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대한민국 육군 홈페이지]
[사진=대한민국 육군 홈페이지]

【뉴스퀘스트=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일반적으로 밤은 해가 져서 어두워도 별과 달을 볼 수 있지만 그날 밤은 정말로 칠흑 같은 밤이었다. 야간훈련 수준을 평가받던 날이었다. 우리 특공중대는 인원이 전체가 60여 명밖에 되지 않았고 5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모두가 강한 체력과 담력을 가진 선발된 장병들이었고 특수부대라는 자부심도 대단하였다. 어떤 임무라도 능히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불시 검열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검열관은 우리를 트럭에 태워 처음 가보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오후 여섯 시경이 되어 전방에 높은 산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 차를 멈추고 우리를 내리게 한 후 명령지를 주었다.

주어진 임무는 그 이튿날 아침 여섯 시까지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을 넘어 반대편 지정된 지점에 도착하라는 것이었다. 지도상으로는 직선으로 10키로미터 정도였지만 평소 훈련하면서 체득한 바로는 산을 극복하는 것이었기에 최소 여덟 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판단되었다.

산은 오르는데도 내려가는데도 평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대략 이동로를 지도상에 표시하고 부하들을 모아 부여받은 임무와 내 생각을 설명한 후, 가지고 온 전투식량을 먹고 출발 신호를 기다렸다.

밤 아홉 시경이 되자 다시 검열관이 집결지로 왔는데 경고 없이 갑자기 우리 앞에 최루탄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방독면을 쓸 겨를도 없었다. 모두가 쏜살같이 사전에 출발 지점으로 정했던 산 하단부로 내달렸다. 한참을 달려 가스 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 이르러 인원 파악을 해보니 과연 훈련 잘된 부대답게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그 자리에 모였다.

달빛이 없는 그믐 때였고 잡목과 숲이 우거진 상태여서 도무지 산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손전등도 켜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무작정 능선을 찾아 잡목 숲을 헤치고 올라갔다. 그런데 밤 열한 시경이 되었을 때 갑자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한치 앞도 보이지 상황으로 변했다. 장병들에게 앞 사람 군장을 잡고 절대 중간에 끊어짐이 없도록 하라고 당부하고 수시로 “뒤로 번호!”를 하여 숫자를 확인하며 올라갔다. 하얀 눈이 내리는데 세상이 온통 깜깜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놀라웠다. 그런데 문제는 길도 없고 사방에 빛 한 가닥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급강하한 기온 때문에 배터리 성능이 떨어져 무전기마저 작동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오로지 중대장의 지혜와 감만으로 부대를 이상없이 끌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서너시간을 올라왔기 때문에 그 산을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더욱 위험해 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래전 영화로 보았던 부대원 대부분이 훈련 중 동사해 버린 일본군 5연대의 ‘하꼬다(八甲田)산 사고’가 떠올랐다. 무작정 부대를 끌고 갈 수는 없었다. 판단이 필요했다. 잠시 중대원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한 후 각 팀장들에게 제각기 방향을 정해주고 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도록 하였다.

기적이었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바로 위를 향해 출발한 팀장이 “정상입니다.”라는 것이었다. 서둘러 올라가 보니 우리가 올랐던 쪽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는데 능선 너머 반대쪽은 눈이 내리지 않았고 저 멀리 가로등 불빛도 훤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같은 곳인데 세상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은 바로 앞에 이런 환한 길이 열리는데도 정상을 지척에 두고 좌절하고 만다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아마 그 교훈은 그날 훈련에 참가한 우리 중대원 모두가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권태오 예비역 육군 중장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하며 목표지점에 도착하자 검열관은 물론 많은 지휘관들이 나와서 환영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대에서는 우리가 무전도 안되는 가운데 예측하지 못했던 기상 이변으로 조난된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우리 중대는 상당 기간 동안 천하무적이었다. 어려움을 함께 극복했다는 경험이 우리를 더욱 단결하게 해 주었고 훨씬 강한 부대로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훈련 때 땀 한 방울이 전시의 피 한 방울을 아끼게 해 준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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