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배를 탄 연인'... 안정적이고 평온하지만 상쾌한 느낌마저 드는 배색 배열로 마음까지 치유

【뉴스퀘스트=정형렬 갤러리피코 대표 】

물긷는 아낙네들(89-56 1955년)
물긷는 아낙네들(89-56 1955년)

▲ 물긷는 아낙네들(89-56, 1955년)

탈인상주의(Post-Impressionism)는 인상주의에서 시작했지만, 그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품 세계를 확립하려고 한 예술 사조를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으로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등을 가리킨다. 그중에서도 폴 고갱은 생의 마지막 10여년을 타히티를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생활하며 작업하였고, 이 시기 작품들이 고갱의 알려진 대표작(아래 타이티의 여인들 참조)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그의 화풍은 '클루아조니즘'(모티브를 단순화해서 파악, 그 윤곽선을 강조해서 그리는 기법) 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대표작들의 주제는 '원시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전순용의 이 작품 '물긷는 아낙네들'을 설명함에 있어 고갱의 타히티 아낙들의 일련의 작품들을 오버랩 시키면서 비교감상 평가하는 부분도 하나의 중요한 관점 포인트라 하겠다.

피사체의 차이는 존재하나 이 작품 또한 토착문화의 기반에 원시주의적 사조를 더해 전체적으로 대담한 색감이나 단순화된 인물의 묘사나 형태 등 매우 많은 부분에서 유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6.25 이후 당시 아낙네들의 의상이나 마을풍경 등 역사적으로 사료가 될 만한 부분부분의 오브제들도 눈여겨 볼만한 귀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이 작품은 북한에서 우리식 유화기 태동기의 조선화적인 기법과 색조가 담백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우선 향토적 주제와 간결하고 전통적인 색감과 채색 배열이 인상 깊다. 그리고 조선화에서의 선묘기법 같은 윤곽선 테두리로 인물들을 깔끔하게 묘사한 점도 두드러진다.

또한 백의민족의 순수한 우유빛 옷감과 함께 파스텔톤 색감의 연두색과 분홍빛의 고운 옷차림을 한 아낙네들의 정갈한 몸단장과 사뿐한 동작들도 작품에 운율적인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조각배를 탄 연인(8호 1979년)
조각배를 탄 연인(8호 1979년)

▲ 조각배를 탄 연인(8호 1979년)

전순용은 역사박물관에서 고증을 통해 역사적 위인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리는 화가였다. 그의 수많은 인물과 영웅들의 초상화들이 해당 인물의 표준이나 전형이 될 정도로 인정받은 탁월한 정통 초상화 화가이다. 하지만 그의 풍경화는 인상주의적인 촉감이 농후한 낭만주의적인 화풍의 절정이다. 1세대 화가의 거의 막내뻘이거나 1.5세대의 선두주자인 화가는 일본 유학파 화가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인상(印象)주의라는 말은 모네의 작품인 "인상-일출"에서 비롯되었다. 빛에 따라서 혹은 그 해당 시점에 따라 그리는 이의 심리 상태나 날씨와 시간 등에 따라 대상의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그래서 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화가들은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정확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대상을 볼 때마다 시시각각 다르게 느껴지는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믿어 왔다.

본작 "전순용의 조각배를 탄 연인"을 보고 있으면 한낮의 평화로운 기운이 푸르디푸른 싱그러움에 더해서, 뱃놀이를 하는 연인의 느낌을 녹색풍의 전체 배색을 바탕으로 진청의 시원한 포인트 배색이 연인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전체 톤(Tone)의 느낌을 잘 구현해 내고 있다.

너무나 안정적이고 평온하지만 상쾌한 느낌마저 들게하는 배색의 배열로 인해 마음의 치유까지 될 정도로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다. 인상주의가 대가들의 작품들과 유사점들도 있지만, 그 보다는 관람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나만의 느낌을 충분히 느끼면서 감상하는 것도 자신의 명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생 여정에서 조각배를 탈 때는 아마도 연인과 데이트를 즐기는 시간 속에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미세한 물결의 흐름에도 출렁거리는 조각배는 매우 미묘한 두근거림과 야릇한 설레임을 불러오며 그 잔물결의 파동은 오히려 둘만의 오붓한 감촉과 정서적 합일을 야기한다.

연인이 부부가 되어서도 그때의 그 느낌을 변치 않고 간직하면 세상일로 흔들릴수록 오히려 끈끈한 유대감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전순용 화가
전순용 화가

◇ 전순용(1924.6.9.~92.4.14)은 누구인가?

당시 주소로 함경남도 함주군 주북면 부민리에서 출생하였다. 1938년에 주북소학교, 1941년에 함남상업학교를 마치고 그림공부하러 일본에 가 제국미술학교 유화과에 들어 갔다. 1944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하던중 해방을 맞이하였다. 처음 함흥녀자중학교와 함흥영생녀자중학교에서 미술교원으로 1년간 있다가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 위원회 소속으로 1953년까지 창작활동을 하였다.

이때 창작한 작품으로는 유화<용광로(46년)>, <제련공장풍경(46년)>, <실켜는 제사공(47년)>, <보이라공(47년 50호)>, <주복풍경(48년 40호)> 등이 있다. 이 당시 그의 작품은 당시 사회에서 일어난 새로운 전변에 깊은 관심을 돌린 작품들이다.

그는 1953년에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거되였으며 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 위원회사업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 때 유화<흥남비료공장의 심장 변류기 복규(53년 650호)>, <밀림의 영웅(55년 100호)>, <녀성용접공(57년 20호)>, <흥남비료공장건설(57년 20호)>,<농촌을 건설하는 사람들(58년 100호)> 등을 창작하였다. 그중 <농촌을 건설하는 사람들(58년 100호)> 은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으로 되였다

그는 1960년 조선혁명박물관 전속미술가로 되여 주로 박물관에서 제기되는 많은 력사주제화들을 조선화로 그리면서 미술전람회들에도 창작품을 빠집없이 내놓았다. 10여년간의 유화 창작에서 조선화 창작으로 바꾼후에 조선화 초기 작품으로 <모판을 가꾸다(58년 50호)>, <방직공(58년, 30호)> <내가에서(59년 8호)> 는 조선미술박물관 소장품으로 되었다

그 이후 그의 조선화 작품들에서는 꾸준히 련마한 조선화기법과 그것을 창작에 구현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의 결과에 의하여 조선화의 전통적인 필치를 일정하게 살려나갔다는 것을 찾아 보게 하고 있다. 그는 1953년부터 76년까지 조선민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1962년부터 76년까지 유화분과 위원, 조선화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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