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회의 참석 간부들 벤츠 몰고 집합
대북제재에도 김정은 마이바흐 즐겨 타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메시지 보낸 것”

지난 26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벤츠를 직접 몰고와 리모콘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그는 모습이 조선중앙TV로 드러났다. [사진=조선중앙TV, 연합뉴스]
지난 26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 참석하는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벤츠를 직접 몰고와 리모콘 버튼을 눌러 문을 잠그는 모습이 조선중앙TV로 드러났다. [사진=조선중앙TV, 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 과거 방북 취재길에 북한 당국이 제공한 메르세데스 벤츠 승용차를 며칠간 타 본 적이 있다.

단장급 인사라며 나름 좋은 걸 골랐다고 하지만 30년 이상 된 낡은 차량이었다.

자주색으로 다시 도색은 한 건 물론이고 실내에는 예전 시골 장판과 같은 것으로 매트를 대신하고 있었다.

문제는 노후가 심해 배기가스가 차량 내부로 스며드는 것이었다.

쌀쌀한 겨울 날씨에 문을 열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매운 눈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는데, 기사와 안내원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태연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 떠오른다.

북한의 벤츠사랑은 진심이다. 노동당 간부와 군부 고위 인사는 물론 장마당에서 유통업 등으로 부를 거머쥔 일명 ‘돈주’들도 어떻게 든 벤츠를 굴리려 애쓴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가운데 일부가 살림 규모에 맞지 않는 벤츠 차량부터 구입하는 데서도 무한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6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는 북한의 벤츠사랑을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권력 2인자로 간주되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김정은의 측근 간부들이 회의장인 노동당 본부청사에 직접 벤치를 몰고 등장하는 장면이 관영 조선중앙TV로 방영됐다.

집권 13년차에 접어든 김정은 체제에서 전례 없는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그동안 김정은이 최고급 라인인 마이바흐 S600 풀만가드를 타고 나타난 경우는 수차례 공개됐지만 당 간부들이 줄지어 벤츠 차량을 이용하는 모습이 드러난 적은 없었다.

물론 북한의 의중을 읽을 수는 있다.

아마도 김정은의 배려로 통 큰 선물인 벤츠를 받아 이용하는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주민들 사이에서 간부들의 권위를 올려주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북제재 속에서 금수품목인 벤츠를 무더기로 등장시켜 ‘제재 속에서도 우리는 끄떡 않는다’는 그간 김정은의 주장을 뒷받침 하려는 포석도 있을 수 있다.

기사가 모는 차량이 아닌 직접 벤츠를 몰고 나타나는 장면을 연출한 때문인지 어색하고 당황해 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최룡해는 차에서 내려 회의장으로 몇 걸음 옮기다말고 멈칫하더니 리모컨 키를 눌러 차량을 잠그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빨치산 2세이자 북한 권력의 핵심인 그의 차량을 누가 손댄다고 굳이 잠그느냐는 말이 우리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기도 했다.

김덕훈 총리의 경우 감회가 남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인해 간석지 제방이 터지자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이 격노하면서 “김덕훈 내각이 글러먹었다”는 식의 질책을 했는데도 기사회생해 벤츠를 타고 폼나게 연말 전원회의에서 참석했다는 점에서다.

벤츠는 김정은의 재신임을 의미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상당기간 총리 자리를 누릴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벤츠는 대북제재 품목이다. 유엔이 북한의 첫 핵실험 감행 시점인 2006년 이후부터 고급 승용차와 보석, 요트 등 사치품을 대북 반출 금지 품목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 등을 거치거나 제3국을 우회하는 방식을 동원하는 북한의 회피수법을 원천 차단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미 뉴욕타임스는 2019년 7월 보도에서 “김정은이 쓸 벤츠 등 승용차를 실은 컨테이너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출발해 중국 다롄과 일본 오사카, 한국의 부산항, 러시아 나홋카까지 선박으로 이동한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화물기를 이용해 최종 반입됐다”고 경로 추적 결과를 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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