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구 육군 21사단 GOP 장병들이 12일 오전, 전날 부터 많은 눈이 내린 가운데 한겨울 악기상 속에서도 전방 철책을 바라보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육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소인 해발 1242m의 가칠봉에는 밤새 11cm의 눈이 내렸다 [사진=국방부 제공/뉴스퀘스트]
강원 양구 육군 21사단 GOP 장병들이 12일 오전, 전날 부터 많은 눈이 내린 가운데 한겨울 악기상 속에서도 전방 철책을 바라보며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육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측소인 해발 1242m의 가칠봉에는 밤새 11cm의 눈이 내렸다 [사진=국방부 제공/뉴스퀘스트]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 하얀 눈이 소복이 내린 산야(山野)를 바라볼 때면 젊은 시절 경험했던 혹한의 기억이 솟아난다. 두 가지 큰 기억이 있는데 하나는 임관을 앞두고 사관생도 신분으로 소대장 지휘 실습을 나갔을 때 겪었던 일이고 또 하나는 특공연대 중대장 시절, 밤새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눈사람이 된 상태로 매복작전을 했던 기억이다.

매복은 그나마 하룻밤 작전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소대장 지휘실습 기간에 겪었던 혹한은 임관 후 군 생활 내내 기억 속에 남아 겨울 추위를 대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장교가 되는 과정에는 반드시 실병 지휘실습을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내가 교육받던 3사관학교에서도 한 달 정도의 소대장 지휘실습 과정이 있었다. 우리 중대는 모두 동부전선을 담당하는 부대에서 실습하도록 되어서 밤새 열차를 타고 춘천으로 이동하였고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양구까지 이동하였다.

당시 춘천에서 우리의 목적지인 원통까지 이동하는 길은 먼 길이었고 꼬불꼬불한 산악의 비포장 도로여서 한겨울 눈 쌓인 길을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했다. 오죽했으면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가겠네” 라고 가는 길이 험함을 원망하는 말이 있었겠는가. 선착장에서 내려 원통에 있는 사단사령부를 거쳐 실습하는 전방 소초까지 트럭을 타고 이동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내가 배치된 지역은 가운데 지형은 쑥 꺼지고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일명 펀치-볼(punch-bowl)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소초는 벙커라고 했지만 토굴과 같았다. 전기가 없어서 호롱불을 켰고 창문이 없으니 숙소는 항상 깜깜하였다. 사방이 모두 눈이 덮여 새하얀 가운데 외부와 연결되는 길이라곤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제설이 된 통로 길밖에 없었다.

이따금 보급되는 부식을 받으러 차가 다니는 산자락으로 내려가는 것도 큰일이었다. 부식추진을 다녀오는데도 하루 종일이 걸렸고 먹을 물을 길러 양동이를 가지고 물 나오는 심정(深井)까지 다녀오는 것도 서너시간이 걸렸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가지고 온 물이나 부식은 모두 꽁꽁 얼어있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병사들은 나이 어린 실습 소대장에게 많은 신경을 써 주었다. 아마도 최신의 바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올무로 토끼를 잡았다며 토끼 탕을 해 주었는데 처음 먹는 음식이기도 하였지만 뼈가 많아 먹기 어려웠다.

번듯한 막사에서 침대 생활을 하며 훈련 받다가 온 사관생도 입장에서 처음 접하는 열악한 전방 소초의 모습이었지만 이제 곧 자신이 임관하고 나면 이런 거친 환경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미리 경험하게 한 것은 찬란한 미래만을 꿈꾸며 임관하는 신임 소위들이 받을 충격을 완화하는데도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2주를 보낸 다음 다시 배치된 곳은 연대 전투지원중대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그날부터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는데 새벽에 비상이 걸려 군장을 꾸리고 하루 종일 행군을 한 후에 숙영지로 지정된 산등성이에 도착한 것은 이미 주변이 어두워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달동안 지낼 숙영지를 구축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일단 부드러운 흙이 나올 때까지 땅을 1미터 가량 파야 했는데 지표면이 꽁꽁 얼어붙어 아무리 곡괭이로 파도 곡괭이 끝이 휠 정도였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단단한 돌멩이에 못을 박는 일과 같았다. 돌을 깨는 정이 등장했고 오함마(큰 망치)로 내려치며 땅을 굴토하였는데 60센티미터 정도를 깨고 나니 그제야 부드러운 흙이 나타났다.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횃불작업까지 하며 꼬박 이틀은 땅을 팠던 것 같다. 당시 지급된 야전잠바와 귀마개 모자, 가죽장갑이 방한 피복의 전부였던 실습소대장으로서는 소대원들이 건네주는 털 두건과 방한 장갑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경험했던 그해의 혹한은 군 생활 내내 내가 지휘하는 부대 장병들의 겨울나기를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지혜가 되었다. 유난히 추울 것으로 예고된 이번 겨울이지만 지금 복무 중인 우리 국군 장병들에게도 단순한 추위를 넘어 두고두고 인생의 좋은 교훈과 추억을 남겨주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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