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훈련만이 승리 기약, 전시에 흘릴 피 아껴줘...

'이 정도 추위야!' 해군 심해잠수사(SSU)가 대한을 이틀 앞둔 1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에서 혹한기 훈련 전투 수영에 앞서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정도 추위야!' 해군 심해잠수사(SSU)가 대한을 이틀 앞둔 18일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 군항에서 혹한기 훈련 전투 수영에 앞서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 최근 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 국군의 강한 훈련 모습이 소개되고 있다. ‘평화를 뒷받침하는 강한 힘’을 만들기 위한 국군의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육군은 눈이 하얗게 쌓인 산악과 야지, 해안에서 적의 침투와 상륙에 대비하는 혹한기 훈련을 하고 있고 특수전 부대는 태백산맥에서 설한지 훈련을 하고 있다. 또한 일부 장병들이 평택의 미군 기지 캠프 험프리스에서 개최된 완전군장을 메고 30Km를 4시간 반만에 주파하는 급속행군 대회에 참가하여 무려 다섯명이 10위권에 포함되었고 여군 1등도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해군 해난 구조전대(SSU)가 겨울바다에서 수영훈련을 하며 실전적, 고강도 훈련을 하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울리기도 한다. 훈련은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요결이며 첩경이다. 강한 훈련만이 승리를 기약할 수 있고 전시에 흘릴 피를 아껴주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 자신도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훈련은 단연 ‘소대 독단훈련’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수도기계화 보병사단의 소대장으로 보직된 모든 신임 장교들은 부임 후 1달이 지나면 반드시 이 소대 독단훈련을 해야만 하였다. 훈련 기간은 2박 3일이었는데 훈련 장소 선정에서부터 훈련 내용을 정하고 시행하는 모든 책임은 소대장에게 있었다.

즉 정해진 기간 동안 자신한테 맡겨진 전투력을 소대장 마음대로 지휘하여 훈련하면서 현장 체험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 훈련은 본래 전장에서 상급부대와 연결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그 지휘관과 동일한 생각과 판단으로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으로 가끔 감독관이 훈련장을 방문하는 것 외에 모든 것이 소대장에게 위임되어 있었다.

내가 부임했던 소대는 좋지 못한 사고가 발생하여 소대장이 공석인 상태였고 소대 선임하사(지금은 부소대장이라고 불림)가 소대를 이끌고 있었다. 선임하사인 이중사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으로서 실전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소대원들은 한결같이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갓 스물을 넘은 나이에 나보다 나이 많은 소대원들이 대부분인 소대를 이끈다는 것은 부담이었고 모험이었다.

부임 후 한동안은 말뚝 일직을 서며 소대원들 면면을 파악하고 친밀해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박봉이지만 현찰로 받던 소대장 봉급은 소대원들과의 유대강화 사업(? 막걸리회식)에 투자하였다. 그리고 한달 정도 지난 다음 드디어 소대 독단훈련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부대 인근 산기슭을 훈련장으로 정하고 2박3일의 일정을 소대 공격과 방어 전술훈련을 하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중대장과 대대 작전관에게 브리핑을 한 후 승인된 시간표에 따라 소대원들을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야영지를 편성하고 소대원들에게 훈련 계획을 설명한 후 공격과 방어 훈련을 하였다.

돌이켜 볼 때 훈련을 제대로 했는가 자신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 훈련은 나의 군 생활 전체에 영향을 주는 커다란 선물을 주었다. 상대를 이해시켜 이끌고 갈 수 있는 논리적인 표현과 언변술, 작지만 훈련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기획력, 위험을 예지하고 사전에 배제할 수 있는 예측능력, 실 지형이 주는 저항과 이를 극복하는 요령, 특히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상황에서 느꼈던 자유보다는 오히려 무겁게 다가왔던 책임감과 두려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상상과 지혜, 그리고 지휘자가 현장에 함께 할 때 부하들은 최선을 다한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체험을 하였던 것이다.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이 훈련 이후 우리 소대에는 더 이상 앞서 발생했던 사고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한결같이 소대장을 중심으로 움직여 주었고 앞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서주었다. 초급장교 시절 겪었던 이 훈련은 이후 근 40년에 이르는 군 생활 내내 기억되던 가장 혹독하고 힘든 훈련이었지만 부대 지휘의 근본을 깨닫게 해 준 시간이기도 하였다. 강한 훈련을 하고있는 국군을 보며 새삼 70년대 소대 독단훈련이 떠오르는 것은 지금의 초급간부에게도 그런 값진 훈련 기회가 주어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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