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미국의 정국 변화 고대하며 적절히 도발, 내실 다지는 한해
러·중 협력으로 경제 그럭저럭 버티면서 핵무력 내포화에 진력할 듯
김정은의 북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4년 윤석열 정부의 과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2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2주기를 맞아 지난 16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 2023년이 저문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적대적 대결’로 전운(戰雲)까지 감돌았다. 정치·군사·경제·사회·문화·보건·환경 모든 분야에서 관계는 꽉 막혔고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 김정은과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2024년을 준비하고 있을까 각각 살펴본다. 먼저 김정은이다.

첫째, 핵무력에선 초초하게 시작했다가 가슴 뿌듯하게 마무리하는 한해였다. 7월 13일 고체연료를 사용하여 명령 수십 초 만에 발사가 가능한 미국 본토 타격용 화성-18형 대륙간탄도탄(ICBM)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이어 금년 내 장담했던 군사정찰위성, 두 번의 실패 후 마침내 11월 21일 지구 궤도에 안착시켰다. 9월 6일에는 ‘자칭’ 전술핵공격잠수함도 진수시켰다.

핵무력 완성의 필요조건인 ‘핵무력 외연화(外延化)’를 다지면서 정교한 과학기술을 첨가한 충분조건인 ‘핵무력 내포화(內包化)’에로 큰 한발을 내딛은 셈이다. 정찰위성에 정밀성·기능성을 더한 첩보위성으로 발전, ICBM에 지구 궤도 재진입 기술 장착, 전술핵공격잠수함의 은밀성과 잠수함발사탄도탄(SLBM) 수중 사출 실현 등이 가야할 길이다.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세 번째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면 – 사실 김정은은 성공을 자신할 수 없어 김주애를 대동하지 않았다 – 주민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먹여 살릴 방법이 없고, 남은 모든 것을 짜내 쏟아 부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배는 곯아도 주민들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

둘째, 우크라니아 전쟁이 김정은의 숨통을 열어주었다. 미·중에 더해 미·러 갈등이 더하자 대북 국제제재에 구멍이 뚫렸다. 중·러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가 김정은 도발에 추가적 제재는 고사하고 기존 제재의 실행에도 힘을 잃고 있다.

이를 이용한 김정은, 다급한 푸틴에게 무기·탄약을 제공해 통치자금을 획득하고 있다. 국제제재에도 불구하고 대러 무기·탄약 수출은 수요처 확대에 촉매가 될 것이다. 금년 세 번에 걸친 열병식은 판매용 ‘홍보 쇼’였고, 트럭이나 소방차 등 어떻게 위장해 제재망을 피할 것인지도 보여주었다. 대러 인력 수출 확대와 에너지 확보도 성과다.

절실한 군사기술지원도 이끌었다. 9월 13일 푸틴과 정상회담 이후 군사정찰위성 성공이 그 성과다. 곧 발사할 ICBM의 목표는 궤도 재진입이다.

푸틴이 북한 핵무력 내포화를 김정은이 원하는 속도·규모로 지원해줄 것인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푸틴이 구상하는 세계 질서에 김정은보다 시진핑이 더 긴요하고, 우크라이나 전황에 따라 김정은과 밀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셋째, 권력 4대 세습에도 자신감을 가지게 한 한해였다. 김일성·김정일을 거쳐 자신의 대에서 이룩한 핵무력 완성으로 김씨 가계 세습에 정통성을 다졌다고 여길 것이다.

여기에 ‘푸·시·김(푸틴·시진핑·김정은) 종신체제’가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시진핑이 3월 10일 국가주석직 3연임을 공식 확정했고, 1인 장기 집권 체제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 2020년 개헌으로 기존 임기를 백지화한 푸틴은 내년 3월 대선 승리도 확실해, 1999년 12월 옐친 퇴진 이래 장악한 실권이 2036년 5월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사회주의 최강대국들이 영생집권을 떠받드는 판에 김씨 가문이 움츠릴 이유가 없다.

김주애를 등장시킨 것도 묘수라 여길 것이다. 포악한 독재자 이미지를 따뜻한 부성애(父性愛) 과시로 한결 누그러뜨렸다. 김주애가 후계자라는 분석이 내외에 무성해지면서 4대 세습은 김주애 혹은 감추고 있다는 아들 누구건 간에 이미 공인된 분위기다.

김정은이 김주애의 나이에 후계자로 낙점되었다는 점에서, 금년 중요 행사에 자주 모습을 보였고, 그에 대한 호칭이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귀하신 자제분’으로 급기야 김일성 선전용인 ‘조선의 샛별’을 딴 ‘조선의 샛별 여장군’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김주애 후계자 확정’ 주장에는 유보의 입장이다.

김주애 나이에 김정은은 철저히 감춰져 제왕교육을 받았다. 차기 수령의 신변보호에 철통같은 김씨 가문이다. 김주애 ‘활용’은 김정은과 가계의 권력 상징조작용이자 추정되는 아들, 실질적 후계자를 보호해주는 가림막이자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넷째, 김정은에게 부담은 시진핑과의 관계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과 이어진 6월 시진핑 방북까지 밀월(蜜月)을 과시했던, 김정은이 한껏 고개 숙였던 시진핑과는 얼음 없는 냉각 상황이다.

푸틴과의 정상회담에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음을 번연히 알 김정은이 “앞으로 지금 시점에서 북·러 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하고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은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라 입에 달았던 중국과 시진핑이 김정은에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보지 않아도 선하다.

푸틴의 “모든 문제는 오직 두 주권 국가와 관련된 것”, “제3국이 이를 우려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협력은 양국 국민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 것”이란 화답은 시진핑을 더욱 자극했다.

세계 전략에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푸틴, 무기·탄약을 확보하고 대북 군사기술지원에 성의 표시를 지시한 뒤, 시진핑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10주년 기념 베이징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10월 17~18일)에 달려갔다. 3월 모스크바 러·중 정상회의에서 언급한 ‘진정한 친구’를 연출하며 중국 관리에 나섰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축하하고 혈맹의 관계를 보였어야 했을 김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대일로 포럼을 마치고 방북한 러 외무장관 라브로프를 10월 19일 만난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으로 양국 관계는 불패의 전우관계, 백년대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더욱 승화 발전되고 있다”며 중국 심기를 또 건드렸다.

압록강·두만강 위 북·중 접경도로·철교에 양국을 오가는 통행이 부쩍 늘었다. 북한 인력의 중국 진출도 증가하고, 북한 요청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의 강제 송환도 진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불참은 군사기술이건, 에너지나 관광이건 김정은이 원했던 기대를 시진핑이 충족시키지 않은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을 것이다. 혹은 희망했던 푸·시·김 3자 회동이 거부되었거나, 최소한 시진핑과의 양자 정상회담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시진핑의 김정은에 대한 불편함은 북·러 정상회의에 대해 ‘북·러 양국 간의 일’이라 한 중국의 논평이나 “현재 중·북 관계는 양호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미지근한 표현에서 묻어난다.

중국의 입장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핵무력을 완성해가는 김정은 체제가 과연 자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가란 의문이다. ICBM, SLBM, 전술핵공격잠수함에 군사정찰위성까지 정밀성을 완성한 김정은이 미국과 군축협상을 진행해 핵 동결을 전제로 대북제재 주요 해제에 합의한다, 나아가 양국이 관계를 진전시켜 나간다면 북·미 접근에 비례해 북·중 관계는 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독자성이 더 커지는 상황 구체적으로 북한이 대중 견제 세력화 될 가능성이 있다고 중국이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다.

다섯째, 김정은에게 참으로 아쉬운 대목은 남한의 핵무장화, 즉 주한미군에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유인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초부터 연이어 쏘아올린 불꽃으로 남한 주민 내 대북 적개심 고조와 강경 대응 요구, 압도적 다수의 주한미군 전술핵무기 재배치 찬성을 성공적으로 유도했다.

그러나 ‘믿었던 강경 윤’이 노림수에 꼬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NPT(비확산협정) 체제를 안고 가면서 대북 국제제재 전열을 유지하고, 이를 동력으로 미국과 확장 핵 억지력을, 한·미·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만약 윤 정부가 주한미군 전술핵 배치를 받아들였다면 김정은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남한 핵무장화로 규정·주장하여 김씨 가계의 핵무장 노선에 대한 정당성 확보, 대북 국제제재 무효화, 핵 폐기가 아닌 핵 군축 주장에 힘을 얻었을 것이다. 핵개발의 지속으로 항구적 대남 핵 우위를 누렸을 것이다.

여기에 부수적 덤도 엄청났을 것이다. 사드 배치와 비교할 수 없이 폭발할 남남 갈등, 주한미군 전술핵을 자국 공격용으로 받아들일 중국 역시 사드 배치에 비견될 수 없을 적나라하고 공격적인 대남 압박, 추가적인 중·미 대립은 김정은에 운신의 폭을 훨씬 넓혀 주었을 것이다.

여섯째, 대남 관계에선 바쁠 것이 없다. 러시아와 중국을 줄타기 하면서 남한에 아쉬운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 어차피 총선 전에 윤 정부가 ‘남북관계 정상화에 입각한 원칙적 대응’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이기 때문이다.

총선으로 윤 정부의 기가 빠지고 여소야대가 유지되도록 고비마다 ‘자신이 할 바’, 즉 한반도 긴장 고조를 계속 끌어가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그것이 내년 말 미 대선에서 자신에 추파를 던지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길 것이다.

일곱째, 그럼에도 김정은이 놓치지 않는 것은 한반도 통일전쟁 궁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났듯이 핵으로 위협하면 외부의 참전을 배제할 수 있다. 개전 시 일본의 개입도 차단할 수 있는데, 문제는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군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 미군 전력이 묶이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주한미군도 가담할 수밖에 없고, 그때가 결정적 시기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2024년의 김정은, 남쪽과 미국 내 정국 변화를 고대하며 적절히 도발하면서 내실을 다지는 한해가 될 것이다. 러·중의 협력으로 경제를 그럭저럭 버티어내고, 핵무력 내포화에 진력할 것이다.

이런 김정은의 북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2024년 윤석열 정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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