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민성의 유래

【뉴스퀘스트=이철형 와인 칼럼리스트 】술을 마시면서 배울 것이 있고 깨달을 것이 있을까?

원효대사는 중국으로 가다가 밤중에 목이 말라 벌컥벌컥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해골 바가지에 담긴 물인 걸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도란 자기에게 있으니 굳이 중궁에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

어떤 사물이나 현상, 행동 들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는 일은 보통 사람인 우리들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특히나 사람이 무엇을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이미 학문적으로도 많이 연구되어 얻어진 결론이다. 굳이 학문적인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채식주의자들의 철학, 개고기를 먹지 말자는 견해들은 개인들의 생각이 특정 집단과 사회의 그 시대의 공동 의식으로 자리 잡게 되고 사회적 영향력을 갖게 된다.

농경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과 유목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 사냥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습속이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떨까?

와인을 마시면서 첫번째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라라고 하면 대부분은 프랑스를 생각할 것이고 프랑스 사람들의 국민 하면 많은 인문사회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톨레랑스(Tolernace)다. 이 톨레랑스는 관용, 배려, 관대함을  의미한다.

필자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이걸 ‘포용’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사실 프랑스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이야기나 여행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프랑스가 신기한 것이 누가 한 여름에 밍크 코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해도 누구도 이상하다는 듯이 신기한 듯 바라보지 않고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제로 파리나 프랑스 여행을 해보면 그런 생각을 확인케 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 개인이 무엇을 입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이 용인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슬로건이 자유(Liberté), 평등(Égalité), 우애(Fraternité)라는 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필자가 어릴 때는 우애를 박애로 배웠고 그렇게 아직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사실 이걸 배울 때도 그 각 단어의 정의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는 것 같다.

허나 지금은 박애가 아니라 우애란다.

그럼 우애와 박애가 무엇이 다를까?

우리는 우애하면 형제자매 간, 혹은 친구간의 정이나 사랑을 떠올리고 박애하면 인류나 특히 자기보다 약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 선행, 사랑을 떠올린다.

하나 프랑스 혁명의 슬로건인 우애는 개개인의 권리인 자유와 평등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 구성원간의 책임과 의무와 봉사의 성격이 크다고 한다.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서로 지켜주는 동지애적인 연대감과 의무와 봉사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잠시 프랑스 대혁명이 세가지 슬로건에 대한 정의를 이 기회에 살펴보고 가자.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연권의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 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지 아니한다. 그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라고 정의되었다가 1793년 권리선언에서는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속인적 권리이다. 그것은 자연을 원칙으로, 정의를 규칙으로, 법을 방벽으로 한다.”로 수정된다.

그리고 평등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서는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이외에는 평등하게 공적인 위계, 지위, 직무 등에 취임할 수 있다.”로 정의되었다가 1795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선언’에서는 “평등이란, 보호를 제공함에 있어서도 처벌을 가함에 있어서도 법은 모든 인간에 대해 동일하다는 것이다. 출생에 의한 어떠한 차별도 권력의 어떠한 세습도 허용되지 아니한다.”로 수정된다.

우애는 1789년 권리선언에는 없다가 1795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선언’에서 평등과 함께“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고, 항상 자신이 원하는 선사(善事)를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라고 정의하면서 등장했다. (여기까지 출처: 위키백과 프랑스 대혁명 슬로건 자유, 평등, 우애)

프랑스 대혁명의 슬로건인 자유, 평등, 우애가 공동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실현되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톨레랑스인 것이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모든 행동을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하게 할 수 있고 그걸 용인하고 받아들이는 우애가 표현된 것이 톨레랑스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톨레랑스는 세가지 슬로건 중에서는 우애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누리는 것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그걸 용인하여 관대하게 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기는 의문은 그 많은 유럽 민족과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 프랑스인의 대표적인 국민성을 톨레랑스라고 할까? 

그 근원은 어디일까?

일단 톨레랑스가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인 세가지 슬로건을 한꺼번에 현실적인 삶에서 구현된 행동과 행위에 대한 것이라고 그것은 당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시대정신이었기에 그것이 반영된 것이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상과 습속일 수은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일 것 같다.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타인의 행위나 사상도 용인하는 그 국민성의 저변에 있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사건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 자체보다는 그런 생각을 낳게 한 것 바탕의 생각이 오히려 그 대혁명의 정신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그 정신을 낳은 가장 중요한 원인이 그들이 와인을 매 식사때마다 와인을 마시고 즐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말은 자유와 평등, 우애가 와인에 다 들어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선 자유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한다. 선택의 폭이 다양할수록 자유의 폭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평등은 신분에 차별없이 구해서 구성원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먹거리로 보자면 구성원 대대다수가 먹거나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품질의 수준에 따라 가격의 차등에 따라 신분이나 소득수준별로 누릴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질지언정 일단 서민들까지도 대부분의 공동체 구성원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상품이든 서비스든 권리든.

우애는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남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이 즐기는 것을 칭찬해준다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이런 자유, 평등, 우애를 현실적으로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알코올 음료가 바로 와인말고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보면 다양성, 접근성(이용 가능성), 개인의 취향에 대한 포용성을 갖게 하는 유일한 알코올음료가 와인이라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주가 막걸리인 것처럼 프랑스인들의 전통주는 와인인 것이다.

더구나 수질이 좋지 않은 프랑스인들에게 와인은 식사중의 국물로서 식사 구성의 필수적인 반찬이지 술이 아니다. 그래서 음식과의 궁합도 매우 중요했다. 

우리의 김치와 같다고나 할까?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듯이 그들도 와이너리 마다 와인 맛이 다르다.

우리는 오늘날에야 김치를 사서 먹지 옛날에는 대부분 각자 집에서 담구어서 먹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와인 자체가 상품으로 옛날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통이 되었기에 다양한 맛과 향의 와인들을 경험할 수 있었고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와인이 달랐다,

식탁에서 입맛이 다르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나 신분을 차별하거나 달리 이상하게 보지는 않지 않는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식탁에서 각자의 개인 취향을 드러내고 인정받는 문화가 존재하다 보니 그 무의식적인 습성이 먹거리 이외의 다른 것에서도 자연스럽게 적용되어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

타인의 행동이나 행위, 사상에 대해 어릴 때부터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식탁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힌다는 것이다.

자연과 환경이 먹거리를 낳고 그 먹거리가 사람들의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여 그 사회의 사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각 시대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필요한 시대 정신으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철학이나 사상이 먼저냐 사물의 존재가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인 싸움이 될 수도 있으나 그런들 어쩌랴.

중요한 것은 근원이 어느 것이냐가 아니라 현실적으로는 달걀과 닭이 둘 다 존재하면서 상호 보완하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

자, 그럼 우리의 국민성을 대표하는 단어는 무엇이고 그것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독자들의 숙제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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