봐도 스펙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 정계의 국룰, 즉 첸구이쩌(潛規則. 관행)인 이른바 칠상팔하(七上八下. 67세 이하는 현직 고수, 68세 이상은 은퇴) 관례에 저촉될 경우 2년 후 은퇴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그는 베이징 출신으로 문화대혁명의 유탄에 직격을 당한 막내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야 할 나이이던 1976년까지는 하방(下放)을 일컫는 상산샤샹(上山下鄕. 산으로 올라가고 농촌으로 내려감)에 참가, 힘겨운 육체노동을 견뎌내야 했다. 그럼에도 타고난 능력이 출중했던 탓에 이듬해 베이징대 중문과에는 무난히 입학, 졸업까지 할 수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은 지금도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닌 신화통신이었다. 기자로서의 그는 난다 긴다 하는 인재들 속에서도 그야말로 출중했다. 승승장구는 기본일 수밖에 없었다. 빠르게 주임(부장)과 부총편집(편집부국장)으로 승진하는가 싶더니 50세 때인 2007년에는 드디어 대망의 총편집(편집국장. 한국과는 달리 사장과 동급)에 올랐다. 이어 2020년 10월 대망의 사장 자리까지 거머쥐었다. 기자 초창기 시절과는 달리 부장(장관)급으로 승진하기 위해 무려 13년 동안이나 기다린 것이다.

너무 늦은 나이에 신화통신 사장으로 올라선 탓에 그는 1년 8개월 후 현장 언론인에서 은퇴한 후 정협의 문사(文史)위원회 부주임으로 이동했다. 2023년 3월에는 상무위원 겸 외사위원회 주임으로 승진했다. 현재 역시 기자협회 주석을 포함, 세 직책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현장 기자 시절 주로 정치부에서 뛰었다. 당정 고위 관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히 그의 승승장구도 뛰어난 능력 이외의 이런 인연과 무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무려 40여 년 동안 언론인으로 활약했음에도 그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신문이나 방송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기 어려운 통신 기자 출신의 숙명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계에서 그를 모르면 속된 말로 사이비 기자라고 해도 괜찮다. 관가에서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최고 권위의 관영 통신 사장을 지낸 만큼 능력은 진짜 출중하다고 단언해도 좋다. 그를 잘 아는 주변에서는 무엇보다 리더십이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총편집 자리에 13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것은 분명 괜한 게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자리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욕을 하는 안티들은 없다. 평소 사욕이 없기로 유명한 것을 모르는 주변 지인들이 없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정치부 기자의 숙명일지도 모를 뛰어난 사교성도 거론해야 할 것 같다. 이는 전국 곳곳의 성장, 중앙 정부의 부장급 이상의 고관들 중 그와 이런저런 인연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당정 고위급 인사들이 최소한 수백여 명에 이르는 현실이 분명히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도 상당히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협 외사위원회 주임 자리에 괜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도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리더십과는 완전히 상충되는 결단력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 수없이 많이 들어온 러브콜에 흔들리다가도 단 한 번도 시원스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나 싶다.

이에 대해 중국에서도 드물게 평양과 서울 특파원을 모두 다 거친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쉬바오캉(徐寶康) 대기자는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신화통신 사장까지 지낸 스펙은 결코 간단한 게 아니다. 능력이 출중하다는 말이 된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무수하게 들어오지 않았다면 이상하다고 해야 한다. 결단을 내려 잘 된 이들도 부지기수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과론적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상당히 아쉬워했다.

그러나 그에게 앞으로도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운 좋게 칠상팔하 관례의 적용 대상이 되지 않을 경우 최소한 시 총서기 겸 주석의 4연임이 끝나는 2032년까지 활약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확 눈에 띄는 자리에서 자신이 대기만성형 파워 엘리트라는 사실을 입증할 것으로도 보인다.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자리들도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재 몸담고 있는 정협의 부주석 자리를 꼽을 수 있다. 올해부터 상무위원으로 재임하고 있는 만큼 한 단계 더 승진할 경우 충분히 현재의 활약을 더 이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55만여 명 ‘무관의 제왕’들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이처럼 진짜 간단하지 않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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