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위의 호랑이'...인격화된 호랑이의 근엄하고 풍부한 표정이
'노을 비낀 숫사자'...탐스러운 황금색 제왕의 옷차림, 군왕의 기상과 풍채 느껴져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호랑이 한쌍(100호 2012년)
호랑이 한쌍(100호 2012년)

▲호랑이 한쌍(100호 2012년)

북한의 중견 작가로서 호랑이 그림을 가장 멋있고 중후하게 그리는 화가로 단연 김훈을 꼽는다. 그는 만수대창작사 소속의 스타 작가이면서 아마도 조선화와 유화 분야를 막론하고 리률선 이래로 호랑이 그림 전문작가로서 가장 뛰어난 작품성과 함께 실재 작품가격으로도 최고의 대우를 받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호랑이 그림에 너무 탁월하다보니 근래에는 사자와 코끼리 등 다른 동물들의 주문 그림도 호랑이 그림 못지 않게 곧잘 그려 낸다. 그의 호랑이 그림에서는 작가의 상상력과 실재적인 표현력이 탁월하게 접목되어 있고, 살아 움직이는 탄력적인 운동감과 사람의 내면적 표정을 지닌 깊이감,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의 금갈색 털빛과 원시적 자연림과의 조화 등 풍부한 구성미를 만끽할 수 있는 점이 현역 호랑이 작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비결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 한쌍의 호랑이 그림은 저 멀리로부터의 위험 신호와 이상한 기척에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위엄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수컷 호랑이와 예민하고 기동력 있는 몸짓으로 경계의 끈을 바짝 당기는 암컷 호랑이의 표정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신령스러운 포스를 지닌 수컷 호랑이는 암컷 호랑이를 자제시키면서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배려에서 오른쪽 앞발로 막아서는 몸짓을 보이고 있다.

암컷 호랑이는 귀를 뒤로 쫑긋 젖히면서 공격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뱃가죽이 축 늘어져 있는 몸의 형세가 임신을 한 어미처럼 보인다. 암컷은 나무 그늘 깊숙이로부터 서서히 출현하면서도 앞발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작가는 암수 호랑이가 서로 밀착되어 의지하고 있는 모양새로부터 암수의 금슬을 비유적으로 형상하고 있다. 또한 수컷 호랑이는 벌떡 일어서는 상승 자세를 보이고, 암컷 호랑이는 하강의 태세를 취하면서 구도의 균형감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훈의 호랑이는 그 표정들 속에서 영락없이 사람의 냄새가 나기 때문에 유화로 보는 리률선 그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아마도 김훈 작가는 호랑이 유화가의 대명사로 불려지고 싶어하는 포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의 호랑이 화가인 리률선의 그림을 많이도 보고 닮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유화 붓질로 재탄생한 리률선 호랑이 그림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화려한 연분홍빛 야생화의 꽃밭 위에 앉아 있는 호랑이들과 함께 녹음 짙은 눈부신 자연의 휘황스러운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그 자연과 일체화된 호랑이들의 매력으로부터 눈을 떼기 어렵게 하는 굉장한 기운의 발산이 캔버스 화면을 동영상처럼 움직이게 한다. 맹수의 그림에서 어쩐지 한편의 드라마에서나 느낄 수 있는 황홀경의 진한 감동의 여운이 대자연의 풋풋한 향기처럼 흘러넘친다.

김훈 작가는 이산가족이다. 남한에 생존해 계시는 그의 숙부는 군장성으로 예편하셨다. 언젠가 그 숙부가 소장한 김훈 작가의 작품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산 정상에서 창공 아래를 내려다보는 호랑이의 장중한 기품을 보고 반한 적이 있다. 등지고 있는 산맥의 수려함과 잘생긴 호랑이의 멋스러움의 조화가 가히 환상적이었던 감흥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김훈 작가는 현재 인민화가로서 1989년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였고 지금 감상기 지은이와 1968년생 동갑내기이다. 호랑이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작가와 호랑이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뭔가 이심전심 통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볼 수 없는 화가의 세부적인 인연까지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나름 공상도 해본다. 멀리서나마 리률선의 뒤를 잇는 세계 최고의 호랑이 작가로의 대성을 기원한다.

벼랑 위의 호랑이(100호 2011년 10월)
벼랑 위의 호랑이(100호 2011년 10월)

▲벼랑 위의 호랑이(100호 2011년 10월)

2016년 인민예술가의 칭호를 획득한 김훈의 유화 중에서 이렇게 조선화처럼 보이는 그림은 매우 유별나고 독특하다. 산세가 마치 채묵화에서 수묵화에 채색을 가미한 것처럼 되어 있고, 희미한 먼 산을 포섭하고 있는 아스라한 운해와 운무들을 표현한 조선화의 우림(피움) 기법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에서 절정에 달한다.

형언하기 어려운 험준한 벼랑과 아득한 산세를 표현하는데 서양화의 표현방식으로는 역부족 내지는 한계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물론 호랑이가 발을 딛고 있는 바위 부분에는 유화의 마띠에르가 요소요소에 유화의 정체성을 충분히 표시해 놓았다.

그러한 조선화적인 어두운 산중 색감과 조응하여 호랑이의 털색도 다소 갈색 잿빛의 무게감이 퍼져있는 황금옷을 입혀 김훈의 평소 밝고 화려한 산지형과 환한 금빛 호랑이 색감과도 차별을 이룬다.

이 호랑이 그림은 산을 등진 호랑이와 벼랑을 낀 비탈진 산세가 X자형 구도를 이루고 있다. X자형 구도는 역동적인 운동감을 주면서도 중심에 초점을 맞추는 구도이다. 이 그림의 X자형 중심은 호랑이의 몸통을 조준하고 있다. 호랑이는 잠시 숨을 돌리며 곧 절벽을 끼고 돌면서 아슬아슬하게 산정상을 향하여 박차고 오르려는 긴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그림은 호랑이 두상의 멋진 표정이나 준수한 묘사 보다 늘씬한 몸매와 근육의 움직임을 더 강조하고 있다. 마치 누드화에서 여인 얼굴의 미모 보다 나체의 아름다움을 더 중요시하게 표현하려는 화가의 의도와 유사하다.

이 그림 속 호랑이는 턱을 굳게 다물고 입을 약간 앞으로 내밀며 위엄을 표출하고 결의에 찬 모습을 띠고 있다. 인격화된 호랑이의 근엄하고 풍부한 표정은 그의 모든 그림에서 전매특허이다. 이 작품은 오래전 원소유자가 중국에서 북한의 김훈 화가를 만나서 직접 받은 작품이다.

우리나라 백두산 호랑이는 백두대간을 타고 가끔씩 남한의 깊은 산중을 넘나든다는 공중파 다큐멘터리를 접한 바 있다. 나무에 긁힌 호랑이의 발톱자국과 호랑이의 용변 체취 등은 부인할 수 없는 흔적이다. 이런 호랑이를 만약 발견하더라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대대적인 사냥인원의 동원과 첨단무기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호랑이에 대한 부득이한 선전포고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호랑이는 자신의 존재가 먹이사슬의 자연섭리상 그 산의 질서와 안정을 가져온다고 믿으며 인간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고 쥐도새도 모르게 야음을 틈타 잠행할 뿐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그들이 거처할 공간이 남지 않을 날이 오겠지만 말이다.

노을 비낀 숫사자(80호 2013년)
노을 비낀 숫사자(80호 2013년)

▲노을 비낀 숫사자(80호 2013년)

김훈의 숫사자는 영롱한 황금색 피부를 지녀서 그 자체로 존귀한 제왕의 기품어린 의상을 차려 입고 찬란한 광채를 발한다. 저녁 노을 속에 비친 사자의 금빛 갈기는 바람결에 너울거리며 때로는 가장자리에 붉은 물이 들고 그늘 속에 갈색으로 변색되어 하루 일과를 끝낸 자신의 근엄한 몸단장을 완료한다.

하지만 아직은 무언가를 주시하며 관심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듯 눈빛은 번득거리며 살아 있다. 사자가 기대고 있는 바위 저 건너편에서는 아련하게 코끼리와 들소 무리가 한가로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김훈 작가는 북한 유화가 중 백수의 제왕인 호랑이, 사자, 코끼리 그림들을 전업적으로 그린다. 가파른 산세와 거친 산맥의 굽이를 주로 그리는 최창호를 북한은 국가 차원에서 키우고 대접해 주듯, 김훈 작가는 맹수의 왕들과 웅장한 코끼리 그림을 대표하도록 국가가 전폭적으로 뒷받침하는 고참 중견 작가이다.

중국에서 그런 그림들의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지금은 만수대창작사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들로서 최창호와 김훈 두 화가는 북한 미술계가 내세우는 조선화와 유화의 간판 투톱 스트라이커들이다.

김훈의 동물 유화를 보면 그 표정과 자태에서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기상, 장중한 기품이 스며 있다. 그의 호랑이 화폭에서는 마치 리률선의 조선화 호랑이 못지 않게 한결같이 밀림의 신령스러운 수호자의 풍모를 연상시킨다.

한편 탐스러운 황금색 제왕의 옷차림을 한 멋진 사자의 위풍에서는 군왕의 기상과 풍채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 역시도 폭군의 모습으로서가 아니라 들판의 먹이사슬의 질서를 책임지는 제왕의 모습이 역력하다.

숫사자 한마리가 갈기를 휘날리며 파죽지세로 하이에나 무리 숲을 뚫고 들어갈 때면 역시 대장이 끼어 있는 싸움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이에나 떼는 성난 숫사자의 기세에 놀라 추풍낙엽처럼 흩어져 달아나다 한 마리가 본보기로 잔인하게 물어 뜯기면 숫사자는 그제서야 그 폭주를 멈춘다.

갈기가 수북하지 않은 숫사자에게는 하이에나 무리도 단체로 협공을 하면서 먹이감을 고수하고 있는 숫사자를 그 자리에서 몰아내곤 한다. 하이에나 떼는 숫적 우위를 앞세우고 암사자 무리와는 상호 밀리고 물리는 집단 백병전과 혈투를 종종 벌이며, 암사자들이 포획한 먹이감을 탈취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김훈 화가
김훈 화가

◇김훈(1968~ )은 누구인가?

북한 큐레이터가 어느 기자에게 “북한에서는 김훈 화가의 그림을 최고로 쳐준다. 그의 화폭 속 동물들은 마치 살아 숨쉬는 것 같아 인기가 많다”고 설명할 정도로, 김훈은 중국과 북한에서 현재 활동하는 북한 유화가 중 가장 인기 있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김훈(1968.4.21.) - 만수대창작사 유화 실장 역임.

출생 : 1968년 4월 21일 자강도천군 출생

학력 : 1989년 9월 평야미술대학 유화과 졸업

현직 : 만수대창작사 조각창작실 실장

특기사항 : 2003년 브라질 국제미술전 전시품 일등상과 금상 수여받음.

2007년 작품<호랑이> 평양미술전 금상과 은상 수여받음

대표작 : <절벽위의 호랑이>, <호수가 아침>, <호랑이>, <사자>, <코끼리>, <얼룩말> 등

2013년 유화 작품 <사자> 중국 북경 경매시장에서 인민폐 30만원(우리돈 5000만원 상당) 고가로 거래됨.

2016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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